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업무방해 혐의로 지난달 29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는가 하면 이보다 앞선 22일에는 박지만 EG 회장의 비서실장이었던 정용희 씨가 2007년 육영재단 난입사건을 주도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양측이 수사기관을 통해 서로에게 주먹을 한 방씩 날린 모양새다.
그런데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움직임이다. 그동안 동생들의 전쟁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육영재단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일부 지지자들을 지난 7일 검찰에 고소한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일부 지지자 및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육영재단 문제와 관련해 본인과 보좌진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지지자 13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그동안 동생들의 전쟁을 ‘불구경’만 한다는 오해까지 받을 정도로 침묵을 지켜온 박 전 대표가 이례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잘 알려진 대로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박지만 EG 회장은 육영재단 경영권을 둘러싸고 심한 갈등을 보여 왔다. 용역을 동원해 재단 회관을 뺏고 빼앗기는 싸움을 계속해왔고 관련한 고소 고발 건도 수십 건에 달한다.
이 남매간의 전쟁은 <일요신문>이 최초로 보도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후 많은 언론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불똥은 자연스럽게 박근혜 전 대표에게로 옮겨붙었다. 과연 박 전 대표가 동생들 간의 전쟁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으며,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에 언론의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런 박 전 대표의 ‘스탠스’는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다. 육영재단의 갈등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대부분 박 전 대표의 침묵을 이해하는 분위기였지만 일부 지지자들은 ‘박 전 대표가 차기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지지자들은 ‘집안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냐’며 박 전 대표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기도 했다.
결국 이 문제는 박 전 대표 미니홈피와 팬클럽 홈페이지 등에 ‘핫 이슈’로 떠올랐다. 일부 지지자들은 박 전 대표의 가족사까지 들먹이며 박근령 전 이사장을 옹호하기도 했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판단했을까. 아니면 여기에 일부 불순세력이 개입했다고 생각했을까. 침묵하던 박 전 대표가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먼저 박 전 대표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와 미니홈피에 이 문제를 거론하던 지지자 13명을 명예훼손으로 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육영재단과 관련해 발생하는 불미스런 사건에 대해 피고소인들이 박 전 대표와 보좌진을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박 전 대표 측이 지적한 피고소인들의 글 중 일부다.
‘근혜님 눈에는 근령님이 청와대에서 기르던 진돗개보다 못하던가요. 이 사진(박근령 전 이사장이 용역직원에 의해 재단 회관 밖으로 끌려가는 사진)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 박근혜님을 어떻게 믿나요’
‘육영재단 사태의 배후 박지만과 정용희에 대해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오히려 잘했다며 비호하는 쪽으로 글을 많이 썼습니다’
‘(박지만 비서실장 정용희가 용역 20명을 동원해서 신동욱 교수를 국립묘지 행사에 못 오게 한 것이) 박지만 회장의 지시일까요, 박근혜 대표님의 지시였을까요’
‘박근혜 대표님, 진정 가족애도 없는 냉혈인인가요, 본인의 입신영달을 위해 동생(박근령)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아도 됩니까?’
박 전 대표 측은 피고소인들이 수십여 차례에 걸쳐 이런 글들을 올려 박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송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박 전 대표 측이 피고소인들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은 박근혜 전 대표의 열성지지자들로서 진짜 충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박 전 대표 팬클럽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던 인물들이며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사이트까지 만들어 운영해왔다. 때문에 이들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로 표현했다는 것은 더 이상 이 문제가 박근혜 지지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팬클럽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피고소인 중 한 명인 A 씨는 “박근혜 전 대표님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피해를 줄 목적이 있었다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다”며 “근혜님의 일부 보좌진이 나서서 우리들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범박근혜 진영에) 흘리고 다녀서 격한 표현을 쓴 부분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도는 그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A 씨는 또한 “이번 송사는 근혜님이 직접 지시했다기보다는 보좌진이 주도했다고 본다”며 “제목을 읽지도 않고 일부 표현만 문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남매가 화합하는 것이 고 박정희 대통령의 뜻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한 보좌관은 “육영재단 사건과 관련해 박 전 대표가 관여한 적이 전혀 없음에도 자꾸 관여했다는 쪽으로 글을 쓴 것은 허위사실 유포이자 명예훼손”이라며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차례에 걸쳐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은 고의성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피고소인들에 대해서는 “예전에는 지지자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육영재단 사태와 관련해서는 “(박 전 대표는)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생들의 전쟁도 법정다툼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달 22일 서울 동부지검 형사3부(민영선 부장검사)는 2007년 육영재단 난입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정용희 어린이회관장(박지만 회장의 전 비서실장) 등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씨 등은 재작년 11월 28일 용역업체 직원 등 100여 명을 동원해 재단 사무실에 난입한 뒤 직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서울 광진경찰서는 노조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광진구 능동 재단 사무실을 점거한 사건과 관련 박근령 전 이사장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박 전 이사장은 용역업체 직원 140여 명을 고용해 사무실 점거에 가담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박 전 이사장은 미승인 임대수익 사업 등 재단 운영상 법령·정관 위반이 드러나면서 2004년 관할 성동교육청에 의해 취임 승인이 취소됐고, 지난해 5월 대법원 판결로 이사장직 상실이 확정됐으나 승복하지 않고 재심신청 의사를 밝힌 상태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