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지경에 빠져 거의 미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도대체 인터넷 게임이 얼마나 매혹적이기에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빠져드는 것일까. 한 청년을 죽음의 나락으로 몰아넣은 그 ‘무시무시한’ 게임의 정체와 인터넷 중독의 문제점에 대해 클릭해본다.
그의 눈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컴퓨터 화면이 흐릿하게 보여 자꾸 손으로 눈을 비벼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깨와 다리는 마비가 된 듯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PC방 문을 열고 들어선 게 지난 10월5일 오후 9시30분.
그 뒤로 벌써 사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사투’는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이다. 끼니는 컵라면으로 대충 때웠다. 시간이 아까워 잠잘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곤 꼼짝없이 모니터 앞에 몸을 고정시켜 놓았다.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조금만 더 있으면 또 새로운 아이템(무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남자’ 김중현씨(가명?4)는 꼬박 83시간 동안을 ‘쉬지 않고’ 그렇게 컴퓨터 게임에 매달렸다. 그리고 결국 그 역시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임 속 엑스트라들처럼 허무하게 생의 끈을 놓고 말았다. 과로로 인한 돌연사였다. 사실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기회가 있긴 했다. 컴퓨터 게임에 몰입한 지 사흘 째 되던 날인 지난 10월8일 아침 9시께 화장실로 가던 김씨가 ‘어지럽다’며 출입문 근처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이를 본 종업원 이창수군(가명?9)이 그를 부축해서 카운터에 앉혀놓았다. 하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제 정신을 차린 그가 먼저 찾은 것은 구급약도 의사도 아니었다.
그는 다시 모니터 앞에서 게임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는 또 다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뒷모습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가 돌아오지 않자 종업원 이군이 화장실로 가보았다. 그는 옷을 입은 상태 그대로 한쪽에 쓰러져 숨져 있었다. ‘사망자’ 김중현씨의 부모는 늘그막에 김씨를 보았다고 한다. 원래 손이 귀한 집안에서 어렵게 얻은 외동아들이었다. 군대도 가지 않은 그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그냥 집에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집 근처 PC방에서 온라인 게임 ‘뮤’를 즐기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거의 매일 그곳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일종의 전쟁게임인 ‘뮤’도 리니지 게임과 비슷해서 아이템을 계속 모으면 게임 속 주인공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상자기사 참조). 정석대로라면 아이템을 늘리는 방법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하지만 게임에 빠진 네티즌들은 큰 돈을 들여 강력한 아이템을 사고 팔기도 한다. 김씨 또한 사망 전까지 약 2천여만원어치의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모 PC방 주인 김영원씨(34)는 “그 정도의 아이템을 모으려면 1년 이상을 꼬박 컴퓨터에 매달려도 어려울 정도다.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잠깐씩 눈 붙이고 밥 먹는 시간 빼고 오로지 게임에만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그 어마어마한 아이템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사투’였던 셈이다. 경찰은 지난 10월11일 김씨 사체에 대한 부검을 실시했다.
▲ PC방에서 컴퓨터에 몰입해 있는 이용객들. | ||
경찰 관계자는 “장시간 게임에 몰두하던 김씨가 ‘폐혈전증’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판명됐다”로 말했다. 폐혈전증이란 혈관 속 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핏덩어리가 생겼을 때 이것이 갑자기 정맥을 막아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이에 대해 지디스내과 김태호 원장은 “장거리 비행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에 대해 들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장시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으면 다리에 부담이 가는데 그 결과 다리쪽의 혈액이 뭉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응고된 피가 혈관을 떠돌다가 갑자기 폐동맥을 막아버려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김씨의 경우도 오랫동안 게임을 하면서 자세를 바꾸지 않아 생긴 혈전이 동맥을 막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좁은 비행기도 아닌 PC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좀 믿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와 비슷한 PC방 사망사고가 지난 9월9일 인천에서도 일어났다. 박아무개씨(30)가 7일 동안 컴퓨터 게임과 채팅을 하다 화장실에서 숨진 것이다. 이때도 부검 결과 사인은 ‘폐혈전증’으로 밝혀졌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한 경찰관계자는 “박씨의 경우는 일주일 동안 PC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사망 전에도 과도할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다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고 말했다.인터넷 게임 중독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아이템을 사고 파는 일을 ‘생업’으로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게임 중독은 ‘자의 반 타의 반’의 양상까지 띠고 있다. 한 게임 전문가는 “문제는 게임 속의 아이템을 실제로 돈을 받고 거래하는 데에 있다. 수백만원어치의 아이템을 쟁취하기 위해 몇 달이고 밤을 새워가며 승리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게 고생하면 그게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 여름부터 이런 아이템을 거래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더욱 ‘불법거래’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런 인터넷 중독 폐해를 예방하는 길은 없을까. 인터넷문화협회측은 이에 대해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과도하게 몰두할 경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인터넷 이용자가 스스로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 앞으로 홍보활동을 강화해 게임 중독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는 지난 10월13일 서울 여의도에서 ‘컴퓨터 하루 끄기’ 행사를 실시했다. 인터넷 중독자의 사망사고가 해마다 늘어나자 사회단체도 두팔을 걷어붙인 것. 여협측은 인터넷문화협회에 매월 둘째주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도록 권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터넷 중독자들을 살리기 위해선 잠시 컴퓨터를 꺼두는 것 외엔 현재로선 뾰족한 방법이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