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메리 레이가 스토킹한 데이비드 레터맨(작은 사진 왼쪽)과 전직 우주 비행사 F. 스토리 머스그레이브.
1952년에 미국 일리노이에서 태어난 마거릿 메리 레이는 중산층 가족의 예쁘고 똑똑한 여성이었다. 4남매 중 둘째였고, 아버지 조지 레이는 공장 엔지니어였고 어머니 로레타는 간호사. 그레이슬레이크 하이스쿨에 다닐 땐 전도 유망한 우등생이었고 아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학생이었다. 197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간호학과에 들어간 그녀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간호사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심각한 유전자는 그녀에게 평범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거릿의 아버지인 조지 레이는 결혼 전부터 정신분열증 증세가 있었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정신병은 유전되었고, 마거릿의 오빠인 빌 레이는 22세에 전속력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나무에 충돌하는 방식으로 자살했다. 남동생인 데이비드 레이는 의도적인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21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거릿도 예외는 아니었다. 2학년 때 대학을 중퇴한 그녀는 목수인 게리 조한슨이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네 명의 아이를 낳았다. 육아와 살림으로 바쁜 생활. 하지만 그녀는 점점 심해지는 정신분열증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남편에게 양육권을 넘긴 채 1982년에 이혼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재혼해 다섯 번째 아이인 알렉스를 낳았다. 주변 사람들과 친구와 가족들은 도움을 주려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방랑벽은 시작되었다. 마거릿 레이는 몇 달씩 사라지곤 했다. 히치하이킹으로 미국 대륙을 횡단한 적도 있었고, 산 속의 오두막에서 홀로 지낼 때도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TV에서 데이비드 레터맨의 토크쇼를 본 그녀는 레터맨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고, 1988년부터 스토킹은 시작되었다. 뉴욕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링컨 터널에서 3달러의 통과료를 내지 않으면서 그녀의 행동은 세상에 알려졌다. 톨게이트 직원이 적발했을 때 그녀는 빨간 포르셰를 타고 있었는데, 그건 레터맨의 차였다.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 알렉스가 앉아 있었다. 마거릿은 자신이 레터맨의 아내이며, 알렉스는 레터맨의 아이라고 둘러댔다. 이후 그녀는 1994년까지 수없이 코네티컷에 있는 레터맨의 집에 침입했고, 저택의 테니스 코트에서 잘 때도 있었다. 어느 일요일 밤엔 애인과 함께 침실에 있는 레터맨과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는데, 마거릿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
사회보장연금에 의지해 살아가던 마거릿은 정신분열 악화로 결국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흥미로운 건 자신을 끊임없이 스토킹 하는 이 여인에 대해 레터맨이 어떤 연민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타블로이드에선 연일 떠들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신의 토크쇼에서 조크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녀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고, 그러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스토커를 도우려 했다. 6년 동안 다섯 번의 재판을 받아 31개월 동안 클리닉과 갱생원에서 치료를 받은 마거릿 레이. 약물 치료를 통해 그녀의 병세는 다행히 호전되었지만, 병원이나 감호소를 나오면 그녀는 약을 먹지 않았다. 항정신성 약물의 부작용인 체중 증가와 무기력증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후 마거릿의 관심은 레터맨에서 전직 우주 비행사인 F. 스토리 머스그레이브에게 갔다. 그의 진실하면서도 지적인 면에 빠진 것이다. 그녀는 머스그레이브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고 소포를 보냈다. 1994년엔 리포터를 가장해 휴스턴의 존슨 스페이스 센터 앞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1997년엔 플로리다에 있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머스그레이브도 레터맨처럼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고, 경찰은 그녀를 다시 병원으로 보냈다. 하지만 악순환이었다. 병원에서 호전된 병세는, 병원을 나가면 약물 치료를 끊으면서 재발되었다. 1998년에 병원에서 나와 콜로라도에서 사회보장연금에 의지해 잡일을 하며 살아가던 마거릿 레이. 그녀는 1998년 10월 5일,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46세의 나이였다. 어머니에게 보낸 유서엔 이렇게 써 있었다. “내 여행은 끝났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 계곡에서, 고통 없이 순식간에 내 삶을 마무리할 방법을 선택했다.” 그녀의 죽음에 레터맨과 머스그레이브는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물려받은 정신적 고통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섯 아이의 어머니였던 마거릿 레이. 레터맨은 자신의 쇼에서 “혼란스러웠던 삶의 슬픈 결말”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살아 있을 동안엔 타블로이드에 오르내리며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그녀의 삶은, 죽음 이후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타를 위협하는 사이코가 아니라, 끊임없이 내적 갈등과 고통을 겪었던 운명의 희생자였던 것. 엄마를 빼닮았기에 자신도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았던 딸 애너-리사 조한슨은 어느 인터뷰에서 힘들게 입을 열었다. “엄마는 암처럼 치명적이고 고통스러운 정신병에 의해 파괴되고 있었다. 나는 항상 엄마를 사랑했다. 하지만 레터맨의 집에 침입하는 그 여자는 증오했다. 나는 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두려울 뿐이다. 나의 어머니는 아픈 사람이었고, 사람들은 그 질병을 조크의 대상으로 삼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