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봉이 시신 일부를 버린 수원천 길에서는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작은 사진들은 박춘봉이 시신을 2번에 걸쳐 나눠 처리한 장소로 사용된 월세방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얼굴 벗겨! 죽여 버려, 아주 죽여.”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7일. 경기도 수원 매교동 빌라 앞에는 분노에 찬 주민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신의 동거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 유기한 중국동포 박춘봉(56)의 현장검증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박춘봉은 지난달 26일 수원 매교동 자신의 거주지에서 동거녀였던 피해자 김 아무개 씨(48)를 살해한 뒤 시신을 1차 훼손하고, 그곳에서 250m가량 떨어진 교동 월세방에서 시신을 또 다시 훼손해 팔달산과 수원천 등에 유기했다. 현장검증 내내 죄책감 없는 모습이었던 박춘봉은 “죽이려는 마음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태연히 말해 주변 이들을 경악케 했다.
현장 검증이 끝난 다음날인 지난 18일, 기자는 직접 박춘봉이 살았던 빌라와 월세방을 찾았다. 매교동에 위치한 빌라 앞 골목에는 매서운 겨울바람만 휑하니 불고 있었다. 박춘봉의 집은 추가적으로 현장 감식을 하는 듯, 경찰 과학수사대 관계자 3~4명이 내부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혹시 추가적인 증거가 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과학수사대 관계자는 “말하기 곤란하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의 손에는 증거물을 담을 봉투와 세정제가 들려 있었다.
빌라 인근 주민과 파출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수원 매교동은 이전까지 수원 지역에서 그렇게 우범 지역으로 꼽히진 않았다고 한다. 빌라 인근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한 지역 주민은 “외국 이주민들이 여기 곳곳에 살긴 하는데, 이전에는 그렇게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동네 무서워서 어디 다니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당장 아이들이 여기서 못살겠다고 난리다”라고 전했다.
박춘봉이 시신을 2차로 훼손한 교동 월세방 인근 지역은 매교동보다 좀 더 외국 이주민들이 많은 지역으로 전해진다. 월세 시세가 다른 지역보다 싸기 때문에 외국 이주민들에게 인기가 좋기 때문이다. 교동 지역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지 아무개 씨는 “이곳은 보통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정도면 들어와 살 수 있다. 싼 방을 원하는 외국 이주민들과 집주인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외국 이주민들이 이곳으로 와서 계약을 많이 하는 편이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수원 지역에서 외국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빅3 지역은 대표적으로 ‘교동, 고등동, 매산동’ 등이 꼽힌다. 이중 수원역이 있는 매산동은 ‘박춘봉 사건’의 여파로 경기경찰청이 ‘외사 치안안전구역’으로 새로 포함시킨 지역이기도 하다. 외사 치안안전구역은 외국인 밀집도, 범죄율이 높아 경찰청에서 집중 관리하는 지역으로, 이제까지 안산시 원곡동과 시흥시 정왕동 등이 집중 관리되어 왔다.
매산동 일대는 순찰하는 경찰들 사이에서도 ‘차이나타운’으로 불릴 정도로 중국동포들이 밀집되어 있다. 최근에는 경찰들이 외국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검문검색을 실시하는 등 순찰이 더욱 삼엄하게 펼쳐지고 있다. 검문검색을 하고 왔다는 한 경찰 관계자는 “흉기를 소지하고 있진 않았는지, 불법 체류자인지 등 신원확인을 하고 있다. 당분간 검문검색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매산동 지역은 일명 ‘집창촌’으로 불리는 성매매업소들이 위치해 있기로도 유명하다. 성매매업소 입구에는 ‘외국인 출입금지’라는 빨간색 글자가 적힌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한 업소 여성은 “중국동포나 외국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 무슨 험한 일을 당할지 모르지 않느냐”라며 반문했다. “혹시 직접 피해를 입은 적이 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업소 여성은 “아직까지 그런 일을 당한 적은 없다”라고 답했다.
이렇듯 ‘박춘봉 사건’으로 촉발된 이주 외국인들에 대한 경계 움직임에 외국 이주민 사회 역시 불안한 모습이다. 중국동포들이 자주 드나드는 상점에서 만난 한 중국동포는 “박춘봉 사건 이후로 동포 사회 분위기가 많이 위축된 모습이다.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주변에서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최근에는 중국동포 모임도 잘 가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매산동 중국동포 상점 배후에서는 외국 조폭 패권 다툼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종현 기자
결국 이 같은 상황은 외국 이주민들이 밀집된 수원 지역에 얼마만큼 범죄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국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이 공개한 ‘외국인 범죄 우발지역 상위 10개 경찰서 현황’에 따르면 2014년 7월 기준으로 수원서부경찰서에 검거된 외국인 피의자는 ‘300명’이다. 전국으로 따지면 8위를 기록했다. 1위 경기 시흥경찰서(628명)에 비하면 반에 못 미치는 수치지만, 그만큼 외국인 범죄 우범지역으로 수원 지역이 자리 잡았다는 게 정설로 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원 지역에 외국인 우범 지역이 자리 잡게 된 배경에 해당 지역의 ‘슬럼화’를 꼽기도 한다. 교동의 한 부동산 업자는 “지금은 교동이 중국동포들의 밀집 지역이 됐지만 80년대와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이쪽에 룸살롱이 있는 등 부자동네로 꼽혔다. 하지만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재개발이 계속 미뤄지면서 동네가 순식간에 음산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지금은 중국동포들 아니면 방도 잘 나가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교동과 매산동 일대에는 주인이 없는 빈 집과 재개발 구역임을 알리듯 펜스가 지역 곳곳에 있었다.
