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동향 문건’이 <세계일보>에 보도된 이후 청와대의 대응이 한심스러울 정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11년 3월 9일 당시 박근혜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장 앞에서 안봉근 비서관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이 최근 사석에서 내뱉은 말이다. 지난 11월 28일 ‘정윤회 동향 문건’이 <세계일보>에 보도된 이후 청와대의 대응이 한심스러울 정도라는 평가였다. 이 의원은 “첫 언론보도에 대한 반응부터 ‘과연 이들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심을 떨치기 어려웠다”며 “소위 십상시들이 정윤회 씨 지휘에 따라 국정을 농단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대통령을 보좌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했다”고 일갈했다.
이번 사태의 진행 과정을 되짚어 보면 이런 평가가 과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1월 28일 <세계일보>의 첫 보도에 대해 청와대의 반응은 격앙 그 자체였다. 민경욱 대변인은 오전 브리핑을 통해 “보도에 나오는 내용은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청와대는 오늘 안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도에서 십상시로 언급된 인사들 중 일부는 출입기자들과의 접촉에서 <세계일보>를 험악한 표현으로 비난하면서 “문제의 보도를 받아서 쓰는 언론에도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가 두 차례의 회의를 거쳐 내놓은 첫 반응부터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기된 의혹을 해명하기는커녕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당장 야권에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문건이 찌라시라면, 지금의 청와대는 찌라시를 생산하는 곳이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더욱이 민 대변인의 발표 내용은 사실관계 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우선 민 대변인은 ‘문제의 문건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만들어진 청와대의 문서냐’는 질문에 “유사한 내용을 담은 문건을 바탕으로 보고받은 사실이 있다”고 답했다. ‘보도된 문건을 청와대가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를 저희들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치 <세계일보>에 보도된 문건이 청와대의 공식 문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애매하게 답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건은 박관천 경정이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하던 지난 1월 6일 작성한 것이었고, 청와대 또한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 대변인은 또 해당 문건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됐는지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내용이 구두로 보고됐지만 문건이 보고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김 실장에게 화가 미치는 걸 경계했을지 모르겠지만, 민 대변인은 결국 정윤회 씨와 십상시가 김 실장의 사퇴설을 시중에 유포하는 작당모의를 했다는 내용이 담긴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서를 당사자인 김 실장에게 전달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고 말았다.
보도 첫 날의 이 같은 대응에 대해서는 청와대 인사들도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당시 김기춘 실장의 잘못된 답변 한 마디가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논란’을 낳은 것에서 보이듯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첫 반응은 ‘초동진압’ 여부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민 대변인의 발표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며 “첫날부터 ‘보도된 문건은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이 맞지만, 허위 사실로 확인된 시중 풍문을 담은 것이어서 내부적으로 폐기된 것’이라고 해명했다면 불필요한 억측은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쏟아낸 발언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았다”며 수위조절에 실패한 참모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워낙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이 발생한 만큼 박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문건과 관련해 언급할 것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여권 인사들조차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강하고 거칠게 얘기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내놨다. “<세계일보> 보도 이후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여유가 있었는데, 도대체 참모들은 뭘 하고 있었느냐”는 질책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박 대통령은 우선 이번 사태에 대해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이런 공직기강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번 사태를 실세들 간의 권력암투 사건이 아니라 문서유출 사건으로 규정한 것이다. 곧바로 “대통령이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떠한 유감 표명이나 대국민 사과의 뜻도 밝히지 않았다. 권력투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박 대통령 스스로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할 만큼 있어서는 안 되는 문서유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자신의 책임에 대해선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또 하나의 ‘박근혜식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난을 낳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 사태에 관해 언급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청와대 측근 실세들의 부적절한 처신과 무능은 이튿날인 12월 2일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 그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 과정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인터뷰에서 조 전 비서관은 “<세계일보>에 보도된 문건의 6할 이상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윤회 씨가 지난 4월 이재만 비서관과 접촉한 사실, 안봉근 비서관이 민정수석실 파견 경찰관들의 인사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사실을 폭로했다. 문제의 문건이 찌라시 수준이라 확인을 거쳐 무시하고 넘어갔다는 청와대의 해명, 정윤회 씨와는 10년 넘게 연락한 적 없다는 이재만 비서관의 주장, 인사 전횡은 없었다는 측근 3인방의 주장 등을 한방에 무너뜨려 버리는 폭로였다.
같은 날 낮 정윤회 씨가 YT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4월 이재만 비서관과 연락한 사실, 또 <세계일보>의 문건 보도 후 이재만·안봉근 비서관과 접촉한 사실을 시인했다. 심지어 정 씨는 이·안 비서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도 더 이상 근거 없는 음해를 참지 않겠으니 참모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조 전 비서관의 주장에 대해 확인을 해 주지 않았던 민경욱 대변인은 정 씨의 인터뷰까지 나오자 오후에 춘추관에 찾아와 “정 씨의 말이 맞다”고 확인했다.
이날 하루 동안 이어진 이런 혼란을 거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을 통해 문서유출 사건으로 몰아가던 이번 사태는 실세들 간의 ‘권력투쟁’ 사건이 돼 버렸다. 더욱이 이런 사실이 한때 청와대 ‘내부인’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의 폭로로 세상에 까발려졌다. 정윤회 씨와 3인방의 커넥션이 단지 ‘카더라 통신’에나 나오는 근거 없는 풍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 그룹이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윤회 씨와 교류나 접촉이 없었다던 3인방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점”이라며 “앞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누명이 벗겨지더라도 국민들이 그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했다.
새누리당은 물론 청와대 내에서조차 이처럼 측근 실세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퍼져 나감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인적쇄신 카드를 하루빨리 빼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의원은 “보수적인 신문들조차 사설을 통해 김기춘 실장과 3인방의 경질을 주장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벌써부터 ‘공무원연금 개혁이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대통령이 집권 3년차인 2015년 주요 개혁과 경제살리기에 매진하기 위해서라도 인적쇄신이든 뭐든 조속한 사태 수습을 위해 당장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