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친일진상규명법)의 국회 제출(7월14일)을 필두로 우리당이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후 5~6공 군사정권 하에서 발생한 의혹 사건에 대해 대대적인 진상규명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우리당내에서 국가 차원의 조사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사안만 해도 친일진상규명 외에 KAL기 폭발사고(87년)와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 납북어부 간첩조작 의혹 등 줄잡아 5~6건에 이르며 이를 위한 법안 제·개정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이들 사안이 단순히 ‘과거사 바로잡기’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에 직간접적 데미지를 주는데다, ‘이념 논란’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실제 친일진상규명법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최근 노무현 정권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조선·동아일보가 조사대상이란 점에서, KAL기 폭발사고 재조사는 당시 조사에 관여했던 한나라당 인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민주화 기여’ 판정, 사면받기는 했지만 간첩죄 복역자의 조사관 채용 등으로 ‘색깔론’ 공방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이들 사안들이 전 사회적인 이념 논란의 소재로 등장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우리당은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 ‘과거사 바로잡기’를 힘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신기남 의장은 “우리 민족이 과거를 털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것”이라는 대전제하에 반대세력에 대해 “개인과 역사를 잘 구분해 줄 것을 바란다”고 ‘역공’을 취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현재 문제는 감추고, 과거문제는 들추어 내는 것은 국민과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계급과 특정인을 겨냥한 또 다른 편협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라며 ‘저의’를 의심하고 나섰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박근혜 대표는 ‘마녀사냥’ ‘야당탄압’이라며 발끈하고 나선 상황이다.
여야가 이처럼 과거사 의혹 진상규명에 대해 현격한 시각차를 보이는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여권은 ‘과거사 바로잡기’를 통해 노무현 정권의 개혁성을 과시하는 한편 일제 강점기와 권위주의 정권을 성장배경으로 하는 기득권층의 도덕적 기반을 흔들어 ‘개혁 대 반 개혁’ 구도의 내용성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권이 추진중인 진상규명 대상이 자신들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과거사 캐기’로 목적은 ‘야당 흠집내기’에 있다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대전쟁’으로 까지 불리는 여야간 ‘과거사 공방’의 배경을 들춰봤다.
우선 우리당은 친일 진상규명과 해방 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의혹 사건을 가급적 모두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신 의장은 5월 중순 취임사를 통해 “이미 사회적 합의가 성숙된 개혁 과제인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을 위해 당력을 최대한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는 또 법 개정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야당 탄압이자,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한데 대해 “농사꾼이 논에서 잡초를 뽑을 때 이풀 저풀 가리지 않는다. 잡초를 뽑아낼 뿐이다. 우리에게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과거 친일행적을 보인 몇몇 언론사주 문제는 주된 관심대상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천정배 대표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발생한 의문사에 대한 전방위 재조사 필요성을 들고 나왔다. 그는 “민주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도 국가의 조사가 필요하다. 87년 발생한 KAL 858기 폭발사고나 군내 의문사 등 억울한 죽음에 대해 밝히는 일은 국가가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가 과거사 의혹 규명에 대해 강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관련 입법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중 김희선 송영길 의원의 주도로 당론으로 채택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은 이미 여야 공방이 가열되고 있는 사안. 개정안은 친일행위자의 범위를 ‘일본 군대에서 계급이 소위 이상인 자’ ‘문화 예술 언론 학술 교육 종교 분야에서 친일행위’로 확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조선·동아일보도 조사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표 등 한나라당은 “야당을 탄압하고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마녀사냥”(김덕룡 원내대표)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선 상황이다.
최근 이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기한 연장, 조사대상 확대도 우리당이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사안. 원혜영 의원 등이 입법을 준비중인 ‘의문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은 조사대상을 현행법의 ‘1969년 8월7일 3선 개헌 발의 이후의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의 죽음’을 ‘1961년 5월16일 이후 의문의 죽음·상해 및 조작사건으로 그 사인이나 원인이 밝혀지지 아니하고 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행사로 인하여 은폐되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사건’으로 시기와 대상을 크게 확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입법될 경우 의문사위는 KAL 858기 폭파사건을 비롯해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 3천여 건에 이르는 군내 의문사 사건을 모두 조사할 수 있게 된다. 법안은 또 의문사위가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 등 국가기관이 보관하고 있는 관련자료의 무제한 열람 요구권을 부여토록 하고 있어 기밀 유출 논란을 낳고 있다.
