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셨죠? 안 마셨으면 안 마셨다고 해보세요.”
지난 11월 28일 오후 10시. 인천 ㄱ 병원 응급실이 소란스러워졌다. A 군(3)이 넘어져 턱이 찢어지면서 부모는 급한 마음에 구급차를 불러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부모가 만난 의사의 상태는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비틀대며 다가와 소독 장갑도 끼지 않고 수술용 바늘을 만졌다. 바늘에 실을 제대로 끼우지도 못하고 한동안 헤매더니, 아이의 작은 턱을 바늘로 대충 세 바늘 꿰맸다.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의 상처를 제대로 봉합도 못하는 의사라니. 어딘가 이상했다. 주변에는 간호사와 다른 의사 등 여러 의료진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취한 의사를 말리지 않았다. A 군의 부모는 병원 측에 거세게 항의했고 그제야 다른 의사가 와 다시 수술을 했다.
네티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해당 병원을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런 일은 비단 ㄱ 병원만의 일이 아니다.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음주진료가 간혹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실습생 시절 들은 황당한 얘기를 기자에게 털어놨다.
“산부인과 아무개 과장이 술 먹고 두 시간도 안 돼 아기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근무해보니 음주 진료하는 의료진이 종종 있더라. 앉을 틈도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 중간에도 회식은 절대 빠질 수 없어서 술 마시고 돌아와 업무를 보기도 한다.”
의사들의 ‘음주 진료’는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 나고 있다. 일요신문 DB
대형병원이라도 병원마다 음주진료에 대한 의료진의 태도는 조금씩 달랐다. 유명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박 아무개 씨(29)는 “워낙 체계가 빡빡하게 잡힌 곳이라 음주 진료가 흔한 일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한번은 한 주치의가 근무를 마치고 회식을 갔다. 그사이 담당 환자가 상태가 갑자기 악화돼 술 마시던 중간에 달려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환자를 의사 혼자서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직접 진료는 하지 못하고, 환자 상태 보고 기본적인 치료 지시만 했다”고 근무 환경을 설명했다. 같은 병원 치과에서 일하는 수련의 역시 “술 마시고 진료를 봤다는 얘기는 잘 못 들어봤다”며 ㄱ 병원 음주진료 사건에 대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수도권의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2년차 수련의는 조금 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사실 인턴 기간 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긴장해 있어 술 마실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몇 해 지나면서 요령도 생겨 저녁 먹으면서 술 한 잔 하기도 하고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음주진료는 근무 인력이 많아 주변 눈치를 봐야하는 대형병원보다는 소규모 병원에서 더 흔하다. 개인병원은 근무 도중 술을 마실 일은 없지만 퇴근 후 새벽까지 마신 술로 아침에 ‘숙취 진료’를 하기도 한다. 실제 의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음주진료 경험담이 종종 올라온다. 동네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한다는 한 의사는 “전날 모임에서 죽도록 마시고 아침에 출근한 적이 있다. 평소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오는 잘 아는 환자분이 왔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뇨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한참을 설명하는데 환자분이 ‘선생님 저 오늘 혈압약 타러 왔는데요’라고 말했다. 순간 당황해서 술이 다 깨더라”고 글을 올렸다.
숙취진료를 넘어 ‘숙취수술’까지 들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얘기다. 개인병원 중 수술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분야는 성형외과다. 연말 연초에는 특히 환자가 몰리면서 아침 일찍부터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땐 숙취수술을 하기도 한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성형 수술은 사실 단순 노동에 가깝다. 지금까지 전날 숙취가 문제된 적은 다행히 없었다. 새벽 3~4시까지 술자리를 갖고 아침 8시에 수술에 들어갈 땐 술이 덜 깬 상태로 메스를 잡게 된다. 워크샵에 가서도 전날 엄청나게 마시고 의사들 앞에서 수술 시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숙취 때문에 본의 아니게 ‘섀도 닥터’를 쓰게 되는 일도 있다. 성형외과에서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는 김 아무개 씨(28)는 “의사들도 술을 세게 마시는 편이다. 새벽까지 술 먹고 다음날 아침에 예약된 수술이 힘들어지면 손(의사) 바꿔서 들어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인천의 한 병원에서 술에 취한 의사가 세 살짜리 아이의 찢어진 턱을 대충 꿰매 논란이 일었다. YTN 방송 캡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사들끼리는 음주진료에 대처하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의료용 알코올로 술 냄새를 가리는 ‘연막작전’은 가장 흔히 쓰는 방법. 한 의사는 “술을 좋아하는 터라 술이 덜 깬 채로 출근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땐 괜히 알코올솜 만지고, 옷에 알코올을 묻히기도 한다. 간호사가 ‘어디서 술 냄새 난다’고 하면 알코올 핑계 대며 피해간다”고 대처 요령을 설명했다. 또 다른 의사 역시 “마스크를 겹쳐 써 중무장한 채 진료를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고 새로운 팁도 전했다.
