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영화로 나올 때는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탓에 이 정도 문제는 불거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드라마 <타짜>가 오후 10시 시간대에 편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여과없이 시청할 수 있었다고 지적하며, 다시 한번 사행성 게임 및 모방범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산에 위치한 A 보습학원. 요즘 이곳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면 삼삼오오 둘러 앉아 무언가에 열중한다. 이들이 즐기는 게임은 다름 아닌 ‘섰다’. 아이들이 하는 도박이라고 우습게보면 안된다. 천원짜리 지폐는 기본으로 등장하며, 제대로 판이 벌어지는 날에는 만원짜리 지폐도 오고 간다는 것이 이곳 학생들의 설명이다.
이곳의 신 아무개 강사는 도박판에서나 벌어지는 ‘섰다’를 학생들이 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임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물어본 결과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드라마 <타짜>를 보고 배웠다는 것이다.
일선 학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에서까지 <타짜> 광풍이 불고 있었다. 지난 11월 포천에 위치한 B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화투패를 학교에 들고와 ‘섰다’를 즐기는 것을 담임선생님이 발견해 학교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인천 심산경찰서 김미영 경장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학생선도위원회에 참석한 후 기고문을 통해 청소년들의 도박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밝혔다.
김 경장은 학생들이 화투를 학교에 가져와 쉬는 시간이면 돈을 걸고 도박을 즐기고 있으며, 방과 후에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친구 집에 모여 판돈 20만 원에서 크게는 100만 원까지 걸고 도박판을 벌이는 등 드라마 <타짜>를 학생들이 따라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사채놀이로 인해 원금보다 늘어난 이자독촉에 학교 가기가 겁난다는 청소년 상담도 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들 학생들은 ‘섰다’를 게임 속에서 배운다고 말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고스톱’ ‘포커’ 등 이른바 보드게임을 서비스하는 ‘넷마블’ ‘한게임’ ‘엠게임’ 등 포털 서비스 업체에서는 ‘섰다’를 서비스하고 있다. 한 판당 돌아가는 시간이 짧고 특별한 게임룰 없이 그저 베팅만을 즐기는 ‘섰다’는 <타짜>의 영향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이들 게임은 모두 미성년자들이 플레이할 수 없도록 주민등록번호 확인 등을 통해 제한하고 있지만,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이나 다른 도용 주민등록번호 하나쯤은 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접속해 인터넷으로 ‘섰다’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게임 룰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아이들이 이를 보고 ‘족보’를 외운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타짜>가 시작된 9월 16일을 기점으로 이들 게임포털의 ‘섰다’ 서비스의 인기는 수직상승했다. 심지어 절대 1위를 유지하고 있던 ‘고스톱’이나 ‘포커’를 가뿐히 제치고 보드게임 분야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PC방 게임 순위를 집계하고 있는 게임트릭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넷마블 섰다’의 경우 9월 16일 이전에는 게임 전체 순위에서 80위권을 유지했지만, <타짜>가 방영된 이후로 유저가 급격히 몰리면서 한때 10위권을 넘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와 더불어 <타짜>를 모방한 각종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3일 부산 남부경찰서는 모텔에 도박장을 차리고 고등학생을 강제로 도박판에 참여하게 한 동급생 2명을 검거했다. 특히 이들은 소위 ‘꽁지(외상)’를 빌려주기도 하는 등 일반 성인 도박판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 관련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 학생들은 드라마 <타짜>를 보고 이러한 방법들을 생각해냈다고 진술 과정에서 밝혔다.
그런가 하면 거액이 오고가는 불법 인터넷 도박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연예인 강병규의 인터넷 바카라 사건 이후로 몇몇 프로야구 선수들까지 줄줄이 인터넷 도박을 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한 달 동안 전국에서 1681명을 단속하고 이중 32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이진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