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방 국정조사, 공무원연금 등의 논의를 위한 여야 대표·원내대표 회동이 열린 지난 10일 여야 지도부가 악수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 이완구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 유기홍 수석대변인.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12월 10일 여야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2+2 회동’을 성공리에 마쳤다. 그동안 꾸준히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이완구 새누리당,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지난 12월 2일 예산안과 부수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2+2 회동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합세해 여야 간 ‘신뢰’이미지를 구축했다.
여야는 협상을 통해 민생 법안 통과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사자방 전략 중 자원외교 국정조사 실시 등에 합의했다. 정윤회 문건 파문 국조는 여당의 반대로 합의하지 못했고 사자방 국조의 경우 4대강 문제는 추후 논의하고 방산 비리는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에 실시키로 했다.
그동안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부터 사자방 국정조사를 주장해왔다. 원내대표 비공개회의를 통해 여야가 자원외교 ‘구두합의’를 하는 등 꾸준한 줄다리기가 있었지만 여당은 친이계의 반발을 겪으며 사자방 국조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정윤회 문건 파문 이후 사자방 전략에 대한 야당의 기대감은 높아졌다. 야당은 일사불란하게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위’를 구성하는 원포인트 전략으로 여당을 압박했다. 새정치연합 고위 당직자는 당시 “지도부는 정윤회 문건 파문에 집중하면 그동안 논의하던 사자방은 물론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까지 모두 자연스럽게 끌려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정윤회 문건 파문을 잠재우기 위해 야당에 사자방 국조 카드를 내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향후 국부유출과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시행되면 야당과 여론의 관심이 분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협상에서도 새누리당이 정윤회 문건 파문과 관련한 국조는 검찰 조사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사자방 국조는 논의키로 하면서 빅딜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야당 내부에서는 빅딜 결과에 대해 “여당 논리에 끌려갔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담뱃값 인상에서부터 사자방 국조까지 모두 여당의 전략대로 됐다는 것이다. 한 새정치연합 국회의원 보좌관은 “지금 사자방 국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자방과 관련해 당내 특위를 구성하긴 했지만 이번 국감 때 나온 자료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기에 국조가 시작돼도 제대로 공격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차라리 내년에 본격적으로 자료를 모아서 총선 전에 국조를 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강경파 초선 의원도 사자방 국조 합의에 대해 “자원외교만 받았기 때문에 당의 성과라 볼 수 없다. 4대강이 들어가야 직접적으로 MB 정권을 겨냥할 수 있다. 자원외교는 전 정권이 빠져나갈 여지가 있다. 결국 여당이 정윤회 문건 파문 물타기로 자원외교를 준 것에 야당이 끌려갔다. 야당이 손해지 여당이 손해 본 협상은 아니다”라며 “세월호법 협상 때도 그렇고 협상장 안에 들어가서 보면 여당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르고, 야당은 불리한 상황에서 하나 내어주게 된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반복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그동안 강경파 지도부와 달리 협상파들로 구성된 만큼 전략도 상당수 바뀌었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이번 협상 결과는 ‘내어주기식’이고 후일을 도모할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 관계자는 “이번 지도부는 싸우기만 했던 강경 지도부와는 다를 것”이라며 “내년 4월까지 우윤근 원내대표가 하고 이후에는 강경파가 다시 당을 장악할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웬만큼 이뤄야할 성과들을 이뤄내자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개헌론자로 구성돼 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개헌에 공감대를 형성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지도부 간 개헌 논의에 활기를 띨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의 지도부 관계자는 “사자방은 버린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 사자방은 지도부 전략이라기보다 여론과 여당이 언급하는 부분이 더 컸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경제 법안 등은 어차피 통과시켜야 할 것이었고 지금까지 지도부가 새롭게 제시한 것은 정치개혁특위에서 추진하는 개헌뿐”이라며 “개헌론자인 우 원내대표가 이날 회의에서도 어김없이 개헌을 논의했다. 빅딜이 정확히 개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자방보다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여당 쪽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다. 새누리당 지도부에 속한 한 국회의원은 사석에서 “야당은 애초부터 사자방을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나마 자원외교를 밀어붙인 것 정도다. 정윤회 사건도 아니다. 야당은 따로 원하는 게 있다”고 귀띔했다. 당대표 간 물밑 협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표면적인 논의선상에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검찰 수사 등 더 큰 ‘딜’이 있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입법비리 등의 문제로 적잖은 야당 의원들이 검찰조사를 앞두고 있다.
여당은 자원외교 국조를 통해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한 야당의 전략을 분산시키는 성과는 얻었지만 친이계와의 분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자원외교 국조가 합의된 후 친이계인 이재오 의원이 현 정권에 날을 세웠다. 이 의원은 협상이 이뤄진 다음날인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나 “야당의 경우 (전략상) 국조를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여당의 태도가 (안 된다는) 논리가 이렇게 분명한데도 마치 지난 정부 전반의 자원외교에 대해 국조를 받아주는 것처럼 해버리면 현 정권이 정윤회 사건이라고 하는 위기를 넘기기 위해 지난 정권을 딛고 가려는 게 아니냐 하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협상 이후 여야의 신경전도 계속되고 있다. 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 시한을 못 박아야 자원외교 국조를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야당은 두 사안에 대한 연계 방침이 없다고 버텼다. 또한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대해서도 이완구 원내대표가 “이명박 정부만 하는 것이 아니고…, 노무현 정부 때 사업도 가능하다”고 범위를 확장하면서 향후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또한 정윤회 문건 파문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는 점도 여당의 고민거리다. 야당은 자원외교 국조를 얻었지만 아직까지 정윤회 사건에 대한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15일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박주선 박범계 김경협 안민석 최민희 의원 등이 비선실세 국정농단과 관련한 질의를 하기로 예정돼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제 협상의 첫 단추를 꿴 여야의 빅딜 결과가 어떻게 진행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협상파’인 김무성 문희상 대표 간 과연 협상의 승자가 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