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 동천 L 아파트 건설 현장과 뇌물이미지 합성.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용인시 동천 L 아파트는 2007년 용인시가 고가의 분양가를 허가해 주면서 ‘분양가 특혜 의혹’에 휩쓸렸던 곳이다. 대기업 S 사가 시공을 맡았던 L 아파트는 시행사인 K 사가 용인시에 3.3㎡당 1794만 원에 분양가를 신청하면서 논란이 됐다. 전례없이 높은 가격이었기 때문.
입주민예정자협의회(입주협의회)는 “터무니없이 분양가가 높다”고 반발하자 용인시에서도 분양가 승인을 거부했다. 이후 용인시는 조정을 거쳐 15일 만에 분양가를 확정했는데 당시 조정된 분양가는 3.3㎡당 1733만 원. 당초의 신청가와 비교하면 68만 원가량 내려가긴 했지만 이도 높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분양가 기록은 지금까지도 용인시에서 깨지지 않고 있다.
이에 입주협의회 측에서는 “업체에서 분양가 승인을 받기 위해 용인시에 거액의 로비를 한 것이 아니냐”며 반발했다. 이후 1년 반 동안 S 사에 찾아가 시위를 벌였고 용인시 측에도 각종 민원을 제기했다. 한 입주민예정자는 “시위가 길어지자 지난해 용인경찰서가 관련 의혹들을 수사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여 만에 관련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리하고 끝냈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이 경찰의 수사결과에도 승복하지 않으면서 결국 검찰이 개입했다. 지난 5월 초 수사에 착수한 수원지검 특수부는 20여 일 만인 같은달 21일 K 사를 압수수색 했고 다음날 K 사 대표이사 박 씨의 친척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해 회계장부와 계약서, 컴퓨터 파일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해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 결국 K 사의 비리 의혹들이 상당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K 사 대표와 조합장 등 관련자 6명이 구속됐다. 검찰은 현재 용인시 공무원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지검 특수부에 따르면 K 사의 대표이사 박 씨는 거액의 뇌물을 주고 청탁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를 승인받기 위해 용인시 고위공직자들과 인맥이 닿는 유력인사들에게 수십억 원대의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들 인사들 중에서 검찰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이 아무개 씨(56·S 업체 용인지사 회장)다. 이 씨는 용인시통합체육회 산하의 한 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씨는 K 사로부터 약 40억 원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1999년에도 알선수재로 징역 1년을 선고받는 등 동종 전과2범으로 알려져 있다.
이 씨는 2007년 말, 용인시 통합체육회의 또다른 산하 단체 회장을 맡고 있는 송 아무개 씨(54)를 통해 K 사의 대표이사 박 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박 씨와 친분이 있던 송 씨는 “분양가 승인신청이 늦어지고 있어 걱정이다”는 고민을 전해듣고 이 씨를 박 씨에게 소개해 줬다는 것. 이후 이 씨는 박 씨에게서 청탁 대가로 40억 원을 받아 이 돈의 일부를 송 씨와 나눠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씨가 나머지 돈을 용인시 공무원들과 다른 고위 공직자들에게 건넸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 검찰은 이처럼 높은 분양가는 용인시의 관계 공무원의 묵인 없이는 힘들다며 용인시 관련 부처와 결재권자들에게도 뇌물이 건네졌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분양가 책정을 담당했던 부서의 공무원들이 최근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구의원 등 고위공직자들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 씨가 평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들을 통해 힘을 썼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40억 원이라는 돈은 단순히 공무원 몇 명의 로비를 위해 썼다고 보기엔 너무 큰 금액이라는 것. 이와 관련 이 씨의 한 지인은 “(이 씨는) 평소 시 체육회 활동을 열심히 해왔다. 얼마 전에는 시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며 “정치권이나 공직자들 행사에 많이 참여해 왔기 때문에 상당히 발이 넓은 편이다”고 전했다.
시공을 맡았던 S 사 역시 자유롭지는 못한 상황. 입주자협의회 측에서는 “분양 신청은 K 사가 모든 일을 전담하긴 했지만 S 사의 동의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주장했다. 검찰도 현재 S 사를 이번 사건에서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한편 용인시 측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청탁 같은 일은 전혀 없었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승인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용인시청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분양가가 ‘너무 높다’며 세 차례에 걸쳐 승인을 거부했었다. 나중에 K 사가 분양가를 낮춘 후에야 승인을 해줬다”며 “관련 공무원들이 로비를 받았다면 왜 곧바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세 번이나 해당 건을 반려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이 아파트는 판교신도시가 각광받으면서 함께 주목받아 최고의 청약경쟁률을 보인 곳”이라며 “고분양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주택시장 상황이 지금과는 달라서 높은 가격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주협의회 측에서는 여전히 용인시 측에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용인시에서 세 번의 반려를 했다고 말하지만 재승인까지 불과 1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반려는 형식적인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입주협의회 측에서는 “비슷한 곳에 위치한 H 아파트의 경우 3.3㎡당 1549만 원에 분양가를 확정했다. L 아파트는 이보다 무려 180만 원이 더 높다. 로비가 아니라면 이런 차이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속속 드러나고 있는 동천 L 아파트 분양가 금품로비 의혹. 용인시와 졍계인사들은 과연 결백한 것일까. 검찰의 수사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