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연합뉴스
이 때문에 북한은 최근까지 미국의 워싱턴 라인 직접 구축을 시도하기도 했고, 일본과는 수교협상을 재개하며 난국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심지어 지난 인천아시안게임에는 초특급 방문단을 꾸려가며 남한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번 김정은 특사의 러시아 방문은 결국 이러한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최후의 고육책과 같은 성격이 짙다. 필자는 최근 지난해 7월 있었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러시아 외무성 간의 회담 당시 구체적으로 오갔던 사안들을 북한 내부의 고위급 관계자를 통해 입수할 수 있었다. 꼭 1년 전 사안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현재 북한과 러시아 간 논의할 수 있는 주제라 봐도 무방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핵심인 군사적 측면에서 김계관은 러시아에 ‘북의 체제를 완전히 보장받는 평화협정 체결 전에는 핵개발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 사실상 핵개발 승인을 부탁한 것. 더불어 그는 러시아에 ‘한미 공동 군사훈련에 대비한 북-중-러 공동 대응’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6자회담 재개 분위기 조성’을 부탁했다.
1년 전, 협상에서 북한의 군사적 제안에 대한 러시아 측의 답변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일단 러시아는 북한 핵개발 용인에 대해 ‘핵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안전하고 효율성이 높은 토륨(Thorium) 원자력 발전방식’을 제안하며 ‘향후 6자회담에서 러시아 측은 북한의 에너지 상황을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이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질을 줬다. 북-중-러 군사적 공동 대응에 대해서는 ‘지원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참고로 중국과 러시아는 정기적으로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 중이다.
김계관은 당시 경제적 분야에 대해서도 러시아 측에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기본적으로 북-중-러 경제협력체제 구성 및 경제발전 도모를 희망하는 한편, 차관 요청과 에너지(석유)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여기에 더불어 북한 내 가스 및 유전 예상 지역에 대한 개발 지원과 모스크바 인근 유휴지 유상 임대조건 하에, 북한 근로자 5000명을 파견해 협동농장을 조성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또 러시아 파견 근로자를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증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1년 전 러시아 외무성은 이에 대해 부분적 수용 의사를 밝혔다. 북한의 대러시아 정부 차원의 차관 요구에 대해선 즉시 거절했으며, 다른 제안에 대해선 검토하겠다는 답변이었다. 특히 ‘대화 국면’ 등 상황 변화에 따라 에너지(석유)는 인도적 지원을 검토하겠다는 것. 더불어 러시아 측은 당시 북한에 한반도 가스관 연결 사업에 북측이 협조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진전된 사안이 있다면, 러시아 측이 이후 북한 측의 뜻을 받아들여 노동자 파견 증원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에 앞서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했던 2011년 8월에는 러시아의 차세대 군사무기들을 구입하려는 안건들이 중요하게 논의됐다. 특히 당시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의 이지스급 최신구축함을 도입하겠다는 의향을 비쳤다.
1년 이상이 지난 현재, 앞서의 협의 내용들은 진행형에 가깝다고 평가된다. 다만 러시아의 주변 상황에 있어선 다소 변수가 생겼다. 올해 우크라이나 사태가 그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에 러시아가 직접 개입한 것이다. 서방세계와 러시아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짐에 따라, 어찌 보면 북한 입장에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앞서의 논의 사안들을 토대로 볼 때, 최룡해는 러시아 측에 북핵 문제와 인권 문제의 지지를 요청하는 한편, 큰 틀에서의 군사·경제적 지원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동행한 김계관과 노광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은 병기 담당이기에 외교와 군의 실무급 담당자들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이번 방러에서 토의된 내용들은 향후 개최될 수 있는 북-러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높은 의제들이다. 현재 동북아 정세 관련, 중요한 6자회담국 간 외교에서 북한 핵과 관련한 키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아니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쥐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응할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가 궁금해진다.
이윤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