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가정법원은 자신을 후원해 줄 양부모를 찾아 사기 행각을 벌인 뻔뻔한 양아들에게 입양 무효 판결을 내렸다. 그는 돈 많은 노부부에게 접근해 ‘아들로 받아주면 효도하겠다’며 돈을 뜯어 낸 파렴치한. 양부모에게 사기죄로 고소까지 당한, 빗나간 인륜의 사연을 추적했다.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에 사는 안정규(가명•73)•이시연씨(가명•71)는 3층짜리 상가 건물과 많은 현금을 가지고 ‘돈놀이’를 하던 노부부. 슬하에 자녀가 없고 친척들과도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외롭게 지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조용히 늙어 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8년 전 한 부부에게 돈을 빌려주기 전까지는.
사건의 시작은 94년 10월 초 이들 노부부의 ‘일상적인’ 돈놀이에서 시작된다. 안씨 부부는 어느 한 부부에게 3천만원을 빌려주었는데 이때 돈을 빌린 부인 조영자씨(가명)가 3천만원을 현금으로 주는 이들 부부의 재력에 놀라게 된 것. 조씨는 이런 얘기를 자신의 조카 송경만씨(가명•37)에게 들려줬고 송씨는 고모 조씨의 채무를 구실로 노부부 중 이시연씨에게 접근했다.
이씨는 송씨가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챙겨주자 그동안 못 느꼈던 자식에 대한 정을 그에게 느꼈다. 더구나 서른 살도 안 된 청년이 자신을 ‘사업가’라고 밝히자 든든하고 대견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별다른 경계감 없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노부부에게 송씨가 처음으로 돈 얘기를 꺼낸 것은 이듬해 5월.
5백만원짜리 가계수표 2장을 9백80만원에 할인받는 것이 시작이었다. 이들 부부로서는 그동안 쌓아온 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고 남편 안씨는 이 부탁을 순순히 들어줬다.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난 95년 6월, 송씨는 본격적으로 돈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중국과의 무역 개설을 위해 급히 5천만원이 필요한데 중국에 다녀오면 바로 갚겠다’는 것.
하지만 송씨는 중국에 다녀와서도 돈을 갚지 않았고 오히려 이듬해인 96년 1월 좀 더 대담한 요구를 해왔다. 서울시 강북에 있는 이들 부부의 3층 상가건물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려달라는 것. 자신이 신상품을 개발해서 특허출원을 했는데 특허만 나오면 곧바로 대기업체 납품 계약이 될 것이고 납품만 되면 먼저 빌린 5천만원부터 갚겠다는 것이었다.
안씨 부부는 이 부탁 역시 들어줬고 송씨는 상가 건물을 담보로 9천만원을 빌려갔다. 하지만 돈을 빌려줄수록 이들 부부는 송씨가 쳐 놓은 덫에 깊이 빠질 뿐이었다. 한 번 상가건물을 담보로 잡힌 터라 두 번째는 더 쉬웠다. 7개월 뒤 송씨는 ‘무역회사 등록을 받으면 신상품을 수출할 수 있다’며 다시 건물 담보를 받아 1억원을 더 빌려갔다.
이렇게 해서 지나간 세월이 2년. 안씨 부부는 송씨에게 돈을 처음 빌려준 95년 5월부터 3년 동안 모두 1억6천9백20만원을 빌려줬다. 소유 상가건물에 설정된 담보액만도 2억5천만원. 빌린 돈이 많아질수록 안씨 부부와의 감정의 골도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와중에 송씨가 극적인 전환을 할 계기가 발생했다.
바로 안씨의 부인 이시연씨가 98년 2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송씨는 이씨의 장례를 치르는 데 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다시 안씨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송씨는 98년 11월 자신의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안씨와의 인간 관계도 한 차례 ‘파산’을 겪는다. ‘회사의 부도를 수습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며 안씨에게 약속어음을 할인받아간 송씨.
