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6월 21일 내부자 거래와 주가조작 등을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긴 혐의로 구속됐던 LG가 방계 3세 구본호 씨. 그런 그가 지난 12월 18일 보석으로 풀려난 사실이 뒤늦게서야 알려졌다. 연합뉴스 | ||
그런 구 씨가 최근 보석으로 석방된 것으로 확인돼 그 이유에 대해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구속 당시 모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과는 달리 구 씨의 석방은 열흘 정도 지난 26일에서야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석방이 주가조작사범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기존의 관행에 비춰본다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구 씨의 석방과 관련돼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파헤쳐봤다.
구본호 씨가 석방된 것은 지난 12월 18일. 구 씨의 석방 소식은 재판부와 구 씨 변호인단 등 지극히 제한된 관계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모를 만큼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지난 6월 21일 구 씨가 구속될 당시 많은 언론들이 앞다퉈 구속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것과는 달리 어떤 언론도 구 씨의 석방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보안에 신경을 썼다는 의미다.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진 표면적인 석방 이유는 구 씨의 구속만료일인 1월 초까지 원사건이라 할 수 있는 조풍언 씨의 주가조작 사건과 대우그룹 회생로비의혹 사건에 대한 재판이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범이라 할 수 있는 구 씨 관련 사건도 마무리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 씨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업체의 주식을 ‘대우그룹 구명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조풍언 씨에게 헐값에 넘긴 뒤, 주가 조작으로 수십억 원의 차익을 남기게 해 조 씨와 나눠 가진 혐의를 받아 지난 6월 구속됐고 7월 9일에 기소됐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찰이 기소하면 1심 재판은 6개월 이내에 마쳐야 한다. 6개월 내에 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구속된 사람은 석방시켜야 한다. 따라서 구속만료일을 며칠 앞두고 어쩔 수 없이 구 씨를 보석으로 풀어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 주변의 얘기로는 구 씨를 조 씨 사건과만 연관지어 결론내려는 부분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원사건과는 별도로 구 씨의 주가조작 혐의가 분명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원사건의 당사자인 조 씨는 지난 5월 구속 기소됐다. 조 씨 역시 늦어도 11월 말까지는 재판이 완료됐어야 했다. 하지만 ‘대우그룹 회생 로비’와 관련된 부분을 검찰이 추가로 기소했기 때문에 조 씨의 구속만료일은 조금 미뤄졌다. 조 씨의 재판은 앞으로 더욱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는 조 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증언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보고 지난 10월 25일 공판에 이어 다시 한 번 김 전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얼마 전 출국금지가 풀려 해외로 나가 이미 국내에는 없는 상태이며 국내로 다시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김 전 회장 주변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 전 회장도 별다른 특별한 내용을 진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을 다시 증인으로 채택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조 씨에 대한 선고를 연기하기 위해 김 전 회장을 다시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어린 눈초리도 없지 않다. 김 전 회장이 다시 법정에 설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조 씨 역시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그렇게 되면 조 씨도 석방될 가능성이 없지않다는 것이다.
조 씨의 주변인들 사이에서도 조 씨가 조만간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실제로 조 씨의 아내인 전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이덕희 씨는 최근 LA의 지인들에게 ‘남편이 곧 나올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최근 영국제 고급 승용차인 ‘벤틀리’를 새로 장만했다고 한다.
구본호 씨는 구속된 이후 조 씨 사건의 종범으로 취급받았지만 언론에서는 그동안 이와는 별도의 주가조작 사범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지난 2006년 9월 28일 본인 소유의 미디어솔루션이 제3자 배정방식으로 주당 7000원에 유상증자를 했을 때 구 씨는 100만 주(70억 원)를 매입했다. 그때 대우정보시스템의 최대주주로 부상한 ‘글로리아 초이스 차이나’사와 ‘스카이 에셋 홍콩’사도 각각 20만 주를 사들였고, ‘크라운그랜드’사도 10만 주를 매입했다.
당시 이들 외국법인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는 소식에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로리아 초이스 차이나 등 3개 회사 모두 조 씨와 구 씨가 만든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였다는 것이 검찰의 기소 내용이다.
구 씨는 또 다음 날에는 미디어솔루션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180만 주를 151억 원에 사들였고, 20일 뒤에는 사들인 BW 가운데 90만 주를 조씨의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인 카인드익스프레스사에 405억 원에 넘겨 330억여 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것처럼 조작했다. 구 씨는 빌린 돈으로 이들 주식과 BW를 사들였고, 카인드익스프레스사를 통해 넘어온 조 씨의 돈으로 빌린 돈을 갚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 씨가 석방된 지금 일각에서는 구 씨의 석방을 검찰에서 수사 중인 대통령 사위 조현범 씨와 연관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재벌가 주가조작의 대표주자였던 구 씨를 풀어줌으로써 조 씨와 관련된 부분도 비슷한 선에서 처리하기 위한 사전포석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 7월 구 씨가 구속기소될 당시 많은 언론들은 검찰이 조 씨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구 씨의 석방 사실은 증권가 투자자들에게도 큰 관심거리가 될 것 같다. 증권가에서는 어쨌든 지난 한 해 최대의 뉴스맨이었기 때문이다. 주가 대박으로 화제가 됐지만 그것이 주가 조작의 결과였음이 드러나 쇠고랑을 찼던 구 씨. 그런 그가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풀려난 사실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