이외에도 김원웅 서갑원 의원 등의 주도하에 ‘6·25 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안)’이 지난 6월18일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며, 국회 법사위 간사인 최용규 의원은 ‘소급 입법’과 ‘재산권 침해’ 논란에도 아랑곳없이 친일행위를 대가로 얻은 재산을 국가가 환수토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특별법’ 제정을 추진중이다.
우리당은 대외적으로 과거사 의혹 규명을 “민족정기와 민족정체성을 세우려는 노력이자,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지금이라도 밝혀 명예를 회복시켜 주자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신 의장)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방위적인 ‘과거사 바로잡기’에 정치적 배경이 전혀 없다는 설명에 야권은 물론 우리당내에서 조차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당 한 초선 의원은 “친일행위의 진상과 과거 독재정권에서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참여정부만이 해낼 수 있는 개혁과제다. 일부 계층의 반발을 우려해 미적미적해서는 안되며, 지금처럼 기득권 세력이 결집해 ‘정권 흔들기’에 나선 때에 반 개혁세력의 역사적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낱낱이 국민들에게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사 바로잡기’가 결과적으로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통해 노무현 정권과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한나라당과 조선·동아일보 등 기득권 세력을 겨냥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는 얘기라 하겠다.
한나라당은 이미 여권의 ‘과거사 공세’가 당내 분란으로 비화되고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법 개정에 동참한 비주류의 핵심인 이재오 의원이 박근혜 대표를 향해 ‘독재자의 딸’ ‘대선에 나서면 100전 200패’ 등의 험구를 쏟아내는 등 박 대표와 부친 박 전 대통령의 과거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섰고, 김문수 홍준표 의원 등 비주류 중진들도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내에선 이를 두고 7월19일 전당대회 직전에 여권이 친일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배경을 ‘야당 흔들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결과적으로 박 대표를 타깃으로 한 ‘친일 논란’이 당내 주류-비주류의 대결을 촉발시켜 여권의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박 대표가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의원 등 비주류 중진 3인방 외에 권오을 원희룡 정병국 고진화 의원 등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에 서명한 개혁성향 의원들, 과거사 논란과 직간접적 연관을 맺은 관계로 대여(對與) 강공 압박하고 있는 김기춘 김용갑 정형근 의원 등 영남권 보수강경론자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당분간 힘겨운 행보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영남권 중진은 “지금 여권이 총력전을 펴고 있는 ‘과거사 바로잡기’는 역사적으로 좌파세력들이 세 확산을 위해 추구해온 이데올로기 공세의 일환이다. 그 목적은 노무현 정권 특유의 ‘편 가르기’를 통해 보수층을 반 민족-반 민주집단임을 부각시키고 야당내의 분열을 획책하려는 것이다. 그런 만큼 한나라당은 과거사를 매개로 한 여권의 공세에 주도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당내에서도 영남권과 중도 성향 의원들 사이에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과거사 드라이브’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책임있는 여당이 경제·민생문제 등 굵직한 ‘현재진행형’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터에 의문사 문제 등 ‘과거형’ 사안에 지나치게 매달릴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영남권 한 의원은 “KAL기 사건 재조사에 대해 당에서 결정하면 따르기는 하겠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들이 끌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왜 옛날 문제를 끄집어내는지 모르겠다. 여당 차원에서 대통령에 대한 뒷받침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중진도 “재조사할만한 확실한 단서가 있으면 모를까 의혹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덤벼들어서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당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경제 살리기가 지상과제라고 생각하는데 당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준원 언론인
-
[단독] HID 지휘 체계 무력화…정보사 비상계엄 사전준비 정황들
온라인 기사 ( 2024.12.13 17:05 )
-
[단독] '비선' 방증? 윤석열 대통령 12·3 계엄선포 담화문 '서류봉투' 미스터리
온라인 기사 ( 2024.12.13 15:21 )
-
김건희가 직접 증인으로…‘코바나’ 사무실 입주사 대표 가족-최은순 소송 판결문 입수
온라인 기사 ( 2024.12.12 16: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