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4년 최대 60억 원에 계약한 심정수는 안타깝게도 2년만 제대로 된 활약을 펼쳤다. 작은 사진은 삼성 입단식 당시 선동열 감독과 악수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FA 도입 전후, 무엇이 달라졌나
처음에는 FA 자격 기한이 10년이었다. “너무 길다”는 항의가 빗발쳐 곧 9년으로 줄였다. 연차만 쌓인다고 다 자격을 얻는 건 아니다. 1군 등록일수를 채워야 한다. 133경기 체제에서는 150일 이상, 128경기 체제에서는 145일 이상이 돼야 한 시즌으로 인정받는다. 첫 FA 사례는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포수 김동수. 3년간 8억 원을 받고 팀을 옮겼다. 당시에는 이 정도 금액만으로도 “이렇게 돈을 쓰다 구단들이 다 망하는 것 아니냐”고 다들 걱정했다. 다행히 프로야구는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다.
FA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원 소속팀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적 선수가 직전 해에 받은 연봉의 200%와 보상선수(보호선수 18명 제외) 한 명, 혹은 직전 해 연봉의 300%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지나친 보상 규정이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적을 막는다”는 비판이 잇따르면서 결국 축소된 규정이 이 정도다. 어쨌든 이 때문에 예비 FA 선수들은 연봉 계약 때 ‘프리미엄’을 얻는다. 구단들이 FA 선수를 빼앗겼을 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예비 FA들의 연봉을 아주 높게 책정하기 때문이다. SK에서 FA 자격을 얻은 내야수 최정의 올해 연봉은 무려 7억 원이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프로야구에는 고졸 선수가 유난히 많아졌다. 이 또한 FA의 영향 때문이다. 야구 관계자 A 씨는 “예전에는 고교야구에서 날고 기던 선수들도 대부분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 프로 데뷔를 미루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기왕 야구로 성공하려면 1년이라도 일찍 프로에 들어가 빨리 FA가 되는 게 낫다’는 의식이 대세를 이룬다”고 했다. 실제로 유신고 졸업과 동시에 2005년 프로에 뛰어든 최정은 올해 나이가 만 27세에 불과하다. 9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던 그가 앞으로도 큰 기복 없이 선수 생활을 한다면 만 31세, 35세에 두 차례 더 4년 계약을 노려볼 수 있다. 야구 관계자 B 씨는 “최정 같은 선수는 건실함의 상징이다. 잘만 하면 세 번의 FA로 최대 200억 원까지 벌 수 있는 선수인 것 같다”고 예측했다. 이 때문에 KBO는 2011년부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선수에 한해 FA 자격 기한을 8년으로 단축하기도 했다. LG에서 넥센으로 간 이택근(고려대 졸업)이나 FA 계약을 맺고 롯데에 남았던 조성환(원광대 졸업) 등이 이 제도의 첫 수혜자였다. 단국대를 졸업한 한신 오승환도 삼성에서 8년을 뛰어 FA 자격 요건을 채웠지만, 해외 진출 FA는 대졸 선수도 9년을 채워야 한다는 예외 조항 때문에 임대 선수로 일본에 진출해야 했다.
# 잘 만 하면 두 번 ‘대박’도 가능하다
한 번 FA를 신청한 선수는 4년 뒤 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의 FA 대박은 모든 프로 선수의 꿈. 그만큼 꾸준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예전에는 사실 FA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4년의 계약기간 동안 거액의 연봉이 보장돼 있으니, 9년간 쉼 없이 달려온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해이해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FA를 앞둔 해에 팔이 빠져라 던지다가 계약하자마자 부상에 시달리는 투수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모범 FA’들이 많아졌다. 선수들의 몸 관리나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다. FA 자격을 다시 얻고도 또 한 번 특급 대우를 받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홍성흔은 첫 FA 때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했다가, 다시 4년 뒤 친정팀 두산으로 돌아가는 진귀한 사례도 남겼다. 물론 두 번 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았다. SK에서 한 차례 FA에 성공한 뒤 두 번째 FA 때 NC로 이적해 좋은 대우를 받은 이호준도 모범사례다. 수십억 원대 FA 계약을 두 번이나 성공시킨 C 선수는 “요즘은 FA가 됐다고 성적이 떨어졌다가는 ‘돈값 못 한다’는 비난과 야유를 두 배로 더 받기 십상이다. 은퇴해서도 ‘먹튀’(돈만 먹고 튀었다는 의미의 속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느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내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강민호는 지난해 말 역대 FA 최고액인 4년 총액 75억 원을 받고 롯데에 잔류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과열된 시장, 적정 몸값은 얼마?
