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수 인천시장에게 배달된 ‘2억원짜리 굴비상자’의 진실은 무엇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의혹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다. | ||
하지만 경찰은 정작 굴비상자의 전달과정과 이를 받은 안상수 시장측의 처리 과정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해서는 본질적 사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켠으로 제쳐두고 있다. 안 시장은 이 돈을 신속하게 시 클린센터에 접수시킴으로써 ‘청백리’로 다가서고자 했다. 그러나 명확치 못한 안 시장측의 일부 진술과 어정쩡한 경찰의 태도는 ‘클린’하지 못한 뒷맛을 계속 남기고 있다.
현재 굴비상자를 향해 쏠리는 국민들의 가장 큰 의혹은 안상수 시장과 그의 여동생의 진술이 서로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당초 안 시장은 여동생이 문제의 굴비상자를 받은 시기가 8월27일 깜깜한 밤인 오후 10시께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여동생은 28일 오후 7시가 맞다고 정정했다.
이에 대해서는 경찰측의 반응도 다소 엇갈린다. “날짜야 하루 차이로 다소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고, 더우기 안 시장이 중국 체류중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의견과 “불과 2~3일 전의 일인 데다가 저녁 7시와 밤 10시면 밖의 어둠 정도도 확연히 다른데 이를 착각할 수 있느냐”는 의견이 그것.
전달 과정에서도 상이함은 또 나온다. 안 시장은 “한 30대 남자가 ‘시장님과 얘기가 됐다’고 하면서 상자를 놓고 갔다”고 밝혔으나, 여동생은 “아무 말 없이 열린 문틈 사이로 상자를 쑥 들이밀고는 그냥 갔다”며 이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진술을 했다.
게다가 상자 속에 든 현금 2억원을 확인하는 과정에 대한 ‘진술’의 차이는 단순한 기억상의 착오라고 볼 수 없을 정도. 안 시장은 “27일 밤 굴비상자를 받은 동생이 28일 아침에 돈이 든 것을 확인하고 다음날(29일) 내가 귀국하자 알려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동생의 말은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지난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8일 저녁에 굴비상자를 받고 베란다에 보관해 두었다가, 다음날 오빠가 귀국해서 함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에 그 박스를 열어보고는 돈이 있어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시간상의 착오는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불과 2~3일 전에 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동생 혼자 발견했는지, 오누이가 함께 했는지를 착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다.
이에 대해 안 시장은 “언론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비서관의 실수”라고 밝혔고, 여동생은 “오빠의 착각”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현재로서는 여동생의 진술이 거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일선의 수사관들은 “일반적으로 봤을 때 안 시장의 진술이 여동생의 진술보다는 더 상식선에 가깝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즉 여동생이 27일 밤 10시에 굴비상자를 전달받고 일단 베란다에 놓은 뒤 다음날 아침에 그 속에 돈이 든 것을 확인하고는 오빠가 귀국하기까지 기다렸다가 29일 안 시장이 귀국하자마자 알렸다는 것이 당초 안 시장의 주장이었던 것.
▲ 굳게 잠겨있는 사건 담당 인천지방경찰청 수사2계 사무실 철문. | ||
이런 의문에 대해 여동생은 “상자를 처음 받았을 때 무거워 얼음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고 베란다에 둔 것”이라며 “다음날인 일요일 오전 10시경 교회에 가기 전 얼음이 녹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자 1개의 뚜껑만 열고 살짝 손가락을 넣어보니 물이 없어 ‘상하는 물건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백만원짜리 돈다발이 가득 담겨 있는 상자 속에 손을 넣어봤다면 둥글고 뭉클한 감촉의 굴비와 딱딱하고 각진 돈다발을 과연 분간 못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의문이 모아지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또 있다. 그녀 말대로 낯선 한 30대의 남성이 아무 말 없이 상자만 놓아둔 채 그냥 사라졌다면, 그것이 어떻게 오빠인 안 시장 것으로 대뜸 받아들여졌는지도 석연치 않다. 어쨌든 그 굴비상자는 안 시장의 집이 아니라 여동생의 집으로 배달된 것이기 때문. 상식적으로 자신에게 배달된 물건인데 발신자가 확인이 안되면, ‘누가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 차원에서라도 발신인 확인을 위해 그 자리에서 상자를 풀어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안 시장이 이를 시 클린센터에 신고한 것에 대해서도 주변에서는 “시장이 너무 자신의 홍보 효과를 노린 나머지 다소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안 시장이 억대가 넘는 뇌물성 돈의 심각성을 감안했다면, 이를 클린센터에 맡길 것이 아니라 검찰이나 경찰에 신고했어야 옳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더우기 가장 중요한 단서인 굴비상자를 휴지통에 버렸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 인천시에서 지금껏 클린센터에 접수된 금품 신고 사례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총 42건이지만, 총 금액은 4백26만원가량에 불과했다. 건당 평균 10만원 정도인 셈이다. 가장 뇌물 규모가 크다고 하는 서울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시 클린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신고된 뇌물 건수는 3백70여 건이지만, 총 액수는 1억원이 좀 넘는다며 건당 평균 28만원 정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건설업계 주변에서는 경찰이 처음부터 너무 건설업체의 로비 뇌물 쪽으로만 단정적으로 몰아가는 듯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경찰 수사 발표대로라면 단순히 건설업체의 로비 자금치고는 자금 형성 과정이 지나치게 치밀하고 복잡한 구도를 보이고 있다는 의심이 그것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개 로비성 돈일 경우 어차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루트를 감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처럼 갖가지 의혹이 쏠리고 있는데도 경찰의 반응은 상당히 미온적이다. 인천경찰청의 한 고위관계자는 “자꾸 시장을 의심의 눈초리로 들여다보려고 해서 그렇지, 그것이 이 사건의 본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천경찰청은 특히 이번 사건에서 언론의 취재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담당 수사팀의 사무실을 완전히 닫아거는 등 취재진의 출입 마저 원천 봉쇄했다. 소선영 공보관은 “현재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은 대부분 언론사가 알아서 쓴 것 뿐”이라며 “현재 우리가 확인해줄 내용은 거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임창수 수사과장 역시 “언론에서 너무 앞서 나가는 탓에 수사상에 어려움이 많다”는 하소연과 함께 “아직 위(안 시장)를 조사할 단계는 아니니, 그 부분은 좀 놔뒀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