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고위 당직자는 비공개 석상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의원은 “참석하신 한 의원이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시더라. ‘왜 요즘 한국 경제를 이야기하는 곳에는 죄다 최경환(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만 등장하는가. 청와대 경제수석은 뭐 하고 있고, 한국은행 총재는 어디 있으며,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은 어디에 계시느냐’고. 그 얘기를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정책이 너무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끌고 간다는데 동의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청와대와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최 장관이다 보니 누구 하나 입대는 이 없다. 금리도, 부동산도, 보험도 죄다 최 장관 입을 통해 나오다 보니 모두가 입을 꾹 다물고 제 목소리도 제 구실도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 장관에게 너무 힘이 쏠려 있어 정치적 내상이 상당히 클 수 있다는 말도 들린다. 내년 초면 ‘초이노믹스’에 대한 국민적 판단이 이뤄질 것이란 의미다.
현재 여권에선 이한구 의원만이 최 장관을 유일하게 겨눈다. “지금 정부가 부동산 정책 잘못하는 부분은 자꾸 빚내서 집 사라 하는 정책이다”, “지금은 경제 체질 개선하는 정책을 강하게 밀어야 한다” 등 공개석상에서 쓴소리를 내뿜는다. 당내에선 경제정책에서만큼은 이 의원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최 장관이 한 나라의 경제 수장으로서는 문제라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된 한 친박 초선 의원은 이런저런 정국 현안을 이야기하던 중 대뜸 “요즘 최 장관에 대해 듣는 이야기가 좀 없느냐”고 물었다. 왜 그러시냐 하니 “모르겠다. 예전 공천할 때 이야기에서부터 최근의 여러 말까지 퍼지는 이야기가 있다”고 보탰다. 내용을 물으니 “그런 이야기 퍼다 나르기는 싫은데…. 아무튼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며 입을 닫았다.
야권이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 비리)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최 장관이 이명박(MB) 정부에서 지식경제부(현 산업자원통상부) 장관을 지냈고 자원외교의 최종 결재라인에 있었다. 자원외교 과정과 결과가 국조로 낱낱이 공개되고, 특검까지 가게 되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야권은 서민증세, 오르지 않는 부동산, 기업에 대한 징벌적 투자 강요, 국부유출 등을 집요하게 캐물을 예정이다.
정치권 돌아가는 사정에 밝은 한 베테랑 국회의원 보좌관은 “주류를 끄집어 내려야만 누군가 성장할 수 있는 곳이 정치판이다. 지금이 그런 시기”라며 “제2의 누구, 누구와 같은 전철이라는 말만 안 나왔지 모두들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 장관이 날 위에 서서 위태롭다는 의미로 들렸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대학 실험실에서 손잡이를 무심코 잡아당겨 물벼락을 맞는 모습. 황 장관이 후배인 김재원 의원한테 ‘월권’이라는 소리를 들은 민망한 상황과 물벼락이 오버랩된다. 연합뉴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대한 이야기는 민망한 수준이다. 당 대표까지 지낸 그가 국회 시스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나무람까지 내포돼 있다.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두고 ‘국고에서 우회 지원한다’고 합의를 했다.
그 뒤 황 장관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여야 간사인 신성범 김태년 의원과 3자 회동을 갖고 누리과정 확대에 따른 추가 예산소요 5600억 원을 국고에서 지원하기로 구두 합의했다. 그런데 이를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당 지도부와 합의한 사실이 없다. 정부에서 결정한 이가 있다면 이는 월권”이라며 뒤집어버린 것이다. 아주 표독스러운 표현으로 말이다.
황 장관이 5선, 김 부대표가 재선이다. 황 장관이 17세 위로 서울대 법대 선배이기도 하다. 황 장관의 망신살이 이만저만 아닌 것이다. 원내지도부 라인의 한 관계자는 “황 장관이 국회에 계실 때 어당팔(어수룩해도 당수는 팔단) 소리를 들으셨는데 요즘에는 ‘팔’자가 떨어져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신다”며 “당대표까지 지낸 분이 국회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비아냥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온다. 까마득한 후배의 활극에 나가떨어진 격”이라고 전했다. 이번 촌극으로 친박계에서는 서열이 정해졌다. 황 장관의 위치가 얼마나 열악한지도 알려졌다.
앞서의 여권 인사는 “일단 정무수석은 여당보다는 야당과의 소통에 능해야 한다. 파행 정국이거나 개헌 이야기가 돌출되는 비상사태에서 뒷자리, 술자리에서 청와대 얼굴마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여의도 왔다는 이야기, 야권과 교감한다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며 “야당의 입장이나 정보를 미리 파악해 선제적 대응을 해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박 대통령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것 아니냐, 상황보고에만 열 올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여의도에 칼바람이 예고되는 요즘, 정가 울타리를 잠시 떠난 이들에 대한 평가가 지독하리만큼 혹독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