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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이즈 테러’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K씨의 남편은 “어쨌든 같이 살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K씨 부부의 행복했던 한때. | ||
아마 이 질문에 자신있게 “같이 살겠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실시한 비슷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대다수가 “헤어지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얼마전 영ㆍ호남 일대를 에이즈 공포로 몰아넣은 ‘에이즈 윤락녀’ K씨(<일요신문> 제526호 보도)의 남편은 여느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아내가 에이즈라는 천형을 앓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성들에게 몸을 팔던 과거를 지니고 있음에도.
현재 K씨는 재판을 앞두고 마산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다. 그녀가 무죄로 풀려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K씨의 남편은 ‘철없는’ 아내가 선처를 받아 집으로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이 돌팔매질을 해도 나만은 그럴 수 없다’는 게 그의 토로. 지난 6월19일 김해에서 그 ‘순정파’ 남편을 만났다.
에이즈 여인 K씨의 남편 박용덕씨(가명ㆍ41)는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전형적인 농부였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시커멓게 갈라진 손은 그의 직업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사실 기자가 박씨를 처음 만난 것은 K씨 사건으로 세상이 들끓던 지난 6월 초였다. 당시 그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예방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아내의 면회를 마치고 김해경찰서를 나서던 중이었다. 세간의 따가운 시선 때문인지 기자가 접근했을 때 그는 오토바이에 올라 도망치듯 사라졌다.어렵사리 두번째 조우가 이뤄진 것은 김해보건소 인근의 한 거리. 그는 “그래 뭐가 묻고 싶어서 내려왔습니까”라며 짐짓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박씨가 열세 살 연하의 아내 K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99년 초. 마흔을 바라보던 농촌 노총각이던 박씨는 운명처럼 그녀와 같이 살게 됐다고 했다. “혼자 살고 있는데 아는 동생이 어느날 갑자기 ‘형님, 여자 하나 소개해줄까요’라고 하데예. 좋다고 했더니 며칠 뒤에 ‘형님 지금 같이 가니까 술이나 톡톡히 받아두소’라며 데리고 오더라고. 돈도 두둑히 준비해 만났지. 그날 주점에서 나와 노래방까지 가다보니 시간이 늦어 버스도 택시도 그만 끊겨 버렸어. 내가 모텔로 가자고 하니까 ‘돈이 많이 든다’며 우리 집으로 가겠다고 하더라고. 그때부터 같이 살았지.”
추억이 현실의 시름을 잠시 접게 했던 걸까. 그는 K씨를 처음 만났던 날 ‘기분이 너무 좋아’ 과음을 한 탓에 필름이 끊겼다며 슬며시 웃었다. 아직도 K씨를 마음 한가운데에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걸까.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대답했다.
“내한테는 감지덕지지. 나이도 어리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게 성격이 활발하고 착하데. 내가 첫눈에 반한 셈이지. 내가 친구들이 많아 자주 집으로 들이곤 했는데 다른 여자들과 달리 (그런 것도) 좋아하더라고.”
박씨는 처음엔 아내 K씨가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럭저럭 두 사람이 삶에 재미를 붙여갈 무렵 마치 불쑥 날아든 입영통지서처럼 그에게 ‘당신의 아내는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이 통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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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이즈 테러’로 경찰에 붙잡힌 K씨. | ||
당시 그는 아내의 병명을 결코 믿지 못했다고 했다. 아니, 마흔이 다 되어 어렵사리 꾸린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날 아내가 무서운 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선뜻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교. 또 그 사람이 그런 병이 있었다면 어떻게 내가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겠나.”
최근 아내 K씨에 대한 언론보도가 있기 전까지도 그는 “솔직히 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피검사도 하고 면담도 했지만 아내가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고 했다. 대신 성관계를 맺을 때는 보건소에서 지급한 콘돔을 꼭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알고나니 찝찝하긴 하지만’ 아내를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애를 낳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한때 양자를 들일 생각까지 했다고 그는 토로했다.
에이즈는 박씨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문제가 있었다면 ‘그놈의 돈’ 때문이었다. 논농사 20마지기를 짓는다고 하지만 논주인에게 세를 떼주고 이것저것 비용을 제하고 나면 밥먹기 힘든 ‘빈농’이 바로 그였다.
아내를 들인 후 그가 인근 지역의 사출공장에 다녔던 것도 바로 돈 때문이었다. 한 달에 1백만원 정도 받아 두 사람이 먹고살 만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집 한 채를 마련해 오손도손 살 꿈을 꾸기도 했지만 뜻대로 돈이 모이진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박씨에게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아내 K씨가 몰래 가출을 했던 것.
“그땐 내가 공장일도 다닐 땐데, 야간작업 마치고 아침에 돌아오니까 밥상만 차려놓고 없데예. ‘어디 친구 만나러 갔겠지’하고 그냥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퇴근했을 때도 없는기라예. 아버지한테 물으니까 내가 공장 간 사이 잠시 들어와 ‘친정어머니가 몸이 안 좋다’고 하면서 보따리 싸서 나갔다 하데예. 그동안 내가 그 사람 찾으러 다닌 거는 말로 다 몬합니다.”
화도 나고 배신감도 들었지만 박씨는 결국 사랑을 택했다. 그는 ‘여자가 맨몸으로 집 나가면 할 일이 뭐 있겠나’ 싶어 김해 부산 진영 등지에 있는 다방이나 술집을 수소문하고 다녔다고 했다. 일이 끝나면 오토바이를 몰고 아내를 찾아헤매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결국 오토바이보다 그가 먼저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정작 아내의 가출 이유를 안 것은 공교롭게도 아내 K씨가 에이즈예방법 위반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간 뒤였다. “그때는 몰랐지. 이번에 면회를 가 물어보니 내 몰래 만든 카드가 있었다데. 한 4백인가 되는 카드빚 갚을라꼬 집을 나갔다고 하데예.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가) 가끔씩 친구들과 노래방이나 술집에 가곤 했는데, 거기서 카드를 사용했던 기라. 또 늘상 휴대폰만 붙들고 있었는데 그 돈이 제일 크지 싶어.”
결국 K씨의 가출은 에이즈 전파 행각으로 이어졌다. 박씨는 아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분노보다는 아내에게 잘 못해줬다는 안타까움이 더 큰 듯했다. 그가 세상 사람들의 눈총에도 K씨 면회를 거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기자는 “면회를 가면 아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잘못했다고 하면서 형 살고 나오면 잘하겠다고 하지. 내도 지가 나오기만 하면 (그런 곳에) 댕기지도 못하게 할끼고, 어차피 이렇게 만난 거 같이 살아야지. 큰 죄를 지은 게 아니라면 빨리 나와야 할낀데.” 그의 목소리가 사뭇 간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