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열씨 영정을 들고 있는 우상호 의원. 87년 6월항쟁 당시 우 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 ||
우 의원은 당시를 회고하며 “6월10일 총궐기가 열리기 전날 교내 집회가 있었습니다. 오후 4시쯤부터 스크럼을 짜고 교문으로 나갔죠. 예상대로 경찰은 최루탄을 퍼부었습니다. 잠시 후 교문쪽에서 한 학생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기게 했습니다. 이날 정리집회를 하던 자리에선 시위 도중 학생들이 분실한 여성용 손목시계와 안경, 운동화 한 짝 등이 나왔는데, 유독 운동화 한 짝만 주인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나서 이한열 열사 가족들이 보관하고 있는 유품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는데 최루탄 피격 당시 입고 있던 피묻은 티셔츠 옆에 운동화 한 짝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난 그날 운동화 한 짝을 찾으러 나오지 못한 사람이 이한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고 말했다.
이한열 열사는 27일 동안 뇌사상태로 누워 있다가, 7월5일 숨을 거두었다. 우 의원은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7월9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었다.
국문과 81학번인 우 의원의 꿈은 시인이었다. 대학시절, 교내의 ‘윤동주 문학상’과 ‘5월 문학상’을 수상한 문학도였다. 그래서 아직도 그의 핏속엔 시인의 감수성이 녹아 흐르고 있는 것일까. 17대 국회 상임위 가운데 문화관광위를 택했다. 우 의원은 “한때나마 출판사와 애니메이션 사업을 했다. 당시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서 우리나라의 문화 잠재력을 키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