반대로 음주 진료 때문에 부당함을 겪었다는 환자들의 경험담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셔 진료 시간에 늦거나, 갑자기 수술을 취소하는 일도 있다.
분당에 있는 피부과를 찾았던 한 여성은 얼마 전 겪은 음주 진료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병원 오픈 시간에 예약을 했는데 의사가 30분이나 늦었다. 진료 후 약국에 가서 약을 탔는데 뭔가 이상했다. 이전에 왔을 때랑 증상은 다른데 똑같은 연고를 처방해 줬더라. 약사가 처방전이 잘못된 것 같다고 병원 다시 가보라고 했다. 간호사들은 의사가 뭔가 실수한 것 같다고 사과하더라. 의사가 평소와 달리 마스크 쓰고 진료하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음주 진료였던 것 같다”며 황당해 했다.
두 살배기 아기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던 이 아무개 씨(37) 역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아이 눈 밑이 찢어져 급히 동네 성형외과에 수술 문의를 하고 아침 10시에 병원을 찾았다. 원장과 상담까지 다 하고, 수술을 위해 수면제를 먹이고 대기하고 있는데 그제야 의사가 어제 과음해서 수술하기 어렵다고 다른 병원 가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억울한 마음에 경찰에 음주 진료를 신고했지만 “규정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황당 의료사고 백태 이쪽 다리가 아닌개벼~ 술 마시고 메스를 잡는 것도 황당하지만, 맨 정신으로 의료사고를 내는 경우는 더 많다. 수술 부위를 헷갈려 엉뚱한 부위를 수술하거나, 심지어 수술 도구를 환자 몸속에 넣고 그대로 봉합해버리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3월엔 제주도에서 요로결석 제거 수술을 받다가 동맥이 잘리는 일도 있었다. 정 아무개 씨는 제주시의 한 종합병원에서 요로결석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두 시간이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지만, 수술 시간은 계속 길어졌다. 의료진이 동맥을 결석으로 착각하면서 메스를 잘못 댔던 것. 동맥을 막고 봉합을 마쳤지만 마취에서 깨어난 정 씨는 왼쪽 다리에 통증을 호소해 수술 2시간 30분 만에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일주일 정도 입원할 것을 예상했지만 의료진의 황당한 실수로 입원 기간은 두 달 이상 길어졌다. 수술 중 몸에 수술 도구를 묻어버린(?) 사고는 생각보다 빈번하다. 지난 2008년에는 제왕절개 수술 중 산모 뱃속에 거즈 뭉치를 둔 채로 봉합한 사고가 있었다. 수술 후에 지속된 통증 때문에 세 번이나 초음파 검사를 받았지만 해당 병원에서는 “회복이 더딘 것 같다”며 별다른 소견을 내놓지 않았다. 출산 1년 후 해당 산모는 구토와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응급실에서 CT검사를 통해 거즈를 발견했다. 수술용 호스가 남아있는 채로 봉합한 일도 있었다. 2004년에 왼쪽 겨드랑이 밑 물혹 제거 수술을 받은 60대 할머니는 물혹 제거 수술을 받은 뒤 배가 아파 여러 차례 병원을 찾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할머니는 친구의 권유로 통증 부위에 고약을 붙였다가 피고름과 함께 길이 13㎝나 되는 수술용 호스가 붙어 나왔다. 수술용 호스를 수술 7년이 지난 뒤에야 꺼낸 일도 있다. 윤 아무개 씨는 수년 동안 잦은 복통에 시달렸지만 단순한 소화불량으로 생각했다. 결국 병원을 찾은 윤 씨는 엑스레이를 찍고 눈을 의심했다. 작고 길쭉한 물체가 아랫배 쪽에 잡혔던 것. 알고 보니 중학교 때 복막염 수술을 받으며 들어간 길이 4㎝의 고무관이었다. 윤 씨는 당시 수술했던 병원을 찾아가 항의하고 결국 다시 개복 수술을 받아야 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