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산이 33억원 감소한 최돈웅 전 의원(왼쪽)측은 “감소분 대부분이 빚잔치에 쓰였다”고 밝혔다. 주진우 전 의원은 지난해 재산을 15억원 불린 데 이어 올해 또 27억원을 늘려 화제가 되고 있다. | ||
특히 국회 퇴직의원 1백70명의 경우 일부 의원들이 불성실하게 재산 신고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퇴직의원 1백70명 가운데 66명(38.8%)은 재산이 줄고 57명(33.5%)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재산 증감이 없다고 신고한 사람도 47명(27.6%)이나 돼 낙선한 뒤 재산 신고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국회 퇴직의원 재산공개에 얽힌 뒷이야기를 따라가 봤다.
16대 국회의원 2백73명 가운데 17대 총선에서 낙선했거나 불출마한 퇴직의원은 모두 1백70명이다. 이들도 17대 초선의원과 마찬가지로 지난 7월28일 재산변동 사항을 일괄 공개했다. 신고 시기는 지난해 12월31일 재산변동 신고 이후 16대 국회 임기만료일인 5월29일까지였다. 이번 퇴직의원 재산변동 공개에서 특이한 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1백70명 퇴직의원 가운데 가장 변동사항이 많은 것은 재산이 줄어든 경우다. 모두 66명(38.8%)의 퇴직의원이 재산이 줄어들었다고 신고했다. 이들의 약 절반인 27명(15.9%)은 지난해 말 재산변동 신고 이후 5월 말 국회의원직을 물러날 때까지 불과 다섯 달 새 1억원 이상 재산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의원 가운데 이처럼 재산 감소자가 많은 것은 그들이 17대 총선에서 격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적잖은 지출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장 큰 ‘출혈’을 한 사람은 최돈웅 전 의원으로 무려 33억6천만원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도 강릉이 지역구였던 최 전 의원은 지역에서 ‘땅 부자’로 소문났던 거부였다. 하지만 불과 다섯 달 사이에 자신 소유의 임야 전답 주택 등 부동산 30건을 모두 팔아버렸다. 최 전 의원은 2002년 대선 과정에서 기업들로부터 5백80억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돼 현재 복역중이다.
사실 최 전 의원은 이번 재산 변동 신고 때문에 크게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 전 의원측의 한 관계자는 “최 전 의원이 교도소에 들어간 뒤 관계되는 사람들이 모두 제 살길 찾아서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그래서 변동 신고 할 사람이 없어서 마감 일이 다 되어서야 부동산 명의변경된 것만 겨우 신고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재산 감소 이유에 대해 “둘째 아들이 오래 전에 이동통신(삐삐) 사업을 하다가 휴대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부도가 나버렸다. 그때 최 전 의원이 자신 명의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해 지금까지 이자를 꼬박꼬박 내 왔다. 그런데 이자를 부담할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 담보제공했던 부동산을 모두 채권자에 넘겨버렸다. 이번에 감소한 재산은 거의 빚잔치에 쓰인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관계자는 “최 전 의원은 처음 국회에 재산 등록을 할 때 1백50억원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의원 몇 번 하면서 거의 써버려 지금은 남은 재산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최돈웅 전 의원 다음으로 재산이 많이 감소한 사람은 박상희 전 의원으로 19억8천만원이 줄어들었다. 박 전 의원은 자신 소유의 주식 20억원어치가 대폭 감소했고 장남 명의의 예금도 2억원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장남 명의의 주식이 2억원어치 정도 늘어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박 전 의원의 경우 자신의 회사 지분이 감소한 게 재산 감소의 주요 이유였다.
박상희 전 의원 다음으로 유용태 전 의원이 다섯 달 사이에 모두 7억2천만원의 재산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 전 의원은 임야와 전답 등 부동산을 매각한 것과 은행 채무 2억6천만원 등이 생기면서 재산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다음은 박재욱 전 의원으로 3억9천만원인데 대부분이 은행 채무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기배 전 의원은 2억2천만원이 줄어들었는데 대부분 자신 명의의 예금을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반해 다섯 달 동안 1억원 이상 재산이 늘어난 사람은 모두 15명(8.8%)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출신 주진우 전 의원이 27억4천만원을 불려 1위에 올랐고 정우택(12억8천만원) 김운용(4억4백만원) 김진재(3억2백만원) 전 의원 등이 뒤를 따랐다.
