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왼쪽)와 문희상 위원장이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김 대표와 문 위원장이 지난 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권노갑 상임고문의 회고록 <순명(順命)> 출판기념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얼마 전부터 여의도엔 여러 버전의 빅딜설이 나돌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요구하는 사자방 국정조사를 새누리당에서 수용하는 대신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과시킨다’는 식이다. 이뿐 아니라 담뱃값 및 법인세 인상안, 민생법안 처리, 개헌론 등 다양한 안건이 빅딜 대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하나같이 폭발력을 가진 민감한 사안들로 여야는 물론 각 정파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최근 예산정국과 맞물리면서 여야가 일부 예산을 놓고 빅딜을 시도 중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국회가 그동안 일을 너무 안했다. 현안이 산적해 있다. 그동안 정쟁에 밀려 처리가 지지부진했던 사안들에 대해서 무작정 미루기만 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는 것 같다”며 빅딜설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 배경을 설명했다.
여야는 모두 일축하고 나섰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여러 차례 “새누리당이 국정조사와 다른 사안을 연계하겠다는 것은 민심을 호도하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빅딜설에 대해 묻는 기자들 질문에 “왜 딜을 하느냐”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는 자칫 여야가 주요 현안을 놓고 ‘정치적 거래’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껄끄러운 김무성 대표가 야권을 활용해 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무성 대표와 문희상 위원장 간 핫라인은 그래서 관심을 모은다. 둘이 여야 수장으로서 만난 것은 지난 9월 문 위원장이 새정치연합 구원투수로 등판하면서부터다. 세월호법 합의를 놓고 여야가 맞서며 국회가 사실상 멈춰 있던 때였다. 문 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김 대표와 회동을 갖고 정치 복원에 뜻을 같이 했다. 당시 김 대표가 “문 위원장은 의회 민주주의자로서 존경받는 지도자”라고 하자 문 위원장은 “김 대표는 국민을 최우선하는 기본을 어기지 않는다. 통 큰 정치를 하는 분”이라고 화답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신 상도동·동교동 시대’가 열렸다는 평을 내놨다. 문 위원장은 김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동교동·상도동 모임을 구체적으로 해보자고 만났다. 제가 동교동 상도동 앞 글자를 따 ‘동상’이라고 선창하면 김 대표가 ‘상동’하기로 했다”며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김 대표와 문 위원장은 각각 김영삼 전 대통령 세력을 뜻하는 상도동계와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의 동교동계 출신이다. ‘막내급’인 둘은 과거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주축이 돼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 함께 몸담은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과거로의 회귀라며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제법 있다. 몇몇 정치평론가들은 “밀실 정치가 부활했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동교동계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동교동계와 상교동계는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런데 적어도 의회 안에서 했다. 또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했지만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다”면서 “지금처럼 국회의 권위가 떨어지고 의원들 간에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이러한 정치는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와 문 위원장 측 역시 빅딜설과 관련된 질문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커뮤니케이션이 예전보다 원활하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김무성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빅딜을 위한 것은 아니다. 문 위원장 취임 후 서로가 소통을 잘하자는 취지에서 수시로 연락하기로 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주요 현안뿐 아니라 사소한 일도 자주 연락하며 논의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둘 사이에 핫라인이 구축돼 있다는 얘기다. 새정치연합 내에서도 “문 위원장 체제 후 새누리당과 대화가 잘 통하는 느낌”이라고 털어놓는 의원들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다.
김 대표와 문 위원장이 처한 정치적 입지 역시 이러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차기 대권을 꿈꾸며 당을 이끌고 있는 김 대표로선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의 도움이 절실하다. 당대표 재직 시절 성적표가 곧 김 대표 대선 행보의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문 위원장 역시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투쟁 일변도 방식보단 집권 여당과의 ‘밀당(밀고 당기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나 문 위원장 모두 성과를 내야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에서는 김 대표가 문 위원장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단은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김 대표가 적극적으로 ‘빅딜’에 나서기를 바라는 여론도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 민생법안 통과 등을 위해서라면 야권이 요구하는 사자방 국정조사 카드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빅딜 또는 단독 처리는 우리가 관여할 바 아니다. 모두 김 대표나 당 지도부 정치력에 달린 문제”라면서 “김 대표가 문 위원장과 잘 합의해 처리한다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느냐”고 밝혔다.
그러나 여권 핵심부 주변에선 이러한 김 대표의 스탠스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는 박 대통령과 껄끄러운 것으로 알려진 김 대표가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맞닿아 있다. 친박계의 한 중진급 의원은 “김 대표가 직접 꺼내기 곤란한 문제들을 문 위원장 등 야권을 활용해 군불을 땔 수 있을 것이란 보고가 많다”면서 “김 대표가 개헌론을 꺼냈다가 박 대통령에 의해 진압당했지만 그 후 문 위원장이 (개헌론을) 지원 사격했던 사례가 우연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