삼성에서 은퇴한 심정수는 10년 가까이 ‘FA 대박’의 기준으로 군림했다. 2005년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4년 최대 60억 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계약금 20억 원, 연봉 7억 5000만 원, 플러스마이너스 옵션 10억 원이 세부 계약 내용. 지금도 엄청난 금액이니, 10년 전에는 정말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졌다. 안타깝게도 심정수는 계약기간 4년 가운데 2년만 제대로 된 활약을 했다. 야구 관계자 D 씨는 “그 이후 FA 몸값의 거품이 조금 꺼졌다가 2~3년 전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 E 씨도 “심정수는 옵션 조건을 대부분 채우지 못해 실제 수령액이 60억 원에 훨씬 못 미쳤다. 그런데도 늘 부풀려진 몸값의 상징처럼 알려져서 억울한 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 예전 FA 선수들의 몸값 앞에는 늘 ‘총액’이 아닌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구단들은 FA 계약을 발표할 때, 옵션 포함 수령액을 공개해 해당 선수의 자존심을 세워주곤 했다.
요즘 선수들은 다르다. 수십억 원짜리 계약이 줄을 잇는 것은 물론, 발표 금액이 모두 순수 보장 금액이다. 앞서의 D 관계자는 “요즘 선수들은 다른 FA들의 몸값이 어느 정도 되는지 ‘시장 조사’를 다 마친 뒤에 협상에 임한다”며 “처음부터 ‘옵션을 걸면 계약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플러스 옵션은 챙길지언정, 마이너스 옵션은 무조건 뺀다. 따라서 발표 금액보다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더 많은 선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예를 들어 포수 강민호는 지난해 말 역대 FA 최고액인 4년 총액 75억 원을 받고 원 소속구단 롯데에 잔류했다. 계약금만 35억 원에 달하고 연봉도 무려 10억 원씩이다. 그런데도 롯데가 이 계약에 5억 원이 넘는 플러스 옵션을 붙이면서 ‘성의 표시’를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80억 원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제 웬만한 돈으로는 ‘FA 대어’ 한 명을 잡기도 어렵다. 앞서의 B 관계자는 “솔직히 돈을 무리하게 써서 FA 선수를 영입하면, 남은 선수들의 연봉 정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이제는 양질의 FA 선수를 여럿 잡아 오는 게 프런트의 능력처럼 여겨지는 시대라 구단들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E 관계자는 반대의 해석도 내놓았다. “오히려 프런트가 거액을 들여 선수를 사왔는데도 성적이 나지 않으면, 그 후는 무조건 현장의 책임이 된다. 프런트는 ‘나는 할 만큼 했다’라고 내세울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먹튀 최다 영입’ LG의 잔혹사 30-30클럽 홍현우 광주의 보물이 잠실의 애물로 ‘FA 잔혹사’를 얘기하다 보면, LG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LG는 FA 제도 도입 초기부터 대형 외부 FA 영입에 돈을 많이 썼다. 안타깝게도 효과는 거의 보지 못했다. 2007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외야수 이진영과 내야수 정성훈 정도가 LG의 FA 역사에 위안을 주는 모범 사례. 둘은 4년 뒤 FA 재 자격을 얻은 뒤에도 나란히 LG에 잔류했다. 그러나 이들 외에는 대부분 씁쓸한 기억만을 남긴 채 LG를 떠났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 홍현우. 다음은 진필중 차례였다. 두산에서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활약하던 투수 진필중은 2003년 KIA로 트레이드됐다. 한 해 동안 19세이브를 올린 뒤 곧바로 FA 자격을 얻었다. LG는 붙박이 소방수 이상훈이 있었음에도 진필중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4년간 최대 30억 원을 안겼다. 당시 역대 FA 투수 최고 금액이었다. 진필중 영입에 성공한 LG는 2004시즌에 앞서 의기양양하게 간판스타 이상훈을 SK로 트레이드시켰다. 그러나 곧 후회했다. 진필중은 2004년 15세이브를 기록하며 전년도 기록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은퇴할 때까지 더 이상 세이브를 올리지 못했다. 결국 LG는 2006시즌이 끝난 뒤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다른 팀도 아닌, 잠실 라이벌 두산의 우완 에이스 박명환과 FA 계약을 맺었다. 4년간 최대 40억 원. 진필중의 몸값을 뛰어 넘는 역대 FA 투수 최고액이었다. 간판타자 이병규를 일본 주니치로 떠나보냈던 LG는 반대로 일본진출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은 박명환을 얼른 붙잡았다. 박명환도 계약 첫 해인 2007년 10승을 올리며 기대치를 높였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계속된 어깨 부상으로 거의 공을 던지지 못했다. 2010년 4승을 올린 게 남은 활약의 전부. 결국 박명환은 6년간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LG를 떠났고 지금은 NC에서 재기에 몰입중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