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경찰 현장검증에서 사건 당시를 재현하고 있는 피의자. 방화한 탓에 검게 그을린 방 내부가 참극을 말해주는 듯하다. | ||
엘리트 코스를 거쳐 서울 K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아버지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아들이 그대로 따라와 주기를 바랐다. 십수 년이 넘게 지속된 아버지의 이런 기대는 아들의 가슴 속에서 무거운 스트레스로 침전됐다. 그리고 쌓이고 쌓였던 ‘열등’ 스트레스는 끝내 존속살해라는 끔찍한 살인극을 몰고 왔다.
최근 대학교수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한 뒤 위장방화까지 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이정수씨(23ㆍ가명ㆍS대 3학년 휴학). 이씨는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비극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6월20일 논산훈련소 입대를 앞두고 있던 터라 피의자 이씨는 이달 들어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지난 9일 저녁에도 그는 절친한 친구였던 문아무개씨, 그리고 문씨의 여자친구와 함께 서울 이태원의 한 바를 찾았다. 일본과 러시아의 월드컵 축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흑맥주 500cc를 마시기도 했지만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축구관람이었다.
이씨가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30분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이씨의 아버지도 약간의 음주를 했던 상황. 취기 탓이었을까.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불러세웠다. 그리곤 연일 늦는 아들의 귀가를 꾸짖으며 뒤통수를 서너번 내려쳤다.
곧 이어 아들을 서재로 부른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온 나날을 얘기하며 장장 두 시간에 걸쳐 훈계를 늘어놓았다. 옛날 일들도 모조리 꺼내 복기하며 잘잘못을 가렸다. 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아들 이씨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벌써 새벽 1시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묵묵히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는 동안 머리가 아파 온 그는 두통약 13알을 한꺼번에 털어넣었다. 이윽고 몽롱해진 머릿속에는 ‘지금 내가 처한 이 상황을 모두 잊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만약 아버지가 없다면…?’
그로부터 2시간 동안 이씨는 ‘살인’이라는 망령된 생각과 사투를 벌인 끝에 아버지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결심을 굳힌 그는 먼저 주방용 칼 두 자루를 스키 폴대 끝에 단단히 묶어 창처럼 만들었다. 굳이 범행도구를 직접 제작한 것은 피가 옷에 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때가 새벽 3시30분께.
마침내 문제의 창을 들고 아버지 방으로 건너간 그는 단잠에 빠져 있는 아버지에게 창을 겨눈다. 어렸을 때부터 검도와 쿵푸를 배운 덕분에 인체의 급소를 파악하고 있던 그는 정확하게 급소를 찔렀다.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비명과 함께 창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고 난 뒤였다. 결국 이씨의 아버지는 창을 움켜쥔 채 숨을 거둬야 했다.
일이 더 커진 것은 순전히 이때의 소동 탓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뒤엉켜 내는 소리를 건너방의 할머니가 들었던 것. 낭패였다. 할머니와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범행현장을 본 할머니였다. 순간적으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씨는 과도를 집어들고 할머니마저 살해하기에 이른다.
조용했던 아파트에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친 뒤, 이씨가 정신을 수습한 것은 새벽 6시 무렵. 간밤에 있었던 기억들을 잊기라도 하려는 듯 샤워를 마친 그는 아침 8시30분께 태연히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배낭여행을 준비중이던 여자친구의 여권갱신을 두 시간 가량 도와주고 난 그는 10시30분께 집으로 돌아와 시신들을 보고 한동안 고민에 빠진다.
|
||
| ▲ 고개를 떨군 채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 ||
돌아온 이씨는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은 서둘러 가방에 챙겼다. 그 뒤 방안에 불을 놓으면서 사체와 자신이 살던 아파트가 화재와 함께 모조리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잠시나마 완전범죄를 꿈꾸던 그의 헛된 기대는 불과 반나절 만에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사건현장의 여러 정황이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씨의 패륜살인은 결국 경찰에 꼬리를 밟힐 수밖에 없었다. (관련기사 참조)
경찰이 이씨를 검거한 뒤 먼저 캐물었던 것은 끔찍한 살인극의 동기. 피의자 이씨는 경찰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상당히 오랫동안 쌓여왔다고 진술했다.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아버지는 큰아들인 자신에게 넘치는 기대를 쏟았고, 그런 아버지는 늘 억압과 권위의 상징이었다는 주장. 다음 세 사람의 진술은 피의자의 성격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단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웃는 얼굴을 한번도 못봤다. 항상 시무룩했고 인사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아파트 경비원)
“(피의자 아버지는) 말하는 것부터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대신 뒤끝이 없었다는 점이 장점이기는 했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한 집안 사람들에게는 더 미칠 노릇 아니었겠느냐.”(이씨 친척)
“평소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난 3월 ○○이네(이씨 지칭) 집에 놀러갔을 때에도 그의 아버지는 맥주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킨 것 이외에는 별다른 말도 건네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무뚝뚝했다.”(친구 문씨)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는 이씨의 성장과정에서도 흔적이 발견된다. 국내에서 태어난 이씨는 두 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가 초등학교를 마치게 된다. 중학교는 다시 국내에서 다녔지만 이때 학교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씨의 어머니는 ‘서울 강남의 모 중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아들이 학교가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경찰에서 밝혔다. 어렵게 중학교를 마친 그는 다시 쫓기듯 캐나다로 떠나지만 여기서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치게 된다.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려고 했던 이씨는 2년간의 준비에도 미국대학 진학에 실패한 뒤 국내 모 대학에 특례입학하게 된다.
이런 아들의 모습이 아버지에게 못마땅하게 보였을 것이란 점,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시선이 이씨에겐 심한 열등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란 점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머니가 둘의 완충역할을 해줄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에 이씨의 어머니는 너무 ‘순종파’였던 것 같다.
이씨의 친척도 “애들 엄마는 워낙 순종적인 여자였다. 결혼한 지 그렇게 오래 지났지만 아직도 애들 아버지가 베란다로 밥상을 차리라면 베란다로, 화장실에 밥상을 차리라면 두말않고 화장실에 차리는 여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만약 사건 당시 어머니가 곁에 있었더라면 이씨의 ‘우발적’ 살인충동을 막을 수는 있었을 것이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 이씨가 어머니를 유난히 잘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이씨의 어머니는 이씨의 동생들이 유학중인 캐나다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 지난 12일 분당경찰서 형사계 사무실에서 만난 피의자 이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미안할 따름이다”라며 때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