하지만 송씨가 내민 어음은 속칭 딱지어음이라 불리는 종이조각에 지나지 않았고 이 같은 사기 행각을 벌인 송씨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러나 송씨는 불과 넉 달 뒤인 99년 3월 안씨를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빌고 난 송씨가 꺼낸 얘기는 더욱 황당한 것이었다. 은행에 불량거래자로 올라있는데 ‘아버님’이 연대보증을 서 주면 다시 금융거래가 가능해져 회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이쯤되면 피를 나눈 부모 자식 사이라도 핏대를 세울 만한 상황. 하지만 부인을 잃고 세상에 혼자 남게 된 안씨는 다시 송씨의 부탁대로 송씨의 은행 빚에 연대보증을 서줬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99년 4월 안씨에게 날아든 것은 법원의 경매 개시결정 통보서. 송씨가 대출금을 갚지 않자 은행이 안씨 소유 상가건물의 경매를 시작한 것이다.
안씨의 연대보증으로 신용 불량의 멍에를 벗은 송씨는 대출 이자도 갚지 않은 채 다시 잠적해 버린 뒤였다. 두 차례의 법원 경매가 무산되는 동안 한때 재산가였던 안씨가 겪은 심적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99년 12월, 송씨가 안씨 앞에 다시 나타났다. 잠적했다 나타날 때마다 황당한 부탁을 해 온 송씨가 이번에 꺼낸 얘기는 그 극을 달렸다.
바로 자신을 아들로 받아달라는 것이다. 안씨 앞에 무릎을 꿇은 송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사업도 결실을 맺게 되었고 모든 빚을 다 갚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동안의 은혜를 갚고 아버지로 모시고 싶으니 제 뜻을 받아 주십시오.” 두 번의 배신으로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없던 안씨.
하지만 세 번째 경매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고 2억원을 훨씬 호가하던 건물 가격은 법원 감정가가 3천8백만원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송씨가 안씨의 마음을 흔드는 결정적인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은행에서 제가 그동안 빌린 돈 2억2천만원을 빌려 줄테니 먼저 건물 근저당권을 말소하라고 합니다. 그런 다음 채무자를 아버님으로 해서 다시 근저당권을 설정하면 경매를 취소하겠답니다.”
안씨의 건물을 저당 잡힌 2억2천만원의 채무자는 송씨 본인으로 되어 있던 상황. 누구라도 한 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뻔한 거짓말이었지만 결국 안씨는 송씨의 설득에 넘어가고 만다. 그리고는 2000년 1월, 송씨의 입양 제안을 받아들여 구청에 ‘입양 신고’를 했다. 거기에 건물 근저당 설정의 채무자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했다.
안씨의 도움으로 신용불량을 벗고, 안씨 건물을 담보로 빌린 돈의 채무자까지 안씨 이름으로 해 둔 송씨. 이제 그가 안씨에게서 더 얻어낼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안씨의 양자로 이름이 올려진 송씨는 부양은커녕 ‘안정규의 재산은 모두 내 것이다. 내 것을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며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안씨는 송씨의 말과 달리 지난해 6월 초 건물에 대한 법원 경매 개시결정이 내려지자 같은 달 19일 송씨를 사기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또 송씨의 입양에 대한 ‘파양소송’도 가정법원에 냈다. 5개월 뒤인 2001년 11월 송씨는 사기죄로 구속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은 송씨의 항소를 기각했고 그후 송씨는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상태. 하지만 파양소송이 진행중이던 올해 3월15일, 안씨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양부자(養父子)’의 인연을 끊던 도중에 세상을 떠난 안씨.
하지만 송씨는 안씨가 숨진 엿새 뒤, 안씨가 살던 집마저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를 옮겼다. ‘3월15일자 상속’이 등기 이전의 사유. 사망한 안씨의 친동생 정기씨(68•가명)는 올해 5월1일 송씨를 상대로 입양 무효 소송을 냈으며 법원은 정기씨의 소를 받아들여 입양 무효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