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우 우리은행장
스스로 못 박은 임기가 만료돼가고 있는 요즘, 금융권에서는 이 행장의 연임설이 파다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 매각이 올해 안에 성사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느냐”면서 “매각이 성사돼 새 주인이 들어온다면 이순우 행장의 행장직 유지가 보장되지 않는데 연임 얘기가 나올 리 없다”고 말했다.
이 행장의 연임 이유는 간단하다. ‘성공적인 민영화 달성’이 그것. 민영화를 완전히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인물이 행장으로 취임한다면 민영화가 늦춰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 이 행장 측 논리다. 또 새 행장이 들어오면 내년 초 우리은행 매각이 성공할 경우 몇 개월 안 돼 또 다시 행장이 교체될 수 있는 우려도 내포돼 있다는 얘기다.
논리는 그럴싸하지만 연임을 위해 짜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애당초 이 행장이 우리금융 회장으로 내정·취임했을 당시 회장 임기 3년을 그대로 놔두었으면 지금 같은 혼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 행장 스스로 ‘직을 걸고 민영화를 달성하겠다’는 과욕을 부린 탓에 연임 운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 셈이다. 금융권 일부에서 “연임을 얘기할 게 아니라 오히려 연내 민영화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은 쇼맨십이 강한 인물”이라며 “민영화를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순우 행장의 임기가 오는 12월 30일 끝나기 때문에 우리은행은 차기 행장 선임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를 꾸리고 행장 후보들에 대한 검증 작업을 거쳐 최종 행장 후보를 뽑은 후 이사회 의결과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기까지 시간을 감안하면 지금 시작해도 빠듯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우리은행은 차기 행장 선임 절차에 대해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권에는 지난 10월 말까지 우리은행 이사회가 행추위를 구성할 것이라고 전해졌지만 10월 31일까지 우리은행 이사회의 움직임은 없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민영화 추진에 올인하고 있어서 행추위는 11월 중 꾸려질 예정”이라며 “임기 만료까지 아직 시간이 있기에 절차를 밟는 데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우리금융 프라자 전경. 우태윤 기자
보통 은행에서 행추위 구성 후 차기 행장 선임까지는 두 달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11월 중 행추위를 구성한다면 12월 말까지 과연 차기 행장을 선임하는 데 문제가 없을지 의문이다. 우리은행 행추위가 11월 초에 구성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우리은행 이사회에서는 행추위와 관련해 아직 어떤 논의도 오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 우리은행 이사회 멤버는 “12월 30일까지라는 임기가 있으니 행추위를 구성해 차기 행장 선임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행추위와 관련해서는 얘기를 들은 적도, 논의가 오간 적도 없다”고 털어놨다. 우리은행 측은 11월 중 행추위 구성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행추위 구성의 중심이어야 할 이사회에서는 언급조차 없었다는 얘기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순우 행장의 연임이 진작 확정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설사 향후 행추위를 구성한다 할지라도 후보를 공모하지 않고 헤드헌터를 통해 후보들을 추천받은 후 이순우 행장의 연임을 결정할 것이라는 꽤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오가고 있다. 나아가 이미 이 행장의 연임이 결정됐고 조만간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해 이 행장 연임을 안건으로 올릴 계획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우리은행 소식에 밝은 한 인사는 “연임 작업은 이미 끝났으며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릴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우리은행 관계자는 “처음 듣는 소리”라면서 “차기 행장과 관련해서는 정식 절차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부인했다.
금융권에서 이 행장의 연임에 무게를 싣는 까닭은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능력보다 천운이 이 행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순우 행장이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각별한 사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순우 행장은 또 TK(경북 경주) 출신이면서 ‘행원 출신 행장’이라는 강점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지주 역사상 처음으로 행원 출신 회장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정무적인 면에서나 사회 분위기 면에서나 현재 딱 들어맞는 인물”이라며 “이 행장과 맞설 인물이 있다면 모를까, 민영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은행 내 라이벌들을 전부 쳐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대항마가 없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현 정부 실세들과 돈독한 사이이면서도 KB금융지주 사태 여파로 ‘내부 출신 선호’ 현상이 강하게 불고 있는 금융권 분위기에도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얘기다. 지금 분위기에서 금융당국이나 정부가 내부 출신인 이 행장을 내리고 새로운 인물을 올리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KB금융의 내분 사태가 이 행장의 장점을 부각시킨 셈이다.
그럼에도 차기 행장 선임 작업은 공정한 절차를 밟아야 뒤탈이 없다. 금융권에 오가는 말대로 우리은행이 이미 이순우 행장의 연임이 결정된 상태에서 향후 절차를 요식행위로 처리한다면 더 큰 비난이 쏟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은행과 이순우 행장이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지켜볼 일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