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증인들이 국회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기업에 대한 증인신청을 하는 국회 상임위는 주로 산업통상자원위원회와 정무위원회다. 산업위에서는 기업들의 사업과 관련한 일을 주로 다루고 정무위에서는 금융기관들과 관련해 기업에 증인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 정부 관련 기관이 아니기에 의원실에서 요구한 자료를 제출할 의무는 없다. 기업인들은 일반 증인으로 채택되기에 합리적인 사유가 있다면 국감에 불참할 수도 있다. 다만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하지만 기업이 국감 증인 신청을 피하려는 이유는 회사 이미지 차원의 이유가 더 크다.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사장이 증인신청이 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유통업계 대관업무 담당자는 “어떤 의원실은 무조건 사장을 부르려고 한다. 사장이 해당 업무에 아는 지식이 하나도 없는 데도 비효율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결국 호통국감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목소리는 새누리당의 기업 증인 신청 기조와도 맞닿는다. 한 새누리당 의원실 보좌관은 “기본적으로 여당은 증인을 부를 때 해당 질의와 관련 있는 담당자를 부르자는 입장이다. 반대로 야당의 경우 전문성 여부를 떠나 해당 문제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오너가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로 입장이 다르기에 간사가 합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감사의 증인 채택은 각 상임위 의원실에서 신청하면 여야 간사가 조율해 최종 합의안을 만들게 된다. 증인 채택은 적어도 국감 1주일 전에 결정해 각 증인들에게 통보해야 한다. 대부분 전체 국감 시작 전에 결정된 명단대로 진행되지만 중간에 증인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국회에서는 증인 변경이 위원들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괜한 의심을 살 수 있기에 꺼려하는 분위기다.
기본적으로 간사를 제외한 각 상임위 위원들에게 해당 증인을 신청한 의원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 어느 의원실에서 어떤 이유로 증인을 신청했는지 알 수 없다. 증인이 변동될 때 상임위 위원들의 공식적인 의결과정을 거치지만 간사와 해당 증인을 신청한 의원실 말고는 증인 변동 사유를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증인 변동 문제는 베일에 싸인 민감한 부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일요신문>은 국회에서 공개한 산업위·정무위의 국감 시작 전 증인 채택 결정안과 실제 출석 증인 명단을 비교해 봤다. 올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산업위와 정무위의 증인 채택 변동 건수는 각각 6건과 4건이었다. 산업위에서는 정형지 티씨에스원 대표이사, 하영봉 GS E&R 대표이사, 부선영 액심젠코리아 대표, 한형기 에스에이씨 대표이사, 류희경 KDB 산업은행 수석부행장 등이 변동됐다.
해당 증인을 신청한 의원실들에 따르면 하영봉 GS E&R 대표이사의 경우 정부의 인가를 받은 민간발전사들의 업체 간 거래에 의한 국민부담 관련으로 증인 채택이 됐다. 하지만 하영봉 대표가 국감 당일 해외 출장으로 참석이 어렵게 되자 해당 의원실에 국민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고 증인을 GS 동해전력 대표이사로 변경했다.
중소·중견 기업의 해외플랜트 진출에 따른 정부의 지원 대책이 미흡하다고 생각돼 채택된 한형기 에스에이씨 대표이사와 류희경 KDB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은 해당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의원실에서 증인을 취소했다.
산업부 국감과 관련해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의 경우 직접 국감장에 출석했지만 해당 질의 내용을 잘 아는 이상욱 농협중앙회 농업경제 대표이사와 동행해 국감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공식 명단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부 대기업들은 국감 전 협상에서 합의된 경우도 있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10월 1일자 산업위 여야 간사 합의안에 따르면 최종 55인으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 후속투자 이행과 관련해 김병렬 GS칼텍스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신청됐지만 여야 합의에서 해당 질의와 관련이 있는 부사장으로 변경됐다. 또한 차화엽 SK종합화학 대표이사도 같은 사유로 증인 신청이 됐지만 출장 때문에 전무로 증인이 변경됐다.
의원실 보좌진들은 산업위보다 정무위가 금융 문제와 관련이 있기에 대기업들과의 기싸움이 치열하고 예민해 정보 공개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정무위 야당 간사인 김기식 의원실 측은 “사안에 따라 증인 채택 여부가 달라졌다. 증인 변경 내용은 간사들만 아는 얘기라 다 알지 못하고 공개하기도 어렵다. 증인을 신청한 의원실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정무위 행정실도 증인 불참 명단은 공개했지만 불참 사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정무위 행정실 관계자는 “증인 변동 사유는 우리도 모르는 부분이고 증인 불출석 사유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반에 공개하고 있는 증인 채택안과 증인 불출석 명단을 비교한 결과 정무위의 경우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이사와 정수현 현대건설 대표이사, 하성근 동부C&I 부사장,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이 증인 명단에서 삭제되거나 바뀌었다.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이사(건설사 담합, 하도급법 위반 관련)와 정수현 현대건설 대표이사(건설사 담합 관련)는 10월 20일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국감 증인에 채택됐지만 출장을 사유로 출석 날짜를 24일로 미뤘다. 그리고 여야 간사와 해당 증인 신청 의원실 합의에 의해 각각 김형 삼성물산 부사장과 김정철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증인이 변경됐다.
하성근 동부C&I 부사장의 경우 동부그룹 구조조정 관련, 자구노력 미흡 문제로 증인 명단에 올랐지만 신해철 동부C&I 컨설팅부문 대표와 최경진 동부발전당진 대표로 바뀌었다.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은 용역비로 통칭되는 MR계정을 통해 외국으로 자본을 유출해 국부유출 문제로 증인 채택이 됐으나 명단에서 삭제됐다.
이번 국감에서도 기업인들의 불출석 논란이 재현됐다. 산업위의 경우 방사선 안전관리원 외주 용역 문제와 관련한 기업 증인 두 명이 모두 불참했다. 박재석 세안기술주식회사 대표는 해외 출장, 윤덕호 액트알엠티 이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2013년 총100개 업체의 동반성장 결과 최하인 ‘보통’ 등급으로 해당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자리에 구본걸 LF(옛 LG패션) 회장이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
정무위 증인은 총 5명이 불참했지만 불참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110콜센터와 관련해 KT 자회사인 케이티스 맹수호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불참했다. 김장환 한국암웨이 부사장이 다단계 판매원 후원수당 수령 문제 및 상품 판매 이익 문제로, 조지훈 뉴스킨코리아 부사장도 같은 문제로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둘 다 불참했다. 하도급 문제와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김영춘 서해종합건설 회장도 불참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산업위 간사 의원 보좌 경험이 있는 한 야당 관계자는 “증인 변동 이유는 주로 회장의 나이 문제와 해당 사유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점 등으로 결정되기도 하고 신청한 의원실에서 변경을 요청하는 경우 등이 있다”며 “기업의 경우 증인 신청이 됐을 경우에 간사실로 전화가 쏟아진다. 한 번은 밤 12시까지 기업에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증인을 빼주지 않으면 신청한 의원실이라도 알려달라고 한다. 어떨 때는 다른 국회의원이 전화와 빼달라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증인 채택 문제가 ‘물밑’에서 이뤄지자 차라리 미국처럼 로비스트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한 산업위 의원실 보좌관은 “대기업 사장이나 간부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다른 의원실에서 빼달라는 전화가 속출했다. 결국 의원실과 친분이 두터운 기업들이 증인 신청에서 유리한 것이다. 이럴 바에는 공식 로비스트를 만드는 것 더 투명하다고 본다. 기업이 직접 의원과 세미나를 하거나 공식적인 해명을 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