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정국을 주도했던 최병렬 김종필 조순형(왼쪽부터). | ||
이들 가운데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최근 들어 후배 정치인에게 자신이 축적했던 ‘정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이에 비해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와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 등은 ‘와신상담’하며 후일을 도모하고 있다. 추미애 김상현 홍사덕 박상천 전 의원 등도 마찬가지다.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며 자신들의 ‘컴백’ 시기와 방법을 암중모색하고 있다.
지난 43년 동안 정계에서 온갖 풍상을 다 겪었던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 자민련의 총선 참패를 책임지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후 두문불출했던 그가 최근 들어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이 2002년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삼성그룹에서 채권 15억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이후부터다.
JP는 지난 9일, 자신의 고향이자 정치텃밭이었던 충남 부여지역 당원 1백30여명과 여의도 63빌딩에서 ‘성대한 만찬’을 가졌다. 자민련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부인 박영옥 여사와 함께 참석한 JP는 지역 당원에게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그런데 JP는 정치일선에선 완전히 물러났으나, 막후에서 정치 훈수를 두고 있다는 전언. 지난 6월 자민련 대표로 선출된 김학원 의원이 JP의 청구동 자택을 자주 찾아가 정치 현안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P는 자신이 축적한 그동안의 ‘정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난 14일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JP의 한 측근은 “일본 의원들이 한일의원연맹 회장이었던 김 전 총재를 초청했다”며 “8월 초까지 일본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정국을 주도했다가 가혹한 된서리를 맞은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와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 두 거물은 요즘 바쁜 정치일정으로 소원했던 지인들을 만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 전 대표는 부인 백영자 여사와 단 둘이서 지난 6월4일부터 지난 7일까지 한 달 정도 미국에 다녀왔다. 미국에 살고 있는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요즘 최 전 대표는 지난 5월 마련한 마포 오피스텔로 일주일에 3일 정도 출근한다. 오후 시간에는 주로 지인들과 식사를 하면서 향후 거취를 심사숙고하고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정치권을 떠난 것이 아니다. 한 측근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야만 정치인이 아니다”며 여전히 ‘정치인 최병렬’임을 대변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충분히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쉬면서 향후 거취를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순형 전 대표도 언젠가는 컴백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연극인이기도 한 부인 김금지씨는 “조 전 대표는 요즘 집에서 책도 읽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조 전 대표는 지금 ‘잠행’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정계에 복귀할 뜻을 품고 있다는 게 김씨의 전언. 다만 “오는 10월 재보선에 출마할 계획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는 조만간 부인 김씨의 서울 대학로 사무실로 출근할 계획이다. 김씨는 “내가 가끔씩 사용하는 극단 사무실을 사용하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추미애 | ||
‘추다르크’로 불리며 ‘차기 지도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던 추미애 전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그야말로 잠행의 연속이다. 철저하게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향후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에는 미국 교민들이 주최한 6·15남북정상회담 기념 행사 참석 차 ‘비밀리에’ 미국엘 다녀오기도 했다. 미국이나 영국으로 1년 내지 6개월 동안 유학을 떠날 거라는 얘기가 나도는 가운데 내년 재보선을 대비해 조만간 민주당에서 중책을 맡을 것이라는 풍문까지 나돌고 있다.
민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추 의원은 지난 10일쯤 한 달간 일정으로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말했지만, 확인 결과 그는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었다. 추 의원은 그의 가족이 알려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는다. 구의동 자택으로 전화해도 ‘일하는 아줌마’나 ‘아들’이 받을 뿐 직접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나마 어렵사리 지난 17일 오전 통화가 연결됐지만, 그는 기자가 본격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제가 양해의 말씀을 드릴게요. (저의 기사가) 언론에 나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특별한 기사거리가 없어요. 묻지 마세요. 저 끊습니다”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처럼 추 전 의원은 현재 ‘침묵의 정치’로만 일관하며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민주당의 대표적 중진이었던 김상현 전 의원은 광주 북구갑에서 7선에 도전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의 셋째 아들 영호씨도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했다가 동시에 낙선하는 불운이 겹쳤다. 여기에 청탁 명목으로 금융기관 이사장으로부터 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그가 설상가상 지난 5월엔 서울서부지법으로부터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랬던 김 전 의원은 전화통화를 통해 ‘어떻게 지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리하고 있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가 현재 맡고 있는 민추협공동의장, 한국그린크로스공동의장 등 13개 단체장에서 물러날 계획이라고. 다만 아시아·대한산악연맹 등 한 두개 단체장만 유지할 생각이다. 정가에선 김 전 의원이 환경관련 연구소를 열 계획으로 알려졌으나, 이와 관련해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정치 재개 시기와 관련해선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컴백할 뜻이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탄핵정국의 주역이었던 홍사덕 전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요즘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총선 직후 혼자서 고향인 경북 영주의 소백산에 들어가 향후 거취를 구상했던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인의동에 개인 사무실을 차려놓고 지인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주말에는 주로 서울 인근에 있는 산엘 다녀온다는 게 부인 임경미씨의 전언.
홍 전 총무의 주변인사들은 그가 언젠가는 권토중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이라크 파병부대와 동참해서 한 달 정도 사병으로 근무하겠다’는 약속부터 지켜야 하기 때문.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정치 복귀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한 측근도 “이라크 파병부대 동참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방식으로 얼마 동안 파병부대와 동참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그의 성격상 이라크 파병군 동참 이후 내년 재보선 등을 통해 컴백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5선의 고비를 넘지 못했던 박상천 전 민주당 의원은 총선 패배 후 지체 없이 여의도 한서빌딩에 새 둥지를 틀었다. 법조인 출신이어서 로펌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 전 의원은 가족들과 함께 지난 7월 초 여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측근에 따르면, 박 전 의원은 19일쯤에 귀국해 가을부터는 그동안의 정계 활동을 나름대로 중간 점검해 볼 계획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