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마을 어르신들을 피의자로 마주한 경찰은 난감했다. 여기저기서 술취한 주민들의 고함이 터져 나왔고 횡설수설이 난무했다. 조사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경찰에서는 주민들을 일단 귀가조치 시킬 수밖에 없었다.
술취한 11명의 교사리 주민들이 경찰서까지 끌려오게 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이날 마을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에 앞선 오후 5시, 경찰은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를 받았다. 마을 주민들이 태봉산 줄기에 위치한 모친의 묘지를 함부로 파헤쳤다는 내용의 신고였다.
▲ 충북 보은의 한 시골마을에서 묘지이장문제를 둘러싸고 큰 다툼이 일었다. 마을에 흉사가 이어지자 무덤자리를 잘못 쓴탓이라 생각한 주민들이 ‘문제’의 묘를 파헤쳤고, 이에 격분한 묘 주인은 결국 소송을 제기했다. | ||
코를 감싸쥐고 그 아래 30m 지점에 위치한 신고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경찰은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집 뒤뜰에 망자의 유골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던 것. 두개골 아랫부분은 으깨져 있기도 했다.
경찰은 이튿날부터 피해자 이종표씨(가명•63)와 이 마을 이장 박양운씨(가명•69)를 비롯, 주민 11명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했다.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사연은 이랬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교사리, 정확히는 약 50가구가 모여 사는 교사1구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흉사가 잇따랐다고 한다.
가장 먼저 김두표씨(가명•71)가 지난 1월 사망했다. 사인은 숙환. 두 달 뒤 그의 부인(69)이 갑작스레 세상을 뜨고, 또 이 부부의 아들(53)은 밭을 갈다 쓰러져 뇌수술을 받았다. 이상한 일은 끊이지 않았다.
여름에는 이몽양씨(가명•78)가 숨지고, 이날 이씨의 초상집에 들어서던 사홍민씨(가명•61)가 갑자기 쓰러져 119 구급차를 불렀지만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했다. 이른바 급살이었다. 지난 11월에는 김면우씨(가명•66)의 손녀(6)가 원인모를 병으로 숨졌다.
정초부터 벌써 9명째였다. 이쯤되자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노인회관에서는 두세 명만 모여도 대책회의를 열기 바빴다. “굿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오고갔다. 이때 또 다른 누군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또 ‘그곳’에 묘를 쓴 것 같다” 순간 모여든 사람들은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21년 전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난 82년,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태봉산 줄기에 마을주민 이종표씨가 선친의 묘를 조성했다. 공교롭게도 그 뒤로 1년 동안 7명의 마을주민이 숨을 거뒀다고 한다. 불안해진 마을사람들은 지관을 불러 도움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지관은 이씨 선친의 무덤 자리가 ‘급살터’라고 결론내렸다. 반면 이씨는 그 자리가 ‘당대발복’을 불러오는 명당이라 고집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항의를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지난 90년 묘소를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여름께 집을 나서다 돌연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있던 조민구씨(가명•60)였다. 이상한 것은 숨지기 직전 잠시 의식을 회복한 그가 남긴 말.
한 주민은 당시 조씨가 “태봉산에 있는 그 묘를 없애달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고 한다. 이씨를 추궁한 결과 마을 사람들은 그가 지난 2001년 9월 어머니 묘지를 그리 몰래 이장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과 이씨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마을에서는 “당장 이장하라”며 이씨를 닦달했고 이씨는 이를 차일피일 미뤘다. 사건이 터진 지난 8일, 마침 교사리 대동계를 위해 50여 명의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였다.
화제는 자연스레 묘지 이장 문제로 흐렀다. 여기에 막걸리까지 몇 순배 돌자 감정이 격해진 주민 11명은 태봉산으로 몰려갔다. ‘명당일리도 없겠지만 명당이라면 그 생명력을 없애겠다’는 생각으로 고춧가루와 소금, 가축의 분뇨도 잔뜩 준비했다.
이씨가 어렵게 조성한 모친의 묘지는 이렇게 없어졌다. 정작 문제는 주민들이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도 않고 이씨 집 뒤뜰에 그대로 부려놓은 것. 이씨는 그날 곧바로 경찰을 찾아 주민 11명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명당묘지’를 둘러싼 주민들과 이씨의 21년간의 싸움은 법정에 가서야 시시비비가 가려질 전망.
이씨는 지난 17일 “어머니 두개골까지 으깨진 마당에 마을 사람들과 화해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곳에 묘지를 쓴 이유에 대해서는 “명당이라 그곳에 어머니를 모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묘지 근처에 도로가 생기면서 모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보은경찰서 이유식 방범수사과장은 “남의 무덤을 함부로 파헤친 마을 주민들도 문제지만 과거에 그 일로 인해 마을과 불화를 겪었으면서도 똑같은 곳에 묘를 쓴 이씨 역시 잘못”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