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8명의 부녀자를 강간·살해하고 장모의 집에 불을 질러 처와 장모를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연쇄살인 피의자 강호순 씨(38)의 최근 심정이다. 강 씨는 7건의 살인 혐의를 1차 공판에서 모두 인정했지만 장모와 처를 방화로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강 씨가 강원도 정선군청 여직원 윤 아무개 씨(당시 23세·여)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도 조만간 추가 기소할 예정이어서 윤 씨 살인 사건에 대한 심리가 별도로 있을 예정이다. 현재 공판은 처와 장모를 방화로 죽인 혐의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 측의 공방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3월 25일 6차 공판 후 강 씨의 국선변호인 김기일 변호사(46)를 만나 강 씨의 최근 심정과 속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김 변호사는 현재 수원구치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강 씨가 자신의 속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전했다.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한 예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내는 친구가 없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아버지 장례식장에 참석한 강 씨의 친구는 한 명밖에 없었으며 심지어 결혼식 사회를 봐줄 친구가 없어서 형의 친구가 대신 봐주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본격적인 재판 준비를 하며 4~5차례 만났지만 강 씨의 구치소 생활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었다. 재판에 필요한 것 말고는 불필요한 말은 서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강 씨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강 씨가 살인 동기에 대해 “내가 당시에 미쳤던 것 같다. 많이 후회하고 있다”며 “숨 쉬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럽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 씨가 공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강 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절대 졸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때 검찰은 “강 씨가 변호인 선임은 자신에게 이익인데 그런 이익을 찾고 싶지 않으며 변호인 참여 하에 조사받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강 씨 본인에게서 그런 얘기를 직접 들은 적은 없다”며 “공판 준비를 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나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뭘 숨기거나 질문을 회피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변호사 선임 거부가 ‘반성의 의미’보다 ‘책 출판’과 관련된 것이라는 의혹도 있었다.
강 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내가 저지른 범행을 책으로 출판해서 아들이 인세라도 받게 해야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돼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엔 세간의 관심이 멀어질 때 사건 변호보다는 책 출판을 도울 만한 변호인을 구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와 관련 김 변호사는 “본인에게서 그런 말을 전혀 들은 적이 없다”며 “그 이야기를 정말 강 씨가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도 김 변호사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강 씨가 사이코패스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에서 심리 상담을 할 때 외부 상담자들이 밖으로 상담 내용을 유포하면서 와전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강 씨는 두 아들에 대한 부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변호사는 강 씨의 아들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7차 공판에 대해 강 씨가 비공개 재판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씌우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한편 강 씨는 평범한 농촌 가정에서 자랐다. 다른 연쇄살인범들과 달리 성장과정에서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폭력이나 학대를 당한 흔적’이 없다. 강 씨의 아버지는 부지런한 촌부였다. 마을에서 강 씨의 아버지가 매는 논에는 ‘피’도 없다고 할 정도였다. 가족 간의 관계도 여느 가정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예의범절은 엄격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주변사람들도 “강 씨는 극히 정상적인 성격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본격적인 재판 준비를 하며 강 씨를 수원구치소에서 4~5차례 정도 만남을 가졌다. 접견이 있을 때마다 보통 3~4시간 동안 자료를 함계 보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특히 강 씨는 방화 사건과 관련해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씨 자신도 불이 어떻게 났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이번 사건과 관련해 증거자료 분량만 5000페이지가 넘고 있다.
그 중 3분의 2 정도인 3700여 페이지가 화재 사건에 집중돼 있을 만큼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강 씨의 보험금을 노린 방화 혐의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 측의 날선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것.
하지만 간접적 증거(발화 원인, 화재 전후의 상황, 보험 계약 등)밖에 없는 상황이라 화재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입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강 씨가 다른 살인 혐의는 모두 인정하면서도 유독 처와 장모에 대한 방화살해 혐의만 부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간의 시각처럼 자식들을 위해 재산을 지키기 위해 버티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억울한 것인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한편 김 변호사는 처음 강호순 사건을 배정 받았을 당시 심리적 부담감과 업무적 부담감을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의 흐름을 잡으며 부담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변호인의 역할은 의뢰인의 죄를 가볍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면서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서도 변호인의 역할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