결국 외국인 범죄 우범지역이 자리 잡고, 이곳에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불안한 이들은 지역주민들이다. 교동에 20여년 살았다는 한 지역주민은 “딴 건 몰라도 수원천으로 가는 길이 저 쪽으로 뻗어 있는데 여름밤에 노숙자나 외국인들이 많아 여자 혼자 다니기 너무 무섭다”며 “한번은 부부 싸움을 하다가 부인이 집을 나갔는데 수원천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동네가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다”라고 귀띔했다. 매산동 일대 중국 동포 상점 배후에서는 외국 조직폭력배들의 패권 다툼이 최근 벌어졌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매산동 한 상점 주인은 “최근 일부 외국인 건달들이 기 싸움에서 밀려 매산동을 떴다는 소문이 돌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 조폭이나 건달 등 모두 실체가 없다. 흉흉한 소문이 돌지 않게 기동대를 동원해 순찰을 더 강화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서울·경기 다른 우범지역은 대림동 “여름 주말 저녁이면 연장 들고 혈투 벌여”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이 경찰청에서 입수한 ‘외국인 범죄 우발지역 상위 10개 경찰서 현황’에 따르면 2014년 7월 기준으로 외국인 피의자 검거 수 1위는 경기 시흥서(628명), 2위 서울 영등포서(615명), 3위 경기 안산단원서(609명), 4위 서울 구로서(537명) 등이다. 이 같은 지역 순위는 지난 2008년 이후 서로 약간의 변동만 있을 뿐, 외국인 우범지역 국내 ‘빅4’로 꼽히고 있다. 서울 가리봉동(왼쪽)과 대림동의 중국인 거리들. 특히 영등포서가 관할하는 지역인 대림 지역은 이미 ‘차이나타운’으로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대림동은 1, 2동, 그리고 3동으로 관할 지역을 나누어 파출소가 관리한다. 이중 특히 1, 2동에서 범죄가 밀집되어 나타난다는 게 파출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림 파출소 한 관계자는 “여름에 비해 겨울에는 비교적 사건사고가 적게 일어나는 편이지만, 시비가 났을 때 걸핏하면 연장을 드니 출동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술을 먹다가 병으로 상대편 머리통을 내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살인사건은 지난해 났고 올해는 아직 나지는 않았는데 혹시 몰라 매번 순찰을 강화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대림동의 경우 주말이면 전국 각지의 중국동포들이 몰려와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앞서의 파출소 관계자는 “사건 현장을 보고 싶으면 ‘여름 주말 저녁’에 오면 된다”라고 귀띔했다. 경기 시흥과 안산의 경우 외국인 공단이 형성돼 중국 동포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다보니 이곳에는 ‘불법 체류자촌’까지 생길 정도로 불법체류와 관련한 문제가 대두 되고 있다. 안산경찰서 관계자는 “범죄가 발생했을 때 외국인의 주거지가 명확하지 않아 검거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라고 토로했다. 구로동과 인접한 가리봉동의 경우에는 지난 2008년까지 중국계 조직폭력배들이 장악해 사회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중국 흑룡강 출신 ‘흑룡강파’와 연변 출신 ‘연변 흑사파’가 차이나타운의 패권을 두고 끊임없이 경쟁했기 때문. 하지만 경찰청 조직폭력계 담당 관계자는 “현재는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중국계 조폭의 계보가 딱히 없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10년 넘게 재개발이 미뤄져 슬럼화가 우려됐던 가리봉동은 최근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힘으로써, 외국인 범죄율과 슬럼화를 늦출 수 있을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편 외국 이주민들이 경기 시흥, 안산, 수원, 서울 영등포, 구로 등에 본격적으로 밀집되면서 그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통상 시흥과 안산의 경우 각 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중되는 반면, 영등포와 대림, 수원 등은 오로지 중국 동포들이 밀집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수원의 경우 수도권과 가깝고 무엇보다 집값이 싸기 때문에 중국동포들이 먼저 이곳에 정착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대림, 영등포 등 서울로 진출하는 루트가 일반적이다. 수원 지역에서 중국 동포 이주를 돕는 한 센터 관계자는 “통상 수원 쪽으로 처음 오는 중국 동포들은 생활에 쪼들리기 때문에 파출부 일이나 막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가정을 꾸려 서울에 자리 잡는 경우를 많이 봤다”라고 전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