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랑니>의 한 장면. | ||
패션잡지 기자 시절에 남자 500명을 대상으로 ‘이런 콘돔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1위가 착용을 안 한 것처럼 신체와 가장 유사한 콘돔(45%), 2위는 사정 시간을 조절해주는 콘돔(30%), 3위는 본래 크기보다 더 부풀려주는 콘돔(16%), 4위는 손가락만 대면 저절로 씌워지는 콘돔(6%)이었다. 이 결과를 앞에 두고 편집부 여기자 8인은 저마다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콘돔에 대한 설문조사만으로도 대한민국 남자들의 섹스 콤플렉스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조루 콤플렉스와 대물 콤플렉스는 성기능이 멀쩡한 남자도 은근히 신경 쓰는 문제.
그런데 조루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날 밤, 2시간이나 했지. 여자가 좋아서 죽더구만”이라고 자랑하는 한 남자에게 “그래? 난 15분 만에 여자가 뿅가던데”라고 맞받아쳤다는 이 유명한 유머는 ‘조루’의 기준이 단지 시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자 입장에서 2시간이나 피스톤을 해준 남자보다 15분 만에 오르가슴을 안겨준 남자가 더 멋져 보이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러니 남자들이여, 섹스 중간에 사정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딴 생각을 하거나 페니스를 둔감하게 하려고 섹스 전 화장실에서 마스터베이션으로 사정한 후에 섹스에 임하는 행위는 이제 그만두기를 바란다. 사정을 늦추기 위해 딴 생각을 하는 대신 상대를 제대로 보고, 느끼고, 배려하는 섹스를 한다면 그녀는 15분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삽입 5초 만에 사정을 하고 “미안해”라고 말했던 그가 떠올랐다. 그는 신체건강한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우리는 정상적인 섹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지만, 당시 기자 생활을 했던 나는 한 달에 10일 정도 철야를 했기 때문에 그 열흘 동안은 섹스를 할 수 없었다. 그가 “미안해”라고 말했던 날은 마감을 마치고 오랜만에 데이트를 했던 그날이었다. 가슴을 애무하면서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너무 흥분돼”라고 말했던 그가 삽입을 하기도 전에 “아, 어쩌지? 너무 흥분돼서 오래 못할 것 같아”라고 걱정을 하더니, 그 말에 책임을 지기라도 하듯 삽입을 하자마자 “아, 미안해”라고 고개를 숙여버렸던 것. ‘내 방중술 죽이지?’라고 농담이라도 건넸어야 했을까? “괜찮아”라는 내 답을 들은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로서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마 그가 첫 섹스에서 5초 만에 사정을 했다면 나는 그를 조루로 판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6개월간 몇 번이나 나를 오르가슴의 세계로 이끌었던 장본인이 아닌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야말로 그의 특장점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가 5초 만에? 물론 그는 거기서 그만두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으로 나를 안고 있던 그는 깊이 상처 입은 자존심을 치유하겠다는 듯 “한 번 더 할까?”라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키스로 답했다. 그날 밤 어땠냐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배려심이 묻어나는 애무와 화려한 스킬로 나에게 절정을 선물했다. 그럼, 여기서 퀴즈 하나. 그는 조루일까, 아닐까? 조루의 기미가 보이는 정상인? 나에게 진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그는 조루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섹스는 양보다 질이다. 페니스의 삽입 후 피스톤 섹스를 오래 유지한다고 해서 여자가 오르가슴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 최고조된 상태에서는 15분간의 섹스로도 얼마든지 환희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자의 경우, 자위를 통한 오르가슴이 대체로 5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남녀의 섹스야말로 5분이면 절정에 이르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섹스 지속 시간이 아니라 섹스 중의 리듬과 감정 상태의 조화다. 아무리 전희를 오래 해도 남자가 여자의 성감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지 않나.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섹스 트러블을 겪은 A는 “나는 유두를 애무해줘야 흥분하는데, 그는 죽어라고 발가락만 핥는 거야. 아무리 끌어올려도 어느새 다시 내려가 있으니, 답답해 죽겠더라고. 그러다보면 흥이 다 깨져”라고 말하면서 “백날 발가락만 빨면 뭐하냐고. 내 성감대는 유두인데”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발가락 페티시?”라고 질문했더니, 그녀는 “그런가?”라고 내 조언을 흘려들었다. 아마도 A의 남자친구는 그의 친구에게 “나는 발가락을 애무하면 흥분이 되는데, 그녀는 내가 발가락을 핥으려고만 하면 자꾸 나를 위로 끌어올려서 흥을 깨”라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흥이 깨진 상태였으니, 두 사람은 아마 2시간 이상 섹스를 했더라도 오르가슴에 쉽게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흥분과 자극이 2% 부족한 상태에서 피스톤이 이어진다면, 여자는 ‘조금만 더’를 외치게 되고, 남자는 그동안 사정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게 될 테니까 말이다.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면 남자는 조루, 파워 부족, 테크닉 부족, 페니스의 크기 등 스스로의 성기능을 의심한다. 하지만 조루를 치료하러 비뇨기과로 나서기 전에 먼저 체크해볼 것이 있다. 당신의 성 취향과 상대의 성 취향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오르가슴에 이르는 지름길이 훤히 보일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의 전술은 섹스에도 충분히 적용되는 말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박훈희 칼럼니스트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 <세븐틴> <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