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24일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이해찬 당시 총리지명자. 이종현 기자 | ||
이 총리는 지난달 하순부터 한반도 주변 강대국 대사와 시민단체-민간경제연구기관 관계자 등 각계 주요 인사들과 연쇄 접촉을 이어 오고 있다. 또 ‘친정’인 열린우리당과도 지도부와 이달 초 회동한데 이어 9월 정기국회 이전까지 소속 의원 1백52명을 모두 만날 계획임을 밝혀 주목을 끌었다.
내각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당장 자신을 보조할 참모부격인 총리실에 과거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교육부 장관을 지낼 당시 ‘이해찬 맨’으로 평가받았던 인사들을 대거 불러들이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작업도 진행중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바탕으로 각료 임명제청권의 실질적인 행사를 추진하는 한편 총리 주재로 주요 부처 장관들이 참석하는 국정현안조정회의의 위상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여권 주변에선 이를 두고 차기 대권 경쟁의 `잠룡’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총리가 본격적인 `외연 넓히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해찬 대망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인사는 지난 5일 이 총리의 초청으로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오찬을 함께 한 후 이 총리의 이날 모습을 `물 만난 고기’에 비유했다.
그는 “이 총리가 내각 운영과 당정관계, 신행정수도 건설 등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신에 찬 모습을 보였던 게 인상적이었다. 그와 자주 대화해 본 적은 없지만 `참모형’으로 알고 있던 기존의 인식이 단편적이었다는 점을 깨닫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실세 총리’라는 항간의 평가가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회동에서 향후 당정관계를 자신의 주도하에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 주목을 끌었다. 그는 “정기국회를 앞두고 의원들의 의견을 모두 들어야 할 것 같다. 긴밀한 당정협의를 위해 정기국회 전까지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모두 만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참석자는 “이 총리는 오찬에서 여당 정책위의장 세 번을 한 자신의 경력을 거론하며 `당정 일체’를 유달리 강조했다. 개인적으론 천정배 원내대표가 들었으면 썩 기분이 유쾌하지 않을 얘기란 느낌도 들었다. 이 총리가 천 대표가 없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감없이 자신의 뜻을 밝혔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당정관계의 주도권을 놓고 이 총리와 천 대표가 부딪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두 사람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맞붙었던 사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당정 관계 이외에 외교-경제 분야에 대한 이 총리의 보폭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달 19일 토머스 허버드 미대사의 예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21일에는 다카노 도시유키 일본대사를, 23일에는 리빈 중국대사를 각각 만났다. 또 지난달 22일엔 박상증 참여연대 대표와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 등 대표적인 시민단체 대표 16명과 만나 신행정수도 건설추진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고, 8월6일엔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과 권영준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등 민간 경제전문가 12명과 오찬회동을 가져 “동일 사안에 대한 중복-유사 규제를 적극 개혁해 정책 실효성을 높이고, 정책안정성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9일엔 총리로서는 이례적으로 박승 한국은행 총재를 정부광화문청사에서 면담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총리실을 중심으로 한 `이해찬 인맥’ 형성 움직임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 총리는 지난달 22일 총리 비서실장에 지난 98년 교육부 장관 재직 시절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공무원”이라고 극찬했던 이기우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임명했다. 또 6일에는 총리실 정무수석에 95년 서울시 정무부시장때 기획과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임재오 서울시 문화국장을, 공보수석엔 93년부터 11년간 인연을 이어온 핵심 측근인 이강진 전 서울시 의원을 낙점해 친위사단을 구성했다.
여권내에 포진한 이 총리의 고교(용산고) 동문들도 든든한 뒷받침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과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다. 육사 19기 출신인 권 보좌관은 용산고 10회로 22회인 이 총리에 `까마득한 선배’이고, 이 차장은 28회로 `한참 후배’다. 이 총리는 지난 7월12일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을 통해 야당이 두 사람을 집중비판하자 “권 보좌관은 외교-안보분야에서 성실히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고, 이 차장도 뛰어난 대북전문가로 전문성과 자세에서 문제점이 없다”며 적극 옹호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용산고 인맥’으론 이외에 이 총리의 두 해 선배(20회)인 김용덕 관세청장, 하동만 특허청장이 있다. 이들은 향후 이 총리의 여권내 입지 강화와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세력으로 꼽히고 있다.
이 총리가 이처럼 내각과 당정, 외교-경제 분야에서 의욕적으로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는 데 대한 여권내 평가는 계파별로 크게 엇갈린다. 우선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 열린우리당내 당권파들은 내색은 않고 있지만 경계하는 기색이 뚜렷하다. 특히 천 대표측에선 이 총리가 소속 의원들과 전방위 접촉을 통해 당정관계를 주도하려는 데 대해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다. 노 대통령과의 정례 회동을 통해 주요 정책현안을 결정지으려 했던 천 대표로서는 이 총리가 노 대통령을 대신해 당정협의 사항을 직접 챙기려는 것이 반가울 리 없다는 분석이다.
원내대표단의 한 의원은 “이 총리가 현재 정부가 직면해 있는 여러 위기상황을 역으로 활용해서 여권내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특히 당내에서 `리더십 부재’란 비판을 받아 온 천 대표로선 이 총리의 최근 행보를 자신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여기에 당권파의 주요 축을 이루고 있는 친 정동영계 의원들도 이 총리의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혀가는 데 대해 긴장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달 초 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무산되면서 정 통일부 장관의 시험대에 들고 있는 상황과 대조적으로 이 총리의 여권내 행동반경이 커지고 있는 점을 꺼림직해 하는 기류다.
반면 친노그룹에선 노 대통령을 대신해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이 총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이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개혁노선에서 같다”는 노 대통령의 `목포 발언’(7월29일) 이후 여권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민주당과의 관계 개선 및 `호남 민심 껴안기’와 관련해 이 총리의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여권 한 핵심인사는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호남이란 확실한 지지기반부터 공고히 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며 “이를 위해 민주당에서 거부감이 없는 이 총리 같은 사람이 나서 설득하고 교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이 총리는 자신의 행보에 대대한 구구한 해석에 대해 몹시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이 총리는 지난달 말 취임 한 달 맞이 기자회견에서 “정치할 생각이 없고, 실세도 아니며, 세도를 부릴 생각이 없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총리’로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해 왔으며 철저히 정책을 중심으로 정부를 이끌어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인의 `몸 낮추기’에도 불구하고 여권내 새로운 `파워 맨’으로 자리를 굳힌 이 총리에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