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각파티가 벌어졌던 문제의 가평 C 리조트 전경.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서울 용산경찰서는 10월 29일 중국에서 엑스터시를 밀반입해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강남구 A 클럽 사장 김 아무개 씨(33)와 용산구 이태원동 B 클럽 DJ 안 아무개 씨(31) 등 12명을 구속하고 투약자 4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5월경부터 이태원과 홍대 주변 클럽촌에서 수시로 엑스터시를 투약했고, 주말에는 가평 리조트 등지로 무대를 옮겨 엑스터시를 먹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밤새 춤을 추는 원정 환각파티까지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유흥가 일각에서는 클럽에서 마약류를 판매하는 실태가 일반화돼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경기도 가평군에 위치한 C 리조트. 청평호숫가에 위치한 이 리조트는 평소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졌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 리조트는 주말 하루 숙박비가 8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로 고가의 리조트는 아니다.
C 리조트에서는 매년 주기적으로 ‘볼룸파티’를 주최한다. 회원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참석자를 모아 클럽분위기를 연출하는 행사다. 리조트 홈페이지를 살펴본 결과 여름 주말을 이용해 열렸던 이 행사에는 보통 50~10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홈페이지 한켠에는 한꺼번에 한데 모여 춤을 추고 새벽녘까지 술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게재돼 있었다.
원정 환각파티 보도가 터진 직후 직접 찾아가 본 리조트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인근 펜션 주인에게 문의하자 “언론 보도가 나간 직후 직원들과 사장은 자리를 잠시 피한 듯하다”고 말했다. 리조트는 청평호수와 바로 맞닿은 곳에 있어 상당히 경치가 좋았다. 주변에 상가 등이 전혀 없는 외진 곳이어서 새벽 늦은 시간까지 큰소리로 음악을 틀어놓아도 특별히 문제될 곳은 아니었다.
리조트 내부에는 넓은 정원이 있었다. 가운데 위치한 수영장 바로 옆 선반에는 생맥주를 따를 수 있는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그 뒤편으로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시설이 구비돼 있었다. 선반 서랍을 열어보자 불과 얼마 전 파티를 벌인 듯 마시고 남은 듯한 싸구려 양주병이 가득했다.
경찰에 조사결과 C 리조트 운영자는 이번 사태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리조트 사장은 마약 원정 파티가 벌어졌던 7월경, 단체 손님 예약을 받고 장소와 장비만 임대해 줬을 뿐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당시 이곳에서 원정 마약 파티를 주선한 사람은 강남구 A 클럽 사장 김 아무개 씨와 용산구 이태원동 B 클럽 DJ 안 아무개 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당일 엑스터시와 대마초뿐만 아니라 필로폰까지 조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수사 결과 김 씨는 올해 1월경부터 마약류를 구해 유통시켜온 것으로 조사됐다. 약물은 중국으로부터 의류를 수입해 판매하는 한 의류업체 대표에게서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류업체 대표는 필로폰과 대마 등 마약류 약품들을 옷 속에 숨겨 대량으로 국내에 유통시켜왔던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 엑스터시. | ||
김 씨의 환각파티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5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한 동호회로 발전됐다. 이들은 지난 5월경부터 이태원이나 홍대 주변 클럽촌을 주무대로 삼아 수시로 엑스터시를 투약했다. 주말에는 200~300명의 회원이 모여 가평 리조트 등지로 무대를 옮겨가며 엑스터시를 먹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밤새 춤을 추는 원정 환각파티를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용산경찰서 마약범죄수사팀은 지난 8월 이태원 등지 클럽촌에서 마약 파티가 벌어진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끈질긴 잠복 끝에 마약이 거래되는 현장을 덮쳐 김 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김 씨를 검거한 후 클럽 압수수색 과정에서 고객명단을 입수했다. 지난 7월 C 리조트 환각파티에 참석했던 인물들의 명단이었다. 이후 경찰은 김 씨와 B 클럽 DJ 안 씨 등 마약을 손님들에게 판매한 판매책 12명을 구속기소하고 김 씨 등에게서 엑스터시를 구입해 투약한 이 아무개 씨(28·여) 등 4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 씨의 손님들은 대부분 강남의 부유층 자제를 비롯해 해외 유학생, 유흥업소 종사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앞으로 마약 투약자들이 더 검거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입수된 명단에 적힌 인원만 500명이 넘는다”며 “수사 대상자가 워낙 많아 혐의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터진 직후 유흥가 주변에서는 강남역과 홍대 일대 회원제 클럽 등에서 마약류를 판매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환각파티가 일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자칫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강남의 한 클럽을 주로 이용한다는 이 아무개 씨(31)는 “강남 일대뿐만 아니라 홍대 등지의 유명 클럽들에서 엑스터시 등 마약류를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라며 “주로 단골손님들을 대상으로 엑스터시 등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클럽 여직원들이 약물을 섞은 음료수를 판매하는가 하면 클럽 내에서 손쉽게 엑스터시 등 알약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또 일부 회원제로 운영되는 고급 클럽에서도 웨이터들이 회원들을 대상으로 마약류를 판매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경찰은 이런 우려에 대해 “이미 우리도 강남과 홍대 일대 클럽들을 중심으로 상습 투약자가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앞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마약류가 유통된 것으로 파악된 클럽들에 대해서는 무허가 영업이나 업태 위반 등을 철저히 조사해 행정처분을 받도록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