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들이 앞다퉈 보낸 화환과 조문객 없는 적막한 분향소가 대조를 이루고 이다. 맨 아래사진은 인도네시아 선원 남방 누르차효의 분향소 모습. | ||
금양호 ‘바다 사나이’들은 대청도 해역에서 천안함 수색작업을 돕고 돌아가다가 변을 당했다. 이곳은 암초가 많고 조류가 거센 탓에 평소 저인망의 출입이 금지된 해역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도움을 청하는 군을 위해 선뜻 바다로 떠났다.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조업도 포기했다. 6개월에 한 번 맞는 귀중한 휴가도 반납했다. 그러나 금양호 ‘바다 사나이’들의 용기와 헌신은 ‘UDT 전설’에 가려졌고, 이들의 고귀한 희생은 국가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일요신문>은 연안부두 곳곳을 다니며 만난 금양호 사망자 및 실종자 지인들의 입을 통해 이들의 기구한 인생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누라도 자식도 없이 쓸쓸히 배에 올랐던 ‘바다 사나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금양호 선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6개월에 한 번 있는 휴가를 제외하고 땅을 밟을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1년 중 약 열 달을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하는 선원들은 배 수리를 위해 육지로 돌아오는 7~8월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뭍으로 돌아온 ‘바다 사나이’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한 곳으로 모여든다.
그곳은 다름 아닌 인천시 중구 항동에 위치한 L 카페. 이곳은 육지로 돌아온 금양호 선원들의 보금자리였다. 실제로 금양호 실종자인 이용상 씨(46)와 정봉조 씨(49)는 주소지가 L 카페 주인인 정중순 씨 아파트로 등록돼 있다. 선장인 김재후 씨(49) 역시 작년 여름 주소를 옮기기 전까지 이곳을 주소로 등록해 놨었다. 그 정도로 L 카페는 ‘바다 사나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L 카페 사장 정중순 씨는 ‘바다 사나이’들의 ‘누나’로 통한다. 4월 7일 기자와 만난 정 씨는 금양호 선원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 씨는 김재후 씨가 보내온 문자를 기자에게 보여주며 “4월 3일(실종 다음날)이 재후 생일이었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라. 케이크라도 배로 보낼까’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제후는 ‘배에는 없는 게 없어. 나 때문에 괜히 돈 쓰지 마. 내가 커피랑 다시다 누나 주려고 싸놨어’라며 오히려 날 걱정하던 따뜻한 아이였다. 생일 축하도 못해주고…”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김 씨는 고향인 경기도 안성을 홀로 떠나 바다생활을 20년 넘게 해왔다. 전남 여수에서 배를 타다 연안부두로 와서 터를 잡았다. 강동호를 타다 파상풍에 걸려 쉬었던 1년을 제외하고 김 씨는 일생을 배 위에서 지낸 진정한 ‘바다사나이’였다.
박연주 씨(49)도 가정을 꾸리지 않고 홀로 살아 온 외로운 ‘바다 사나이’였다. 연안부두 B 식당 주인은 그를 떠올리며 “부산에서 빙장선을 타다 연안부두로 온 지 1년 만에 변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금양호 침몰 사고 이전에 다른 배를 타다 가까스로 구조된 선원도 있었다. 정봉조 씨는 지난 1월 24일 강동호를 타다 다른 배와 충돌해 물속에 빠졌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정 씨는 육지로 돌아온 지 24일 만에 다시 금양호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휴가 나온 선원의 빈자리를 메워주려다 당한 참사였다. 정 씨는 연안부두의 ‘요리사’로 통한다. 배 위에서 못하는 요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물에 광어가 잡힐 때면 탕수육을 만들어 선원들을 대접하기도 했다. 또한 정 씨는 부모님을 많이 그리워했다. L카페 사장 정 씨는 “충청도 금산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가보고 싶다며 눈물을 줄줄 흘리던 그였다. 하도 안타까워 산소 다녀올 자금을 마련해 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침몰한 흑령호에서 가까스레 구조된 허석희 씨(33)는 원래 97금양호 선원이었다. 성실하고 기술이 좋아 금양호 기관장 자리를 곧 이어받을 예정이었다. ‘구조를 돕겠다’며 휴가도 반납한 채 배에 올랐던 그였다. 금양수산 윤도헌 부장은 “착실하고 일 잘해 내가 제일 아끼던 인재였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허 씨는 소문난 효자였다. 휴가를 받으면 입원해 계신 어머니를 뵈러 전라도 광주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연안부두 주민들은 이용상 씨를 ‘송남술’이란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엔 재미난 사연이 숨어 있었다. 부산에 살던 이 씨는 우연히 ‘송남술’이란 이름의 주민등록증을 줍게 됐다. 부산에서 작은 사고로 경찰서에 간 경험이 있던 이 씨는 연안부두에 온 후부터 ‘송남술’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연안부두 주민들이 10년 넘게 이 씨를 ‘남술’이라 불렀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이 씨의 신원이 발각됐다. 배 위에서 다른 선원과 다툼을 벌이다 해양경찰서에 가게 된 이 씨가 신원조회를 받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주민등록증에 있는 이름과 자신의 신원이 일치하지 않은 것이 발각됐고, 이를 계기로 연안부두 주민들은 이 씨의 실명을 알게 됐다. 이 씨와 L카페 정 사장과의 친분도 각별했다. L카페 선반 위에는 이 씨가 고마움의 표시로 만들어 보냈다는 예쁜 학 네 마리가 놓여 있었다.
지난해 10월 22일 연안부두로 온 안상철 씨(41)는 이전에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했다고 한다. 연안부두로 온 지 3일 만에 배에 오른 안 씨는 바다생활 6개월 만에 봉변을 당했다. 여름에 받게 될 돈을 부모님께 보내려던 안 씨의 소망도 차가운 바다로 가라앉고 말았다.
M 식당 주인 김 아무개 씨는 시신으로 발견된 김종평 씨(55)의 ‘아들 사랑’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 씨는 “마누라가 도망간 뒤 종평이가 아들을 고아원에 맡겼다. 이후에 미국으로 입양됐다더라. 술만 마시면 자기도 모르게 아들을 맡겼던 고아원에 가게 된다는 종평이었다”면서 “5년 전 미국에 있는 종평이 아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고, 결혼은 하셨나’ 등 이것저것 묻더니 아버지 뵈러 곧 한국에 가겠다고 말하더라. ‘아들한테 연락 왔냐’며 식당으로 걸어오던 종평이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30년 지기 친구를 그리워했다.
금양호의 인도네시아 선원 남방 누르차효(36)와 유숩 파에파(35)는 처남, 매제 사이였다고 한다. 시신으로 발견된 남방은 인도네시아에 부인과 아이를 둔 어엿한 가장이었다. 연안부두의 ‘바다 사나이’가 된 지는 5년이 조금 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배를 탄 경험이 있어서 금양호에선 실력자로 통했다. 금양수산 윤 부장은 “남방은 받은 돈을 착실하게 인도네시아 가족에게 보내곤 했다. 인도네시아에 집 한 채를 이미 갖고 있고, 나머지 한 채도 여름에 완공하기로 돼 있었다. 올해 휴가 나갈 차례였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