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달 24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몇몇 언론에 보도된 대로 김 최고위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이 불거진 것은 한 여성의 제보 때문이다. 검찰은 이 제보를 바탕으로 수사를 시작했고 결정적인 증거도 이 여인이 건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 위원 측은 얼굴 없는 제보자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된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검찰의 명백한 표적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까지 김민석 최고위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해서는 많은 언론들이 기사화했지만 정작 신원불명의 이 여성 제보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때는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언론보도도 흘러나왔지만 표적수사 논란이 나올 때도 결국 이 여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검찰에서도 이 제보자에 대해서만큼은 굳게 입을 닫고 있다. <일요신문>은 끈질긴 추적 끝에 이 여자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자신이 고발당했다는 것을 몰랐다. 김 최고위원과 관련된 사건이 불거진 것은 지난달 개성을 방문하려다가 출국금지된 사실을 알면서부터다. 김 최고위원은 수사사실을 공개하며 검찰이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서 김 최고위원은 검찰에 대해 ‘권력의 개’라고 표현하며 검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입을 닫고 있던 검찰이 반격했다. 수사는 한 ‘여성 제보자’의 고발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올해 여름 김 최고위원과 가까운 사이라는 한 여성이 김 최고위원이 돈을 받은 경위와 관련해 제보를 했다고 한다. 이 여성은 비교적 자세하게 관련 증거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최고위원의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특수 2부는 제보자에 대해 일체의 함구령을 내린 상태다. 제보자와 관련해서는 출입기자들에게조차도 입을 닫고 있다. 다만 이 여성은 김 최고위원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올해 초 김 최고위원이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소 거리를 두자 인간적 배신감을 느낀 것 정도로만 전해졌다.
그렇다면 이 여성은 김 최고위원에게 어떤 앙심을 품었기에 한 사람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할 만한 사실을 제보했던 것일까.
먼저 검찰 출입기자나 청사 주변에서는 이 여성이 외국계 통신사의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고 지난 2007년에는 모 IT 전문 기업의 부사장으로 일한 L 씨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일요신문>은 소문 속의 인물이 실제로 김 최고위원과 관련된 내용을 제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L 씨를 찾아 나섰다. 먼저 L 씨가 일했다는 외국계 통신사의 기자들을 여럿 접촉했다. 그가 이곳에서 일했던 시기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자는 어렵사리 L 씨를 기억하는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L 씨가 일했다는 통신사의 한 중견기자는 L 씨에 대해 “그녀가 실제 일한 기간은 길지 않았으며 2003년경 회사를 그만둔 이후 중국으로 갔고 이후 M&A 컨설팅 전문가가 돼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L 씨가 김 최고위원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는 소문은 있었다”며 김 최고위원과의 관련 소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이 기자의 말대로 L 씨가 중국으로 건너갔다면 이 시기는 김 최고위원이 정계를 은퇴하고 미국에서 공부하다 중국으로 건너간 시기와 일치한다.
L 씨를 기억하는 또 다른 인물은 “L 씨가 한때 영어의 달인으로 알려져 여러 언론에서도 조명을 받은 적이 있는, 나름대로 유명인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수소문 끝에 L 씨의 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었다. L 씨의 아버지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딸과 김민석 최고위원의 일은 나는 자세히는 모르고 구체적인 것은 딸에게 직접 들어보라”고 말해 두 사람이 연관성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그는 “딸과 직접 전화 통화를 시켜주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으나 L 씨의 전화는 결국 오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와 이 여성의 주변을 취재한 결과 L 씨가 먼저 김민석 최고위원과 관련된 사실을 검찰에 제보했다기보다는 검찰이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 최고위원과 관련된 혐의를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L 씨가 일하던 IT 회사의 횡령 사건에 연루돼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김 최고위원에 대한 내용을 제보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여인이 일했다는 회사의 공시 내역을 조회한 결과 L 씨는 지난 2007년 3월 이 회사의 부사장으로 영입됐으며 일하던 도중 횡령 사건에 휘말려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L 씨 관련 횡령혐의를 수사하던 중 통장에서 정체불명의 돈이 나왔고 이 돈의 내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김 최고위원과의 연관성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검찰은 L 씨와 관련된 사건은 형사부에서, 김민석 최고위원 사건은 특수부에서 담당했다고 한다. 또한 검찰은 김 최고위원이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는 문 아무개 씨로부터 송금 받을 때 사용했던 9명의 차명계좌 가운데에는 L 씨의 것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L 씨가 김 최고위원에게 앙심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의 진위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재까지로는 검찰이 L 씨를 수사하다 운 좋게 거물(?)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