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11일 청사를 나오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잘알려진 대로 최순실 씨의 부친은 고 최태민 목사다. 최태 민 목사는 지난 1970년대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시절부터 ‘구국봉사단 총재’의 직함을 갖고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최 목사는 박 대통령이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떠나보내고 힘든 시기에 많은 의지를 하면서 ‘박 대통령의 멘토’라고까지 불렸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최 목사의 딸인 최순실 씨도 4살 터울 언니인 박 대통령과 자연스레 친분을 맺게 됐고 1979년 10·26 사태 이후 말벗을 해 주며 깊은 신뢰를 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회 씨는 박 대통령이 지난 1998년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몇 년 동안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이보다 앞서 정 씨는 1995년 최순실 씨와 결혼을 하면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즉 박 대통령은 정 씨보다 최 씨와 먼저 밀접한 인연을 맺었고, 이런 인연으로 정 씨가 박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 씨가 박 대통령 주변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구체적인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남편인 정 씨의 배후에서 박 대통령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 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대표 승마선수인 딸에 대한 특혜 의혹이 일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승마협회에 대한 감사에 나서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더 나아가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개입 의혹 등에서 정 씨가 나서기보다는 정 씨보다는 덜 주목을 받았던 최 씨가 영향력을 행사하며 직접 나선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 것. 이뿐 아니라 유명 헬스트레이너 출신인 윤 아무개 씨가 청와대 제2부속실 소속 행정관으로 전격 발탁된 데는 최 씨의 소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최 씨는 사실 여부를 떠나 청와대 안팎에서 이름 석 자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 최근 한 언론은 청와대 안팎에는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다. 생살은 피가 나도 도려낼 순 있지만, 오장육부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라는 비유가 퍼져 있다며, ‘최 씨의 청와대 출입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직원이 경질됐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최 씨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윤회 씨와 전처 최순실 씨. 사진제공=한겨레
최근에는 최 씨가 박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취임식 당시 입었던 한복을 직접 골라주기까지 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최 씨의 ‘몸통설’은 더욱 힘을 얻었다. 한 인터넷 매체에 따르면, 서울시내 최고급 호텔 지하 아케이드에 위치한 A한복 전문점 관계자는 “지난 대통령 취임식 직전 최순실 씨 측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340만 원짜리 한복을 제작해 납품했으며, 요즘도 대통령의 한복을 지어 납품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최순실 씨가 직접 한복 색깔과 디자인까지 챙겼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잘 안 나오시고 대신 비서실을 통해 일이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매체는 “최순실 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수시로 전화 통화를 주고받으며 대소사를 거드는 것으로 안다”,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자신이 꾼 꿈들을 이야기 해줄 정도로 돈독한 것 같았다”는 등 이 한복점을 찾는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해당 A 한복 전문점을 찾았으나 이 가게의 종업원은 “그 매체 기자가 마음대로 멘트를 쓴 것이다. 대통령 한복을 우리 쪽에서 한 것은 맞는데 최 씨가 관여한 것은 아니다. 최 씨는 우리 가게 고객도 아니고 모른다”고 말했다.
기자가 A 한복 전문점을 두 번째로 찾았을 때 만난 대표 김 아무개 씨는 “최 씨가 박 대통령 한복을 챙기지 않았다. 그 기자가 비서관을 사칭하고 우리 가게에 와서 (일종의 함정) 취재를 한 것이다”고 말했다. “해당 매체의 기사가 허위라면 고소할 생각이 없느냐”는 기자의 추가 질문에 김 대표는 흥분된 어조로 “세상일 어떻게 다 따지고 사느냐. 고소하려면 (그 쪽이)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에서는 국내 거의 모든 언론이 최 씨의 행방을 쫓고 있지만 루머만 무성할 뿐 최 씨의 행적에 대한 조그만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 씨나 최 씨가 아닌 의외의 제3의 인물들이 비선 실세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영남대 새마을장학생 1기 출신인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 2007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 대통령의 외곽 조직인 ‘한강포럼’을 운영한 홍준석 씨(홍윤식에서 개명) 등이 박 대통령 주변에서 제3의 비선 실세로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여전히 비선 실세 의혹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채 의혹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야당 관계자는 “문건 진위에 대한 검찰 수사는 마치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것처럼 빠르게 진행됐다. 