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부경찰서는 지난 3일 곽 전 의원을 상대로 폭행과 공갈을 일삼고 그의 부인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른 혐의(폭력행위 등)로 서정태씨(가명•46)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씨는 아예 서울 서초동에 있는 곽 전 의원의 집 근처 지하철 역에서 노숙을 하며 곽 전 의원을 감시해왔다고 한다.
중진 국회의원과 40대 노숙자와의 14년 전쟁에 대한 속사정은 과연 무엇인지 그 내막을 들여다 봤다.
지난 1988년 부산. 당시 재선의 현역 의원이던 곽정출 전 의원은 제13대 총선을 맞아 부산의 한 지역구에서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있던 곽 전 의원측에서는 유권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요량으로 자신의 연설문을 현상 공모했다. 총 상금은 3억원. 엄청난 액수였다.
이 같은 내용의 신문광고가 나가자 모두 30여 명이 여기에 응모했다. 곽 전 의원측에서는 당직자와 대학 교수, 기자들을 중심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했으나 결과는 ‘당선작 없음’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불거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동산 중개업을 하며 노모를 모시고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서씨가 여기에 응모했던 것. 고졸의 학력이지만 작문에는 특기가 있다고 자부한 서씨는 당선만 되면 단번에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당선작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유권자들을 우롱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벌인 조작극’이라 생각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던 서씨는 기어코 곽 전 의원을 찾아가서 “당선에 해당하는 상금을 지급하라”고 따졌다. 곽 전 의원측에서는 “애초 요구한 수준에 미달한 원고에 대해 상금을 지급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이 해프닝은 결국 법원까지 가게 됐다.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서씨가 지난 90년 곽 전 의원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상금 지급을 요구하는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한 것.
당시 법원에서는 곽 전 의원이 연설문을 현상공모하는 신문 광고에 “해당작품이 없을 경우 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함께 삽입하지 않은 점을 들어 서씨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는 구체적인 금액을 보상하라는 문구는 없었지만 곽 전 의원측에서는 도의적 차원에서 3백만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대신 곽 전 의원측에서는 이 문제로 다시는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각서를 서씨로부터 받아내는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곽 전 의원과 서씨의 악연은 이것으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지난 98년 곽 전 의원이 제15대 보궐선거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또다시 불거졌다. 한동안 잠잠하던 서씨가 다시 곽 전 의원 앞에 나타난 것. 협박의 강도는 그 전보다 한층 더 심해졌다. 수법도 다양해졌다.
선거전 이후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곽 전 의원 집을 매일같이 찾아가는 것은 물론, 협박성 편지와 전화 공세도 끊이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서씨는 지난 99년 12월31일 “그동안 쌓인 분노와 감정이 폭발하면 언제 불상사가 생길지 모르니 3천만원을 입금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 것을 포함, 지난 99년부터 현재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편지와 전화로 곽 전 의원측을 협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곽 전 의원은 서씨의 협박을 피해 이사를 가기도 했지만 서씨의 집요함 앞에서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사를 통해 용케 서씨를 따돌렸다고 생각했던 곽 전 의원은 다음과 같은 협박편지를 받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억세게 재수도 좋소. 말년에 개망신 당하지 말고 아이 장가가서 시작하는 마당에 초치지 말고 끝내시오. 차유리 박살내고 허리 몇 방 내지르면 평생 고통이고 병들어 죽소. 벌써 이사가고 없지만 찾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소. 지금 찾기 전이오. 아이가 둘이라는데 두고 봅시다.”
결국 지난해 10월31일 서씨가 귀가하고 있던 곽 전 의원의 부인에게 달려들어 다짜고짜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사건이 발생했다. 부인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곽 전 의원은 마침내 지난해 11월 서씨를 경찰에 고소하며 서씨와의 오랜 악연에 종지부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