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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노무현 대통령,이부영 신임의장 | ||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코드가 맞지 않는다”라거나 “노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이 의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도 왕왕 나온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자리를 꿰차고 있는 두 사람이 과거가 어땠기에 그러는 것일까. 두 사람은 완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을까.
#장면 하나=대통령선거전이 한창 무르익던 지난 2002년 12월 초.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맡던 이 의장이 이회창 후보의 TV 지원연설자로 나섰다.
“21세기 첫 번째 대선은 누가 이 나라를 제대로 개혁할 수 있는가를 가려 뽑는 개혁경쟁입니다. 확실한 개혁, 합리적 개혁, 예측 가능한 개혁을 할 수 있는 이회창 후보를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어 “일등 모범운전사에게 여러분의 운명을 맡기겠습니까, 난폭하고 미숙한 초보 운전자에게 나라의 핸들을 맡기겠습니까”라며 민주당 소속의 노무현 후보를 공격했다.
#장면 둘=노 대통령과 이 의장이 지난 2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이날 만남은 노 대통령이 뮤지컬 <청년 장준하>를 관람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찾은 자리에서 이뤄졌다. 노 대통령은 세종문화회관에 도착, 입구에서 기다리던 이부영 의장과 악수를 하면서 축하 인사를 건냈다. 노 대통령은 이 의장에게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어깨가 무거우십니다. 잘하실 겁니다”라고 인사했고, 이 의장은 이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 의장과 노 대통령의 인연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 김종필 총재와 3당합당을 하자, 노 대통령이 이에 반발해 김정길 홍사덕 이철 전 의원 등과 함께 합류를 거부하고 새 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른바 ‘꼬마민주당’이다. 이부영 박계동씨 등 재야그룹이 이에 합류했고, 1991년 후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민당과 야권통합을 이뤘다.
이 의장과 노 대통령은 동지 관계로 정치를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1993년 8·12 대구 동을 민주당 보선 후보 결정을 놓고 크게 틀어졌다. 보선 결과 민주당이 패하자 노 대통령은 ‘제 사람 심으려 욕심부리다 영남권 의석 하나를 날려 버렸다’고 이 의장을 맹비난했다.
두 사람은 1995년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구당모임’을 결성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노무현 대통령이 1996년 김원기 이철 유인태 제정구 원혜영 김부겸 등 개혁그룹과 민주당을 나와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구성할 때 이부영 의장은 반(反)통추를 선언한 뒤 한나라당과의 통합을 주도했다. 이윽고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노 대통령은 김대중 후보 쪽에, 이 의장은 이회창 후보 쪽에 가담,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 의장은 노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노무현 공격의 선봉장에 서서 이회창 후보를 지원, 두 사람의 관계는 화해 불가능한 길을 걷는 듯이 보였다.
노무현 참여정부 출범 후 신당 논의에 때맞춰 이 의장은 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 9월 열린우리당 창당에 기여한다. 이 의장과 노 대통령이 다시 한 배를 타는 순간이다. 그리고 올 1월 전당대회 상임중앙위원 경선에서 3위 당선.
하지만 노 대통령과의 불편했던 과거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개각 때마다 낙선자 배려라는 말이 나돌았지만, 노 대통령은 4·15총선에서 떨어진 이 의장을 부르지 않았다.
이윽고 이 의장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선친의 친일행적 등과 맞물린 신기남 의장의 낙마, 그리고 당 의장직의 승계…. 이 의장은 20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일본군 장교로 항일독립투사들을 잡아들였고, 해방 후엔 국군 내 (공산주의자) 프락치 총책이며, 자신이 살려고 자신이 포섭한 사람들을 고발해 죽음으로 몰아넣은, 배신과 변신에 능한 인물이다.”
이런 주장은 의장직 승계 이전 당시의 발언과 모순된다. 불과 한 달 전인 7월21일 이 의장은 확대간부회의에서 “박근혜 대표가 원한다면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문제는 조사 대상에서 빼놓을 수 있다. 큰 차원에서 보면 친일 진상 규명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은 털끝만한 비중밖에 없다”고 했다.
여권 내에서는 이런 이 의장의 강성 발언에 대해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분히 노 대통령을 의식한 발언이란 것이다. 노 대통령과 자신의 ‘코드’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즉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된 발언이라는 시각이다. 노 대통령과 불신의 관계에 있었던 이 의장이 이제 여당 대표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노 대통령과 자연스럽게 개혁코드를 맞췄다는 분석인 셈이다. 이런 효과 때문인지 한나라당 출신인데다 당내 아무런 기반도 없는 이부영체제가 벌써 안착했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의장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은 바뀌었을까. 청와대의 한 참모는 “not yet”, 즉 “아직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참모는 “이부영 의장 취임에 대해 노 대통령이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해찬 총리가 임명됐을 때, 청와대가 노 대통령과 이 총리의 끈끈했던 관계를 자세히 소개했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신기남 전 의장이 취임했을 때나 야당인 한나라당의 김덕룡 원내대표가 취임했을 때에도 노 대통령은 박봉흠 정책실장을 통해 축하난을 보냈지만 이 의장에겐 한 단계 아래 급인 이병완 홍보수석을 보냈다.
청와대 기류를 잘 알고 있는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이 의장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뢰가 형성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의장의 임기는 전당대회가 예정된 내년 2월까지다. 그 뒤 의장에 재취임하기는 어려운 게 당 안팎의 상황이다. 지난 십수년 동안 만들어진 불신을 씻어내기 위한 시간으로는 6개월은 너무 짧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인사는 “노 대통령은 이부영 의장을 함께 가야 할 여권의 파트너라기보다는 그저 과도기적 체제의 수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허소향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