또한 정윤회 씨나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강제 수사는 거의 없었고, 정 씨의 주장만 확인하는 정도의 수사였다. ‘면죄부 소환’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에 따라 진짜 비선 실세가 누구냐에 대한 세간의 의혹과 논란은 정권 내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최순실 씨 어디에… 올초까지 신사동 M 빌딩 들러 최순실 씨 소유 신사동 빌딩. M 빌딩 세입자들과 빌딩 관리인, 주변 상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최 씨는 올해 초까지 이곳에 모습을 보였지만 현재는 이곳에 살고 있지 않다. 올해 초까지는 3~4달에 한 번씩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카페에 들러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최 씨는 과거 이곳 6층에서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5층 이상의 층은 폐쇄된 상태다. 4층까지만 엘리베이터가 가동되고 5층 이상은 별도로 통하는 비상계단의 출입구마저 잠겨 있다. 이 건물 세입자들에 따르면 이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은 과거 이 건물 5층에 있었던 (주)얀센의 감사로 일한 문 아무개 씨와, 20대 중반의 안 아무개 씨(여)다. 문 씨는 건물의 유지ㆍ보수 관리를 맡으며 집사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라 알려져 있고, ‘안 비서’라 통하는 안 씨는 회계 업무를 맡으며 세입자들과의 부동산 거래 계약을 도맡아 하고 있다. 기자는 최 씨의 근황을 묻기 위해 문 씨와 접촉했으나 문 씨에게서는 “전화 끊으세요. 모릅니다”라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돌아왔다. [호] |
정 씨 부부 주변인물 이목 집중 독도 콘서트선 무슨 일이… ‘비선 실세’ 의혹이 확산되면서 정윤회 씨 및 최순실 씨와 친분을 유지해 온 주변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먼저 박 대통령의 취임식 등에서 한복을 담당한 A 한복점 대표 김 아무개 씨다. 정윤회 씨는 지난 8월 독도에서 열린 보고싶다 강치야 콘서트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박 대통령의 취임식 등에서 한복을 담당한 김 아무개 씨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해 7월 15일 독도사랑호에서 열린 보고싶다 강치야 콘서트. 연합뉴스 김 씨는 비단 박 대통령의 한복을 지어 준 것뿐 아니라 지난 8월 독도에서 열린 ‘보고싶다 강치야’라는 제목의 콘서트에도 참석했다. 최 씨가 박 대통령의 한복을 챙기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다시 주목을 끈 김 씨가 정윤회 씨가 ‘정윤기’라는 가명으로 참석하며 논란을 일으킨 독도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가 어떤 모종의 역할을 수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 씨는 “8월에 독도에 갔고 임산 씨와 친분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정윤회 씨가 누군지도 몰랐고 독도 같이 갔다는 얘기도 기자들 얘기 듣고 알았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독도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총 행사 인원이 111명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행사는 박 대통령의 취임식 때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부른 성악가이자 박 대통령의 공식 팬클럽인 ‘호박가족’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임산 씨가 주도적으로 준비한 행사로 알려져 있다. 실제 임 씨는 이 행사를 주관한 IL(일)프로덕션 소속의 성악가이다. 일프로덕션은 홈페이지 상에 서울 내곡동으로 주소가 돼 있지만 지난달 기자가 이 주소를 찾았을 때는 이미 회사는 어디론가 이사를 간 상태였다. 또한 호박가족 측과 접촉을 위해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없는 번호’라는 메시지만 돌아왔다. 보통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을 만한 사무실 주소도 나와 있지 않았다. 한복점 대표 김 씨에게 임산 씨에 대해 물었으나 “임 씨가 어디에서 뭘 하는지에 대해 왜 말해 줘야 하느냐”며 쏘아 붙였다. 이 밖에 문건에서 정 씨가 십상시 회동을 정기적으로 가진 것으로 나와 있는 강남의 중식당 사장인 김 아무개 씨도 정 씨 가족과 일정부분 친분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 씨 부부에 대한 관심은 주변 인물들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호] |
박지만 동남아여행 돌연 취소 왜? 정윤회-박지만 대질신문할까 검찰이 정윤회 씨를 소환한 데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 씨와 박 회장 간 대질신문이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이 박 회장을 소환하는 것은 박 회장과 정 씨 사이의 ‘권력 암투설’을 확인하기 위해서인 만큼 검찰 안팎에서는 둘 사이의 대질 신문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정 씨는 지난 10일 검찰에 출두해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 밝혀질 것”이라고 말해 배후를 암시하기도 했다. 결국 검찰이 문건의 진위를 넘어 작성 배경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박 회장에 대한 조사, 그리고 정 씨와 박 회장의 대질신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박 회장이 검찰 조사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박 회장은 ‘미행설’에 대한 검찰의 서면조사도 거부한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고 있다. 정 씨가 최근 잇따라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상대편으로 거론되는 박 회장도 침묵을 지키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문건을 허위로 잠정 결론짓고 유출 부분에 수사를 집중하며 조 전 비서관 등 박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사들에게 칼끝을 돌리려는 움직임도 박 회장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한 박 회장이 12일 출국하기로 했던 동남아 여행 계획을 돌연 취소하면서 검찰 조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박 회장은 최근 지인을 통해 ‘정 씨가 검찰에서 계속 거짓말을 할 경우 내가 직접 나서겠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 회장이 직접 검찰에 출석하고 정 씨와 대질 신문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