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용 수석 | ||
과연 정 수석이 호남권 의원들의 비공식 모임에 참석한 까닭은 뭘까. ‘순수한 애향심’이 발동해 자신의 고향 발전을 모색하고 싶었던 것일까. ‘호남소외론’으로 요동치는 광주·전남 지역 의원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한 행보였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광주시장 재선거 출마를 대비한 정치적 포석일까.
정 수석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가 문재인 대통령 시민사회 수석비서관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 물론 정 수석 자신은 “대통령의 측근이 아니다”라고 부인한다. 하지만 여권에선 ‘노심’(盧心)에 정통한 인사 가운데 한 명으로 정 수석을 꼽는다. 이런 까닭에 정 수석의 광주·호남 지역 의원 모임 참석을 둘러싸고 노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남 영암 출신인 정 수석은 지난 6일 열린우리당 전남지역 의원들과 비공개 만찬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광주지역 의원 7명과 모임을 가졌다. 이틀 동안 광주·전남 지역 의원들은 정 수석에게 “호남지역이 차별 받고 있다”고 강하게 성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에 참석했던 전남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정 수석에게 ‘지역민들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실망해 계속 이탈하고 있다’는 민심 동향을 전했으며, ‘전남지역에 사회간접자본(도로 항만 등) 투자를 대폭 늘려달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틀 동안의 모임에서 의원들은 “청와대와 행정부처, 검찰과 경찰 등 참여정부의 핵심요직 인사에서 호남이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 차별론’ 혹 ‘호남 소외론’을 거론하며 강하게 어필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 수석이 광주·전남 의원 모임에 참석하게 된 계기는 뭘까.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의원을 “정 수석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이전 문제와 관련해서 여당 의원들과 상의하지 않고 관계기관 인사들을 만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런 문제는 의원들과 함께 노력하자’고 연락해서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정 수석의 견해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회가 개원한 이후 (광주·전남) 의원들과 상견례를 갖는 자리였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상견례 자리에서 어디 얼굴만 보고 오느냐. 그러다 보니 그런 (불만 섞인) 얘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정 수석은 ‘호남소외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지역) 경제발전과 인사 문제를 현재 시점에 맞춰놓고 ‘소외됐다, 안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출신 장관 한 명이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면 강원도 지역 장관은 ‘0’이 된다. 일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을 가지고 ‘인사에서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참여정부의 인사문제는 어느 지역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호남 출신인) 정동영·정동채가 장관 될 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그리고 (지역 발전과 관련한) 성명서를 내겠다고 하기에 ‘논리적이고 실증적으로 정리해서 대통령과 해당 부처 장관에게 설명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이 같은 정 수석의 조언을 수용한 것일까. 이 지역 의원들은 결국 성명서 발표를 취소했다.
정 수석은 6·7일 모임 이후인 지난 12일 광주·전남 지역 의원들의 첫 합동모임에도 참석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비공개’ 원칙으로 참석했던 6·7일 모임이 일부 지역 언론에 보도되면서, 12일 모임 참석을 취소했다는 전언. 정 수석이 언론보도로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비공개 모임이 지역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 수석이 상당히 난감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특정지역 의원들 모임에 참석한다고 알려지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수석은 이와 관련해 “12일 모임에 나가기로 한 적이 없다. 다만 20일 (광주·전남 의원 모임의) 점심식사 자리에는 나가려고 했다가, 갑자기 대통령과의 오찬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 수석은 총선 이후에도 호남 지역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6·7일 모임에 참석한 이후에도 광주·전남 지역 의원들을 개별 접촉하고 있다. 자칫 특정지역 의원 모임에 참석한다는 구설에 오를까봐 개별 접촉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 수석도 “정례적으로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나도 전라도 사람이니까, (의원 개개인과의 만남이) 필요하면 연락해서 (청와대로) 오거나, 차 한잔 정도 마시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지역 한 초선의원의 측근은 “의원님과 정찬용 수석이 최근 두세 차례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두 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알 수 없지만, 주로 광주 지역 경제 발전에 대해 대화를 나눴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 일각에선 정 수석이 차기 광주시장 재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사전포석 차원에서 이 지역 의원 모임에 참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수석은 이와 관련해 “광주시장도 중요하지만 관심이 없다. 출마 안한다”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여권에선 정 수석만한 광주시장 후보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26일 박광태 광주시장이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일단 재선거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따라서 재선거 일정이 나올 경우 그가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견해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남·광주 지역에선 김성곤·김태홍 의원만 재선이고, 나머지는 모두 초선 의원들이다. 그렇다보니 지역 현안 사업에 대한 대응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청와대에서 힘을 쓸 수 있는 호남지역 채널로 정 수석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 수석이 광주·전남 의원들의 청와대 통로라는 얘기다. 그의 행보가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