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의원(왼쪽)의 당권 도전설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정세균 의원도 출마 의욕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현재 유력한 당권 도전자로 거론되고 있는 중진급 인사들은 문재인 정세균 박지원 의원이다. 이들은 모두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비대위원이자 각 계파의 수장이기도 하다. 이중 정세균 의원은 친노계 수장인 문재인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범친노계’로 분류되지만 정세균계 인사들은 “우리는 친노(친문)와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문재인 의원과 가깝지만 계파는 다르다는 얘기다.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정세균계와 문재인계가 묘한 기싸움을 벌여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두 계파 간에 정 의원을 당대표로 하고 문 의원을 대권주자로 만드는 ‘빅딜설’을 점쳐오기도 했다. 정세균계 인사들도 “문재인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 의원이 출마한다면 그동안 도움을 준 정세균계와 교통정리를 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최근 문재인 의원의 당대표 출마설이 힘을 얻으면서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정세균계도 중요한 결정을 눈앞에 두게 됐다. 정세균계인 한 핵심 당직자는 “문 의원이 출마를 거의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 의원도 당대표에 도전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동안 두 차례 당대표를 하며 당내 세를 키워온 정세균 의원이 당권주자로 나선다면 친노계 표가 나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비주류 측에서는 대권주자이자 유력한 당권주자인 문재인 의원을 견제하는 듯한 발언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비주류인 이석현 의원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재 비상대책위원을 비롯한 계파 수장들은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주류 측 후보들을 견제했다.
지난 13일 ‘2015 전당대회의 목표와 과제’를 주제로 한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세미나에서도 의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계파색이 뚜렷한 토론자들이 나서 당권과 대권 분리에 대해 토론했다. 486그룹인 우상호 의원과 비노계인 문병호 의원은 총선을 두고 일어날 계파 갈등을 우려하며 당권과 대권 분리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당권 획득에 불리한 비주류 측이 주류를 견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문재인 의원의 대변인 격인 윤호중 의원은 “당의 주요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계파정치를 않겠다는 실천 선언이 필요하다”며 맞섰고 친노계인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누구는 나오면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 민주정당에서 있을 수 없는 말”이라고 반대했다.
일각에서는 비주류 대다수가 주류인 문재인 의원에게 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정세균계마저 뒤돌아설 경우 문 의원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의 정세균계 당직자는 “정세균계가 친노와 맞선다고 해도 친노계가 더 많기에 문 의원의 당선 확률이 높다”면서도 “하지만 정세균계가 문 의원의 반대편에 서서 친문 대 반문 구도로 만들어간다면 문 의원이 (당선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그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결집성이 약한 비주류들을 단합시킬 만한 큰 인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세균계가 비주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비주류계들이 하나로 뭉칠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비주류 당권주자로 박지원 의원이 첫손에 꼽히고 있지만 일부 비주류들 사이에서는 영남권에서 야권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을 추대하자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박 의원이 기존 정치인이라면 김 전 의원은 세대교체와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새 인물의 이미지를 지녔다는 것이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친노에서 문재인 의원이 나온다면 정세균계의 결정에 따라 유·불리가 나뉠 것”이라며 “지금 비주류에서는 마땅히 주자들이 없다. 박지원 의원은 정치를 오래한 올드보이라 비주류가 모두 결집할지 의문이다. 차라리 원외에 있는 김부겸 전 의원 정도면 흩어져있는 비주류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고 본다. 주류들이 싸우면 비주류 주자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김상진 뉴코리아정책연구소장은 “기본적으로 김부겸 전 의원은 총선에 야당 경쟁자가 없어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총선에 당선되면 자연스럽게 대권 후보까지 가능하다”며 “만약 전대에 나가게 된다면 선거를 통해 이길 확률이 높을 때 나갈 것이다.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경우는 문재인 의원의 불출마와 함께 친노 세력이 그를 밀어주거나 문 의원이 나오고 비주류 전체, 정세균계까지 밀어줄 때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김 소장은 정세균계가 문 의원의 반대편에 서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정세균계가 문 의원을 밀어준다면 문 의원의 당선확률은 70% 정도로 거의 승리한다고 보면 된다”며 “아무래도 정 의원 세력 중 다수가 486그룹이기에 비주류보다는 친노와 성향이 비슷하다. 정 의원은 세력 유지를 위해 문 의원과 공천을 두고 빅딜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정 의원 또한 불리한 상황에서 굳이 당대표에 나서 상처 입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주류 중 마땅한 주자가 없기에 박지원 의원에 대한 기대감도 일고 있다. 야권 사정에 정통한 정치 관계자는 “지금 야당은 강한 당대표를 원하고 있다. 김부겸 전 의원이 나오지 않는다면 비주류에서는 그나마 박지원 의원이 이슈를 잘 만들고 여당과 잘 싸워줄 인물로 평가된다”면서 “문재인 의원의 경우 지난 대선에 대한 책임론도 있고 강한 리더의 이미지가 아니다. 비주류 중 박 의원의 세력은 호남권 정도지만 비주류들도 이런 기류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박 의원을 밀지 않겠느냐”라고 예상했다.
문재인 의원의 당권 도전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문 의원은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측근들조차도 당권 도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문 의원이 아직 고심 중”이라며 조심스러워 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11일 문 의원은 을지로위원회가 주최한 영화 <카트> 시사회에 참석해 기자들 앞에 섰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의 비정규직법에 대한 아쉬움만 전하고 전당대회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튿날인 12일 국회에서 열린 ‘소득 주도 성장 2차 토론회’에서 ‘문재인의 두툼한 지갑론’이라는 소득 성장론을 밝혀 선거를 위한 본격적인 아젠다 설정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눈치싸움도 전당대회 룰이 ‘원트랙’으로 바뀐다면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전당대회 룰은 집단지도체제로, 지도부 체제를 바꿔 통합선거를 하는 ‘원트랙’ 방식과 현재 시행중인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해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를 나눠서 하는 ‘투트랙’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현행 체제인 투트랙 방식은 당대표에 인사권이나 재정권 등 당의 운영권을 대폭 부여하는 형식으로 당권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문재인 의원에게 유리한 방식이라는 분석이 많다. 반면 현재 새누리당의 방식인 원트랙은 표를 얻은 순서대로 당대표와 최고위원 자리를 갖게 되고 의사결정도 회의를 통해 진행되기에 당대표는 어렵지만 지지도가 있는 거물급 인사들의 경우 지도부에 입성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중진 이상의 중량감 있는 인사들의 경우 최고위원 선거에 따로 출마하기보다는 당대표 가능성이 있는 선거에 출마해야 ‘면’이 서기에 원트랙 선거로 룰이 바뀌면 대다수 거물급 인사들이 도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상진 소장은 “정세균 박지원 김부겸 등은 최고위원 선거에 나오기에는 큰 인물들이다. 투트랙 선거로 가면 굳이 최고위원 선거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로 원트랙 선거라면 지금까지 거론된 중진급 인물들은 물론 정동영 천정배 등 원외 인사들까지 모두 도전장을 내밀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에 김성곤 의원을 위원장으로 해 구성된 전대회준비위는 12월까지 전대 룰을 결정할 예정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