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피혁업체 A 사는 자체 조사를 통해 사내 차량 리스계약 과정 담당 임원과 딜러 간에 리베이트 정황을 포착했다.
중견 피혁업체 A 사의 오너 B 회장은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언제나 그렇듯 B 회장은 사용한 지 3년이 넘은 업무용 차량을 교체하기 위해 사내에 신차 계약을 요청했다. 2억 원 상당의 세단형 수입 차량이었다. 물론 신차 계약 형태는 어느 법인이나 마찬가지로 절세 효과를 위해 오토리스 방식이었다.
차량 구입을 포함한 사내 물품 구입을 담당하는 이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B 회장을 지근거리서 보좌해온 임원 C 씨였다. C 씨는 언제나 그렇듯 회장의 지시를 받아 한 수입차 업체 딜러를 통해 리스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B 회장이 우연찮게 자신과 가까운 수입차 업계 관계자와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업계 관계자는 B 회장에게 최근 차 구입을 통해 맺은 리스계약액이 많게는 2000만 원이나 비싸게 맺었다고 귀띔한 것. 결국 A 사는 자체 조사를 실시했고, 앞서 구매담당 임원인 C 씨의 리베이트 정황을 포착했다. <일요신문>과 만난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삼각 커넥션이 존재했다. C 씨는 오랜 기간 거래해온 딜러와 손잡고 리스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나눠 먹은 거다. 이른바 ‘리스피’다. 이 딜러 역시 오랜 기간 친분을 쌓은 특정한 캐피탈사와 계약을 맺었고, 리스 계약 금액 총액의 무려 12%에 해당하는 리스피를 발생시켰다. 리스피가 높으면 높을수록 구매자의 계약단가도 높아진다. C 씨는 일종의 배임·횡령을 한 셈이고, 회사 입장에선 손해를 본 셈이다.”
이 관계자가 말하는 ‘리스피’는 무엇일까. 보통 법인이 자동차를 구매할 때 리스계약을 맺는다. 이때 딜러들 상당수는 리스계약을 대행한다. 이렇게 리스계약을 대행하는 딜러들은 캐피탈사로부터 수수료를 지급받는데, 이를 두고 리스피라 한다. 여기서 허점이 발생한다. 다음은 오토리스 상품을 주로 취급해 온 한 캐피탈사 직원의 말이다.
“오토리스는 일종의 운용리스 상품이다. 운용리스는 금융리스와 성격이 다르다. 리스 제공자가 자산을 보유하고, 리스 이용자는 리스 자산의 사용에 대한 사용료를 지급하는 형태다. 쉽게 말해 임대차 계약이다. 금융당국에서도 일반적인 금융상품과 비교해 똑같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리스피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그 상한액이나 리스 사용자에 대한 공시 여부가 뚜렷하지 않고 제지할 법적 잣대도 마땅치 않다. 금융상품의 일종인 자동차 할부상품은 이제 법적잣대가 엄격해져 딜러들의 수수료 장사가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오토리스는 장사가 되는 분야다. 적게는 계약금액의 4%에서 많게는 10% 이상까지 가져간다.”
또 다른 오토리스 담당자는 “일부 딜러들이 ‘차 값을 싸게 해 줄 테니, 자신에게 오토리스 계약을 위임해달라’고 꼬드긴다. 하지만 대부분 조삼모사”라며 “이유는 간단한다. 차 값을 할인해 준만큼 오토리스 계약 때 자신의 리스피를 높게 가져간다. 결국 구매자는 차 값을 할인 받은 만큼 리스피를 더 낸다는 얘기다. 복잡한 계약 구성 탓에 이를 꼼꼼하게 따지는 구매자는 무척 드물다”라고 덧붙였다. 기자와 만난 한 전직 딜러는 리스피에 대한 배경설명을 이렇게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 업체에서 신차를 구입하면 딜러들이 이를 소개한 기사나 담당 구매자에게 밥값 정도는 줬다. 그런데 오토리스가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관행이 좀 더 조직적이고 큰 규모로 이뤄지게 된 것이다. 어차피 딜러 입장에서 판매수당은 소액이다. 결국 리스피로 해결해야 하는데, 사내 담당자와 친분이 쌓이면 처음부터 이 리스피 나눠먹기로 사전 협의를 하는 것이다. 대놓고 하진 않지만, 이러한 밀약이 업계 내부에서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밝혀진 A 사의 사례처럼, 리스피에서 비롯된 사내 구매 담당자들의 리베이트 착복 사례가 암암리에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리베이트를 넘어 회사에 비용을 추가로 발생시켰다는 점에서 일종의 배임·횡령에 해당한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A 사는 자체 조사를 통해 현재까지 사내 리스 차량 계약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A 사가 현재 운용 중인 사내 차량은 화물차를 포함해 대략 50여 대. 이 모든 차량은 앞서의 구매담당 임원 C 씨를 거쳤고, 모두 리스계약 형태였다. 이 때문에 A 사는 앞서의 관행을 놓고 볼 때 C 씨가 추가적인 배임·횡령 행위를 저질러 왔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조사가 완료된 후 A 사는 C 씨에 책임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높은 리스피 발생 탓에 A 사 측은 정상적인 계약 형태와 비교해 금전적으로 적잖은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앞서의 전직 딜러는 이러한 리스피 관행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다.
“일반 구매자나 법인 모두 오토리스 계약을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토리스 상품은 휴대폰 할부만큼이나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계약기간 동안 리스료 상환 일정을 일러주는 ‘상환스케줄’ 서류를 유심히 살펴볼 것을 권고한다. 또 한 가지는 아예 리스계약은 딜러 대행이 아닌 구매자가 직접 하는 것이 좋다. 요즘에는 ‘다이렉트 오토리스’ 상품들도 많다. 이를 잘 활용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결국 운용리스의 일종인 오토리스 계약도 정부 차원에서 금융리스 수준의 엄격한 잣대로 관리해야 한다. 현재로선 추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