주진우 전 의원은 지난해 1년 동안 15억원의 재산이 늘었다고 신고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변동신고에서는 다섯 달 만에 또 27억여원이 늘어난 셈이다. 사조그룹 회장 출신인 주 전 의원 본인의 경우 계열사 주식 매입으로 3억원이 늘었고 사인간 채권도 38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장남과 차남의 예금과 주식도 증가해 재산이 크게 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력가인 주 전 의원은 해마다 재산 증가 상위권에 랭크돼 왔는데 지난 2001년에는 자사 주식이 떨어지는 바람에 6억5천만원의 손해를 입기도 했었다.
주 전 의원의 뒤를 이어 재산이 크게 증가한 사람은 정우택 전 자민련 의원이다. 정 전 의원의 경우 7억8천만원의 예금이 증가해 눈길을 끌었다. 이 가운데 농협에서만 7억7천만원의 예금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전 의원은 이에 대해 “서울 오금동의 아파트에서 17년간 살다가 지난 4월30일 8억2천만원 정도에 팔았다. 그리고 경기도 여주땅도 팔아 시세차익이 모두 10억가량 발생했는데 이 돈 대부분을 은행에 예금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으로 큰 증가 분은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주상복합 아파트를 6억원에 구입한 것이었다. 정 전 의원은 이에 대해 “은행 대출과 서울 송파구 현대아파트 매도 대금 중 일부로 매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매도한 현대아파트에 다시 전세를 들어 3억원의 전세권이 설정돼 있다. 정 전 의원은 배우자 명의의 예금이 1억4천만원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으로 재산이 많이 늘어난 사람은 김운용 전 의원이다. 그는 세계태권도연맹(WTF) 공금 유용 혐의 등으로 지난 6월 말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7억8천여만원이 선고된 상태다. 그런데 이번 재산 변동 내역에선 다섯 달 사이에 배우자 명의의 은행 예금이 4억3백만원이나 늘어나 주목을 받았다.
그 다음이 김진재 전 의원으로 3억2백만원이 늘어났다. 그는 예금이 16억여원 정도 늘어난 것에 비해 14억9천만원 정도의 예금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현금 증감 비율이 매우 큰 게 특징이었다.
이밖에 재산 증감이 없다고 신고한 사람도 47명(27.6%)이나 됐다. 이들 중에는 강성구 강숙자 강운태 김기재 김만제 김상현 김영구 김영일 김영환 김원길 김일윤 김종필 김찬우 김황식 박경섭 박금자 박세환 박종우 박주천 송훈석 신경식 심규철 안상현 양승부 오장섭 원유철 윤두환 윤영탁 윤철상 이근진 이부영 이승철 이완구 이원창 이종성 이창복 이한동 장광근 전용원 정대철 정문화 정창화 조순형 최명헌 최선영 한충수 황창주 전 의원 등이다.
정치권에서는 재산 변동 사항이 없다고 신고한 퇴직의원들을 두고 ‘낙선한 마당에 변동 사항 신고를 얼마나 철저히 했겠느냐’며 불성실 신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자민련 김종필 전 총재의 경우 거의 매년 ‘재산 변동 없음’이라고 신고해왔는데 이번에도 변동 사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의원들의 불성실 신고 의혹에 대해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약 6개월 간 재산 변동 사항을 신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간 상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조만간 심사소위를 구성해 오는 10월까지 재산등록내용 실사작업을 벌인 뒤 허위, 축소, 불성실 신고가 드러날 경우 해당 의원을 징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직자윤리위는 국세청 행자부 등으로부터 재산 공개와 관련한 자료 일체를 넘겨받아 실사를 거친 뒤 변동사항에 대한 불성실 신고 여부를 가릴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후검증’이 아무런 구속력이 없고 제재방법 또한 마땅찮다는 점에서 실사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