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만 EG 회장(오른쪽)과 둘 째 누나인 박근령 육영재단 전 이사장. | ||
육영재단의 얄궂은 역사는 지난 1990년부터 시작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서거 이후 10년이 넘게 육영재단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장 자리를 맡아왔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박근령 전 이사장과 재단 운영자들의 반발로 불명예 퇴진을 해야했다. 90년 11월 박 전 대표의 동생 박근령 씨와 일부 직원들이 육영재단 고문이사였던 최태민 목사가 전횡을 일삼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던 것. 박 전 대표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사장 자리를 내놓고 물러났다.
박 전 대표의 뒤를 이어 박근령 씨가 이사장 자리에 올랐으나 부실한 재단 운영이 빌미가 돼 역시 불명예 퇴진을 해야 했다.
육영재단을 관리 감독하고 있는 성동교육청은 박근령 전 이사장이 재직 중이던 지난 2001년 감사를 통해 재단 운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내부 인사들의 비리와 전횡을 밝혀냈고 결국 2004년 박근령 이사장에 대한 승인 취소 처분을 내렸다. 박근령 전 이사장은 이에 반발, 서울행정법원에 ‘이사장 승인 취소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내고 오랜 법정 투쟁을 벌였지만 지난 5월 대법원 최종심에서 기각당해 끝내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대법원은 “박 이사장은 재단을 운영하며 미승인 임대수익 사업을 하고 각종 비용을 부적절하게 지출하는 등 공익법인법과 육영재단 정관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성동교육청의 시정 요구가 있었음에도 이행하지 않은 점에서 이사장 승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동교육청이 이사장 승인 취소 처분을 내리면서 육영재단은 각종 고소 고발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성동교육청의 조치 이후 대법원 판결까지 재단은 이사장과 이사회 없이 사무국장 체제로 운영됐다. 그런데 사무국장과 일부 직원들이 박 전 이사장과 그의 배우자인 신동욱 씨에 대한 퇴진을 요구하며 박 전 이사장의 재단 출입을 막아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재단직원 측과 박근령 전 이사장 측 사이에서 수차례 몸싸움이 일어나는 등 재단운영권을 둘러싼 양측의 팽팽한 기싸움은 계속됐다. 이 모든 사건은 대법원의 판결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공석이던 이사회의 새로운 구성이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하고 있는 것. 대법원 판결 이후 성동교육청은 재단 정상화를 위해 임시 이사회 구성을 법원에 요청, 법원은 재단 창립자 측 등에 임시 이사 선임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육영재단 측이 9명, 박근령 전 이사장 측이 9명, 박지만 회장 측이 9명 등 총 27명의 임시이사 후보를 추천했고 법원은 박 회장 측 추천인 9명을 임시이사에 선임했다. 결과적으로 박근령 전 이사장이 물러난 자리에 박지만 회장이 들어온 모양새가 된 것. 대법원의 판결로 파행이 마무리될 줄 알았던 재단 관계자들은 그동안 재단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박 회장이 들어오자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다.
여지껏 박 전 이사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사무국장을 비롯한 재단 관계자들은 “이미 공익법인이 된 육영재단이 개인 사유물처럼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이번에는 박지만 회장 측에 맞서 싸울 분위기다.
박근령 전 이사장도 호락호락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박 전 이사장은 헌법소원까지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21일에는 동부지법의 판결에 대해 재심청구도 요청했다. 최근에는 육영재단에 계속 출근, 임시 이사들의 재단운영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만약 재단 관계자들의 말처럼 재단 이사장 자리를 박지만 회장이 꿰차고 앉는다면 누나와 동생이 운영권을 놓고 얼굴을 붉히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성동교육청의 김순화 계장은 “임시이사가 선임됐다고 해서 육영재단의 파행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며 “육영재단의 정상화는 향후 임시 이사회가 어떻게 재단을 운영하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뜻으로 세워진 육영재단.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이후 육영재단은 자녀들 간의 다툼을 부추기는 ‘혹 아닌 혹’이 돼버렸다.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를 그리워하는 많은 이들은 박근령 전 이사장과 박지만 회장이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해 더이상 집안싸움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