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시 외진 곳에 위치한 투견장. 300㎡ 가건물 안에 13㎡ 넓이의 쇠창살로 둘러싸인 ‘사각의 링’에서 개들의 싸움이 펼쳐진다. | ||
지난 3일 파주경찰서는 경기도 파주시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개 사육장에서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접수하게 된다. 동물보호시민단체인 한국동물생명윤리협회(동물생명협회)가 ‘투견’에 대한 정보를 계속 추적하다가 드디어 정확한 장소와 시간을 알아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우선 경찰과 사전 조율한 동물생명협회 남자회원 3명이 11시부터 상설 투견캠프장에 투견 동호회 회원인 것처럼 위장해 잠입했다. 투견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현장을 잡기 위해 경찰은 캠프장 근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투견애호가로 위장해 잠입한 동물생명협회 카페운영자인 이종인 씨는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투견 캠프장에서도 동물보호단체에서 사람이 나와 있을지 모르니깐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을 했다”고 말했다. 초조하게 투견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이 씨는 투견 캠프장의 안내멘트를 듣고 순간 긴장했다고 한다. 자칫 투견 현장을 잡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투견 캠프장도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 11시에 시작하기로 한 투견을 두 시간이 지난 후에 시작했다.
300여㎡ 크기의 가건물에 13㎡ 넓이의 쇠창살로 둘러싼 사각 링에서 개들의 싸움이 펼쳐졌다. 주로 싸움을 하는 개들은 아메리칸 핏불테리어로 투견만을 목적으로 키운 개들이다. 관람객들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투견 동호인들이었다. 그들은 개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모습을 주최 측에서 제공한 음식과 술을 먹으며 관람했다. 이 씨에 따르면 관람객 중에는 20대 아가씨들의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잠입한 이 씨는 두 번째 ‘게임’이 끝날 때 경찰에 연락을 했다. 경찰 30명이 투견 캠프장을 급습했을 때는 두 마리의 핏불테리어가 싸움을 마친 뒤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 씨는 “개들이 흘린 피로 투견 캠프장 내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고 전했다.
투견 캠프장 뒤 야산에는 네 마리의 핏불테리어가 경기를 하기 위해 나무에 묶여 있었고 이미 싸움을 끝낸 두 마리의 개는 목덜미가 물어뜯긴 채 트럭 옆에 묶여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날 자신의 개를 참가시킨 A 씨(33)는 “투견 주인들이 모여 개의 싸움 능력을 알아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견 인터넷 동호회 운영자 박 씨는 “재미로 개싸움만 붙인 동호회 모임”이라며 “도박은 하지 않았으니 합법 아니냐”고 되레 경찰에 따졌다고 한다. 당시 투견 캠프장에서는 별도의 입장료 1만 원을 회비 명목으로 거둔 것 외에는 도박의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도박을 하지 않았더라도 오락, 유흥의 목적으로 동물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는 ‘동물 학대’로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경찰도 이 같은 혐의로 박 씨 등을 연행했다. 경찰 조사 결과, 회원 1만여 명을 보유한 투견 인터넷 동호회는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며 전국에 11개 캠프장을 갖추고 상습적으로 개싸움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투견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면 인터넷 상에서 ‘정기모임’이라고 포장한 공지를 올려 회원들을 모았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트럭에 묶여 있는 투견 핏불테리어, 가건물로 세워진 투견 캠프,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각종 투견들. 사진제공=한국동물생명윤리협회 | ||
하지만 투견은 도박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야산이나 폐갱도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작년 한 해 동안 경남 고성, 경기 이천, 강원 춘천 등지에서 경찰에 적발된 수십 건의 투견 도박들도 대부분이 야산이나 폐갱도 등에서 판이 벌어졌으며 경기 1회에 300만~500만 원 정도의 거금이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투견의 잔혹함은 승패가 전적으로 개 주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심판이 경기 도중 승패의 윤곽이 드러나는 경우 개 주인에게 싸움을 계속 진행할지를 물어본다. 개 주인이 자신의 개 상태를 살펴보며 기권을 하면 경기에서 지는 것이다. 개들의 싸움 실력이 엇비슷한 경우는 물론 한 쪽이 일방적인 우세를 보이는 경기에서도 ‘게임의 룰’은 유지된다. 하지만 일부 주인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개가 죽을 때까지 놔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개 주인들은 투견을 키우기 위해 경기에 내보내기 전까지는 몸에 좋은 것들만을 먹이며 지극 정성으로 훈련을 시키지만 막상 경기에서 질 경우에는 가차없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투견의 경우 승패가 기록돼 승률이 좋은 개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얻고, 이들의 새끼들은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승률이 좋은 개들만 교배시켜 최고의 투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잔인하게 개를 학대하는 이유는 투견이 곧 도박이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지면 거액이 날아가기 때문에 개 주인으로선 경기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이번에 단속된 파주 투견장에서는 도박이 이뤄졌다는 증거를 잡지 못했지만 투견 관계자는 개 사료가 도박판의 ‘칩’ 구실을 한다고 설명한다. 투견장에는 사료 포대가 수북히 쌓여 있는데 한 포대를 10만 원으로 책정해 칩으로 이용한 후 서로 돈을 거는 것이다. 만약 경찰의 단속이 나오면 경기에 참가한 개들을 위한 상품일 뿐이라고 둘러대며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간다.
사건을 지휘한 파주경찰서 이용규 수사과장은 “투견장이 낮에는 보통 친목을 도모하며 게임을 벌이다가 밤이 되면 도박장으로 변신한다”며 “이번 단속은 낮부터 시작해 두 게임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급습했기 때문에 도박 행위를 적발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투견 관계자는 “투견을 도박 목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은 여러 지역 투견장으로 이동하며 자신의 개를 밤새워 경기에 참여시킨다”고 말했다.
한편 동물생명협회 카페운영자 이 씨는 “공공연하게 불법적인 도축이 이루어지는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기 위해서라도 투견은 사라져야 한다”며 “이번 단속을 통해 투견 인터넷 동호회의 움직임이 잠잠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물보호법에 따라 개싸움이 처벌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으로 투견에 대해 계속 감시의 끈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상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사람은 최고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날 경찰은 단속 현장에서 투견 인터넷 동호회 사람들 중에서 다른 범법 혐의로 벌금 수배된 세 명과 경미한 범죄의 지명 통보자 한 명을 검거해 일거양득의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