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3차례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주민들은 꼭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대구 강북경찰서는 아파트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는 등 수사 끝에 편의점 종업원으로 일하는 이 아무개 씨(36)를 방화범으로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상습적으로 불을 낸 혐의(연쇄방화)로 구속된 이 씨는 범행동기를 묻자 황당한 말을 쏟아냈다.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이 씨는 그저 소방차가 출동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껴 상습적으로 불을 지른 것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경찰에 따르면 이 씨처럼 특이한 ‘무언가’에 흥분을 느껴 방화범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4월 경북 경주 동천동 국립공원 소금강산지구에서 발생한 화재 역시 불을 보면 흥분하는 10대의 철없는 장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범행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강 아무개 씨(22)는 미리 준비한 일회용라이터로 나뭇잎에 불을 붙여 산불을 냈다.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소나무 등 임야 173㏊ 규모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산림당국은 진화작업을 위해 무려 일주일 동안 헬기 20대, 소방차 55대와 인력 6000여명을 동원한 끝에 겨우 불을 끌 수 있었다.
엄청난 피해를 남긴 경주 소금강산 화재사건의 방화범은 미제로 남아있다 3년의 시간이 흘러 경찰에 붙잡혔다. 자동차부품 대리점 방화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힌 강 씨는 조사 과정에서 경주 소금강산 산불도 자기가 냈다고 자백했는데 이유가 황당했다. 불을 보면 흥분을 해 중학생 때부터 경주시 일대 자동차 부품 대리점 사무실과 택시 등에 방화를 했던 것. 알고 보니 강 씨는 부모의 이혼 등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불에 대한 남다른 집착이 생겨 결국 산불을 내는 지경까지 온 것이었다.
지저분한 것들이 보이면 불을 질러야 하는 독특한 성향 때문에 범죄자가 된 경우도 있다. 지난 2012년 2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식당 밀집지역에서 발생한 대형화재와 지난해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농성장 천막에 불을 지른 범인은 평범한 시민 안 아무개 씨(52)였다. 안 씨는 이뿐만 아니라 명동의 한 패스트푸드점 직원 탈의실에 침입해 쓰레기통에 불을 붙이는가 하면 경찰 조사에서도 “남산과 서울역에도 불을 지르려 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태연히 범행 계획을 진술하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대형 사고를 연이어 저지른 까닭도 황당했다. 인사동 방화는 술에 취해 종업원 탈의실로 올라간 안 씨가 폐지와 옷가지가 지저분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건물과 함께 태워버리려 저지른 것이었으며 농성장과 패스트푸드점 역시 ‘더러운 것’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경찰은 “안 씨는 지저분한 것들이 널린 곳을 보면 불 질러 치워버려야 한다는 의식의 소유자였다. 2004년엔 충동장애 증세를 보여 10일간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력도 있었다. 조사에서도 ‘술을 마시면 불을 질러 거리를 치우라는 환청이 들렸다’ ‘술을 마시던 식당이 너무 지저분해 불을 질렀다’ 등의 진술을 했었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