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갖고 있었던 1백67억원에 달하는 괴자금의 실체는 무엇일까.
검찰의 초기 공소내용처럼 재용씨의 외할아버지인 이규동씨로부터 이 같은 거액을 증여받은 것인가 아니면 1심 재판부의 판단대로 전두환씨 은닉 비자금 가운데 일부인가. 그것도 아니면 재용씨의 주장대로 자신의 결혼 축의금을 이규동씨가 10여 년 동안 재테크를 통해 불려준 것인가.
재용씨 사건이 새삼 관심을 끄는 것은 검찰의 초기 공소내용과 1심 재판부의 판단 사이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일부 발견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금의 출처 부분이 그렇다. 자금의 출처는 법적인 단죄 여부를 떠나 1천6백72억원에 달하는 전두환씨의 미납 추징금의 징수 여부와 전두환씨의 은닉 비자금의 실체와 연결돼 있어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우선 재용씨 괴자금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사건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검찰이 재용씨의 괴자금을 포착한 것은 지난해 8∼9월쯤이다. 검찰은 당시 현대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등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던 김영완씨의 계좌를 추적하던 중 재용씨의 1백억원대 괴자금을 발견했다. 검찰은 미국에 체류중인 재용씨에게 귀국을 종용했고, 재용씨는 지난 2월2일 전격 귀국했다.
검찰은 재용씨를 상대로 출퇴근식 조사를 벌인 끝에 재용씨의 괴자금 가운데 73억여원이 지난 87년 전두환씨가 대통령 재직시 경호실의 재무관 등이 관리했던 자금과 연결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즉 이 괴자금의 출처가 전두환씨 비자금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지난 2월10일 재용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수감했다. 이것이 재용씨 관련 사건의 개요다.
하지만 정작 검찰이 재용씨를 기소할 때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검찰은 지난 2000년 12월 말 이규동씨로부터 액면가 1백67억원(시가 1백41억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받고도 증여재산을 은닉, 74억3천8백만원 상당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를 적용,재용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재용씨가 보관하고 있었던 1백67억원 가운데 73억원 가량이 전두환씨가 관리하던 비자금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1백67억원 중 최소 73억원은 전두환씨가 재용씨에게 증여해줬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럼에도 검찰은 재용씨의 주장대로 1백67억원을 이규동씨로부터 증여받았다고 기소했다.
재용씨는 법정에서 괴자금은 모두 이규동씨에게 물려받았다고 초지일관 주장했다. 재용씨는 지난 87년 12월 포철 박태준 회장의 막내딸과 청와대에서 결혼할 당시 축의금으로 20억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용씨는 “아버지가 축의금을 일절 받지 못하게 해 지인들이 어쩔 수 없이 외할아버지에게 축의금을 전달했고, 외할아버지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나에게 이 축의금을 전해줬다”고 진술한 것이다. 이어 재용씨는 결혼 이듬해인 88년 1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이 축의금을 맡기고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용씨는 이규동씨가 육군 중앙경리단과 농협 등을 거쳐 자금 운용에 남다른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맡긴 20억원의 축의금을 14년 만에 1백67억원 가량으로 불려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변론이 마무리될 무렵인 지난 5월21일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다. 검찰의 공소내용은 재용씨의 괴자금은 이규동씨로부터 받은 것으로 돼 있는데, 만약 이 자금의 출처가 전두환씨 자금으로 드러나면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은 경우와 제3자로부터 증여를 받은 경우는 포탈세액도 달라져 심판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도록 한 것이다.
검찰은 재판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재용씨 괴자금의 출처가 이규동씨 또는 전두환씨라고 다소 애매하게 공소장을 바꿨다. 1차적으로 자금의 출처는 이규동씨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두환씨일 것이라는 것이 바뀐 공소내용이다.
법원은 지난 7월30일 1심 선고를 하면서 괴자금 1백67억원 중 73억원은 전두환씨 자금으로 추정된다면서 징역 2년6월에 벌금 33억원을 선고했다. 나머지 94억원 경우 이규동씨로부터 받았다는 재용씨의 진술만 있을 뿐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1심 법원의 판단대로 73억원의 출처는 전두환씨가 확실한가. 그렇게 단정할 수만도 없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법조인들의 판단이다.
재판부도 재용씨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통해 이 부분을 명쾌하게 결론내지는 못했다. 다만 전두환씨 자금으로 보는 것인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맞다는 수준 정도다.
민사사건과 달리 한 개인의 유·무죄를 따지는 형사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의 공소내용이나 법원의 판결내용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재용씨 변호인단은 당연히 검찰 공소내용이나 법원의 판단 모두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펄쩍 뛰고 있다. 변호인단은 재용씨 관련 계좌추적을 샅샅이 뒤진 검찰이 괴자금의 출처를 전두환씨로 단정하지 않고 재용씨의 말대로 이규동씨로 보고 기소한 이유는 전적으로 물증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전두환씨 은닉비자금과 연결된다는 73억원 부분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허점 투성이라는 것이 변호인단의 설명이다. 변호인단도 재용씨가 최종 보관하고 있었던 자금을 역추적해보면 전두환씨 관리자금과 연결된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자금의 소유주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두환씨 관리계좌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여러 명의 사채업자를 통해 재용씨에게 흘러들어갔다고 가정할 때 재용씨가 최종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자금을 전두환씨 자금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두환씨 관리계좌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일반 사채업자로 넘어가는 순간 자금의 소유주는 사채업자로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
변호인단은 실제 법원이 전두환씨 자금으로 본 73억원 중 일부가 이 같은 경로를 통해 재용씨로 연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용씨 재판에서도 사채업자들이 증인으로 나와 전두환씨 관리계좌에서 흘러나온 채권을 매입한 뒤 되판 적이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 같은 상황임에도 재판부가 이 자금을 모두 전두환씨 자금으로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면서 판결 이후 즉각 항소했다. 검찰도 이 같은 정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 자금의 출처를 전두환씨로 단정하지 않고 이규동씨라고 한 이유라는 것이 변호인단의 설명이다. 실제로 검찰이 작성한 재용씨 관련 수사기록에는 ‘1백67억원대의 괴자금은 전두환씨 비자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만 돼있다. 전두환씨 비자금일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을 검찰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 재용씨 사건은 여러 점에서 온 국민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씨 차남 재용씨가 등장하고, 자금의 출처가 전두환씨일 가능성이 제기된 데다 탤런트 박상아도 관련됐다는 단서가 일부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이나 법원이 무죄 취지의 결정을 내릴 경우 국민적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점을 감안, 여론을 의식한 결정을 내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명백한 물증보다는 정황증거를 폭넓게 적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재용씨 괴자금의 출처에 대한 판단은 이제는 항소심 재판부의 몫으로 넘어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추가적인 계좌추적 결과가 나오지 않는 한 항소심 재판부도 재용씨 자금 출처와 관련해 물증보다는 정황증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진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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