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부경찰서는 지난 3월27일 80대 노인을 강제로 추행한 뒤 협박해 5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법 등)로 정연숙씨(가명·46)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 여인은 자신을 가정부로 고용한 이 80대 노인이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노려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
중학교 교장으로 50여 년간 교육 공무원 생활을 이덕환씨(가명·80). 이씨는 정년퇴직을 대비한 노후대책에 게으르지 않았던 덕분에 그의 재산은 현금만 5억여원에 달했다. 교직생활에 대한 대가로 받은 퇴직금과 이런저런 투자금을 모은 금액이었다.
그 정도라면 자식들에게 ‘함께 살자’며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했다. 그가 지난 97년 자신의 아내와 단 둘이 자식들로부터 ‘독립’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이씨 자신이 약간의 신체장애를 겪고 있어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여생을 즐기고 살 만큼 여유가 있었던 이씨는 그해 5월 정씨를 가정부로 고용해 자신들의 뒷바라지를 부탁했다. 이씨는 정씨에게 아예 방을 한 칸을 내주면서 집안 살림을 부탁했다. 이씨와 정 여인의 인연은 이렇듯 ‘주인집 영감’과 ‘가정부’로 맺어졌다.
금슬 좋은 노부부와 일 잘하는 가정부, 문제될 게 아무 것도 없었던 이들의 관계는 지난 98년 5월께 평생 이씨 곁을 지켜오던 그의 부인이 사망한 뒤 꼬이고 만다.
그날 평소와 다름없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이씨. 세상을 떠나간 부인을 생각하며 잠을 청하고 있을 무렵 어둠 사이로 풍만한 여인의 모습이 살짝 비쳤다.
‘헛것을 보았나.’ 애써 눈 앞에 펼쳐진 살풍경을 무시하고 몸을 뒤척인 이씨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불쑥 솟구친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그것’을 힘있게 움켜쥐는 게 아닌가. 퍼뜩 잠에서 깬 이씨는 눈을 부비며 낯선 손의 임자를 찾았다. 그 장본인은 다름아닌 정 여인이었다.
▲ 영화 <하트브레이커스>에서 꽃뱀으로 분한 시고니 위버. | ||
그날 밤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가정부 정 여인의 태도는 이미 피고용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정 여인은 “돈을 줘서 내 입을 막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간통’ 사실을 알리겠다”며 이씨를 협박했다.
지난 밤의 일이 왜 ‘간통’인지 몰랐지만 평생을 교직에 헌신한 뒤 명예롭게 퇴직한 이씨로서는 혹시 그 사실을 자식들이 알까 두려워 정 여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정 여인은 이씨에게 적게는 1백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까지 수시로 뜯어냈다.
이씨가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으면 ‘간통’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어김없이 정 여인의 육탄공세가 이어졌다. 한 번 터진 물꼬를 되막기에는 늦은 법. 그럴 때마다 이씨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녀가 하는 대로 몸을 내맡길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 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그녀의 무리한 요구가 잇따랐다.
경찰에 따르면 정 여인은 이런 식으로 지난 98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90여 차례에 걸쳐 자그마치 5억여원을 가로챘다고 한다.
이렇듯 정 여인의 노골적인 추행과 협박, 갈취가 되풀이되는 동안 이씨는 자신이 평생을 모아온 재산의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정 여인은 집요했다. 이따금 집으로 날아오는 이씨의 세금고지서까지 낱낱이 꿰고 있었던 것. 이 가운데는 이씨가 소유하고 있었던 충청도 선산에 대한 세금고지서도 포함돼 있었다.
욕심 많은 정 여인은 이것마저 놓치지 않았다. 이 임야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그녀는 지난해 이씨 몰래 그의 인감도장을 훔쳐냈다. 이 땅을 담보로 사채를 끌어쓰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8천만원 상당의 임야를 담보로 2천만원을 빌려쓰기도 했다.
이 사채를 끌어쓴 이후 정 여인이 돈을 갚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이렇게 되자 사채업자들은 담보물의 주인인 이씨에게 찾아와 “어찌됐든 돈은 당신이 갚아야 한다”며 “돈을 안 갚으면 생매장해 버리겠다”며 을러댔다.
이씨는 기가막힐 따름이었지만 건장한 체구의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그만 8천만원의 현금보관증에 지장을 찍고 말았다. 이쯤되자 이씨가 겪고 있는 이 황당한 일은 그의 자식과 사위들에게도 알려지게 된다. 이씨로서는 더 이상 교육공무원의 ‘체면’만 생각하고 입을 다물 수는 없었던 일이었다.
결국 파산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이씨는 사위를 비롯한 자신의 자식들과 경찰의 도움으로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이씨로서는 가정부 한 번 잘못 들인 것이 커다란 불행을 불러온 셈이었다.
편안한 일자리 대신 엉큼한 욕심에 ‘해괴한 짓’을 서슴지 않았던 정 여인은 화려한 중년의 삶 대신 초라한 구치소행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