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축구 구단의 한 외국인 감독은 얼마 전 구단이 사준 승용차를 거절했다고 한다. 사장과 같은 차를 탈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승용차를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체면으로 생각하는 한국적 정서를 고려한 것이었다.
남녀 사이에도 차는 때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30세 직장인 K 씨는 얼마 전 소개팅에서 상대 여성이 자기 차를 몰고 와서는 헤어질 때 훌쩍 가버리는 바람에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상대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그녀의 집 앞까지 에스코트 해주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하는 그로서는 차를 몰고 나온 여성은 그런 배려를 받을 준비가 안 됐다고 본 것이다. 더구나 그의 경험상 차를 같이 타면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도 될 수 있을 텐데,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차를 몰고 나오는 여성은 남녀 만남의 시나리오도 모르는 눈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실 그날 K 씨를 만난 L 씨가 첫 만남에 차를 몰고 나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몇 달 전 소개팅을 받을 때 상대 남자가 자기 집 근처에 산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일부러 차를 두고 나갔다. 그런데 상대는 자기도 차를 안 갖고 나왔다면서 볼일이 있으니 먼저 가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육감으로는 그 남성이 차를 갖고 나왔는데도 같이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런 핑계를 대는 것으로 여겨졌다. 혼자 전철을 타고 돌아온 그녀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K 씨와 L 씨는 차 때문에 첫 만남을 그르친 셈이다. L 씨가 차를 갖고 오지 않았다면 K 씨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만남의 결과가 좋았을지도 모른다. 상대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차 있다는 말을 안 하고 마음에 들면 데려다 주는 사람이나, ‘어떤 차를 타야 이목을 끌까’ 하는 관점에서 차를 고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걸 보면 차가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제약하는 부분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 차는 그저 액세서리일 뿐…
많은 남성들에게 자동차는 교통수단의 의미 이상이다. 남보다 빨리 달리고 싶은 욕망을 반영하는 동시에 비교우위에 있고 싶은 욕망의 척도가 되기 마련이다. 여성들에게도 자동차는 상대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33세 의사 Y 씨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그는 또래의 젊은 남성들처럼 운동이나 게임, 유흥주점 같은 데는 관심이 없다.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하는 것을 즐긴다. 생활에서 차의 비중이 높다 보니 좀 무리를 해서 외제차를 구입했다고 한다.
얼마 전 소개팅 나갔을 때 그 차로 상대 여성을 에스코트 했는데, 상대는 그가 대단한 경제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그가 아직 집도 없고, 결혼자금도 충분치 않은 걸 알고는 실망한 듯 “그러면서 차는 왜 비싼 거 타고 다니냐”고 말하더란다. 한마디로 ‘된장남’ 취급을 당한 셈이다. 그 후 그는 소개팅을 할 때마다 차를 갖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남녀관계에서 차는 경제력보다는 ‘외모’에 가깝다. 차의 크기가 꼭 경제력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단칸방 살아도 자기 좋으면 밥을 굶어서라도 좋은 차를 타는 거고, 수십 억 원대 아파트에 살아도 차에 비중을 안 둔다면 작은 차를 타는 것이다. 자동차는 그저 그 사람을 장식하는 액세서리 정도일 뿐이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상대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좋은만남 이웅진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