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천 경정이 4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오전 9시 15분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가 검찰 청사로 유유히 들어왔다. 순간 모든 시선이 차량으로 쏠렸다. 차에서 내리는 박 경정은 깔끔한 정장 차림에 머리를 반듯이 빗어 올린 모습이었다. 포토라인까지 걸어온 박 경정은 꾸벅 인사만을 한 뒤 입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간단한 입장 발표를 기대했던 기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박 경정은 “들어가서 조사 받겠습니다”라고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한 후 기자들을 뚫고 조사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호시우보’(虎視牛步). 박 경정의 휴대폰 SNS에 적힌 사자성어다. 호랑이같이 예리하고 무섭게 사물을 보고, 소같이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동료들이 보는 박 경정의 모습도 사자성어와 크게 차이는 없는 듯하다. ‘정윤회 문건’ 작성 당시 박 경정의 직속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경정은 내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이빨이었다. 박 경정이 청와대를 떠난 후 그 이빨이 사라진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 4일 기자는 박 경정의 부인을 직접 집 앞 복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시냐. 인터뷰 좀 하고 싶다”라는 기자의 질문에 부인은 “너무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서 정신이 없다. 할 말 없다”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에 “이거는 사생활 침해다. 더 이상 집 앞에 있지 말라”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부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틈 사이로 집 내부 구조가 얼핏 보였다. 지난 3일 진행된 압수수색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 듯 집안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결국 박 경정의 여러 혐의는 검찰 수사에 따라 밝혀질 예정이지만, 여러 의문점이 계속해서 증폭되는 양상이다. 4일 검찰 조사를 받은 박 경정은 ‘19시간’ 동안의 마라톤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문서의 진위 여부뿐만 아니라 문서 유출 경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정은 “유출은 나와 관련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미스터리는 여전하다. 박 경정이 지난 2월 청와대를 떠나기 직전 다량의 문건을 출력한 사실이 지난 4월경 청와대 내부 감찰 조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박 경정은 이에 대해 “청와대를 나가기 전에 문서를 읽어보려고 출력했고 모두 파쇄했다”고 청와대에 해명했지만, 최근 해명과는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박 경정은 언론 인터뷰에서 “다른 청와대 직원이 내 사무실 책상 서랍을 뒤져 내부 보고서를 복사해 유출했다”는 ‘도난설’을 제기했다. 만약 당시 문서 출력 후 모두 파쇄가 됐다면, 책상 서랍에 문서가 남아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에 박 경정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박 경정이 검찰 압수수색 전날 부하 경찰을 시켜 검찰 문서를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검찰 역시 조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하루 전인 지난 2일 박 경정의 컴퓨터에서 특정 파일이 삭제된 이유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파일을 삭제한 해당 직원인 도봉경찰서 유 아무개 경장을 임의 동행해 조사하기도 했다. 만약 박 경정이 유 경장을 시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면 문서 유출을 인정하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높다.
하지만 압수수색을 당했던 도봉경찰서 정보과의 한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이번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문서다. 도봉서 내부 문건으로 기한이 지나 삭제를 해야 하는 문서였다”라고 해명했다. 도봉경찰서 정보과에 따르면 해당 직원인 유 경장은 서무 등을 맡는 내근직으로 올해 경장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앞서의 정보과 관계자는 “박 경정이 바쁘다보니 자신의 컴퓨터에 있는 쓸모없는 문서를 삭제하라고 유 경장에게 시켰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여러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일요신문>은 박 경정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