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발족한 종북조직 ‘재미동포전국연합회’(위)와 종북 언론사 <민족통신> 홈페이지(아래) 캡처.
지난 반세기에 걸친 남과 북의 이념전쟁은 꼭 한반도 안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남과 북은 이 기간 동안 전 세계를 무대로 재외동포들에 대한 포섭 경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최소한 1980년대 후반까지만 놓고 보면, 그 조직화 작업에 있어선 북한의 완승이라는 점이었다. 일본의 조총련(약 11만 명)을 중심으로 중국의 중총련(4000명 추정),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의 고총련까지 전 세계의 ‘종북 네트워크’는 막강했다.
물론 이러한 경쟁의 추는 북한의 경제력이 쇠하기 시작한 1990년대를 기점으로 점점 남한으로 기울었다. 한 예로 재외동포 이념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일본의 경우, 남한 체제를 옹호하는 민단이 1990년대를 기점으로 조총련을 압도하며 지금은 6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조직의 규모와 별개로 그 구성원의 체제에 대한 충성도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재외동포 조직의 수는 급감했지만, 충성도 높은 골수 조직원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재미동포 신은미 씨 사건의 진실과는 별개로 미국 내 종북 조직의 실체가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종북 재외 조직 가운데 미국의 그것은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관심 밖이었다. 북한의 재외동포 포섭 전략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그 초점은 최대 조직인 조총련에만 집중됐을 뿐이다. 재미 조직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분석과 연구는 ‘제로(0)’에 가깝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는 “재미동포들에 대한 북한의 포섭 전략은 꾸준히 존재해왔으며 최근 들어 점점 강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의 조총련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 대표가 꼽은 핵심 전략 조직은 통일전선부 산하에 2개가 있다.
첫 번째 조직은 ‘해외담당3과’다. 해외담당과는 각 지역별로 부서가 나뉘어 있다. 3과는 ‘적대국’인 미주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현지 동포들에 대한 포섭 및 공작이 주 업무라고 한다. 재미동포 포섭의 전초기지인 셈이다. 두 번째 조직은 통전부 산하의 ‘연고자2과’다. 연고자1과가 사회주의 국가를 담당한다면, 2과는 미국을 포함한 적대국에서의 활동을 꾀하는 곳이다. 앞서의 해외담당3과가 기본적인 포섭 및 공작을 하면 연고자2과는 포섭된 동포들에 대한 보다 깊이 있고 실질적인 ‘밀봉교육(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비밀리에 행하여지는 교육)’을 한다. 밀봉교육의 내용으로는 사상 교육과 더불어 접선 교육이 주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앞서 말했듯, 미국 내 종북 조직은 이번 신은미 씨 사건이 있기 전까진, 관심 밖이었다. ‘북한이 적대국인 미국에서 얼마나 활발한 포섭활동을 전개하겠느냐’는 섣부른 단정 탓이 컸다. 하지만 실제 미국 내 존재하는 종북 재미동포 조직의 활동은 의외로 활발하다. 등잔 밑이 어두운 꼴이다.
‘종북콘서트’ 논란의 주인공인 신은미 씨. 채널A 뉴스 화면 캡처.
지난 1997년 뉴욕에서 발족한 ‘재미동포전국연합회(회장 윤길상)’은 이전 산발적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한 친북 성향의 조직이 한데 모여 현재에 이르렀다. 조직의 역사는 20년이 채 안 되지만 그간 김정일 유고, 3주기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북한을 수차례에 다녀갈 만큼 북한 당국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부 보수진영에선 해당 조직의 결성에 북한 통전부가 직접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 확인된 바 없다. 지난 2005년 김일성대학 초청으로 강의를 하면서 종북 논란이 일었던 신은희 심슨대 교수도 해당 조직 소속이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나타난 조직의 성격은 굳이 종북 성향을 부인하지 않은 모양새다. 이미 해당 홈페이지는 불온 사이트로 규정된 탓에 국내 접속이 막혀 있다. 우회 경로를 통해 접속한 해당 홈페이지에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의 주요 소식, 남한과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담긴 논평들, 심지어 김일성 일가의 주요 인물에 대한 선전성 읽을거리가 주를 이뤘다. 최근 신은미 씨 사건과 통진당 해산에 대한 비판 성명서도 눈에 띄었다.
종북 재미동포들이 운영하는 별도의 언론사도 존재한다. 1999년 창간된 <민족통신>이다. <민족통신> 홈페이지 역시 국내서는 접속이 막혀 있다. 북한이 직접 운영하는 선전 사이트와 달리 ‘주체 연호’를 사용하진 않지만, 각종 선전 사이트의 링크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언론사가 내세우는 카테고리를 따르면서 남북한 주요 내부 소식과 미주 소식이 주를 이룬다. 내용은 노골적인 종북 성향이며, 남한 정부의 주요 기사 대부분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강력한 비난이다. 운영진은 처음부터 북한의 ‘조국통일 3대원칙’에 동조하고 있음을 명시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김정은 정권의 재미동포에 대한 전략 강화다. 2014년 초 북한 당국은 미국 현지의 여행사를 통해 각종 북한 여행 상품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새롭게 개장한 마식령 스키장과 평양 문수 물놀이장(북한 최대 워터파크)을 중심으로 한 패키지 상품이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이를 독점으로 운영하고 있는 여행사의 운영자는 이 씨 성을 쓰는 동양인이었다. 재미동포로 추정된다. 북한 당국과 해당 여행사는 특별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한 탈북자는 “북한은 주요 고객으로 재미동포를 타겟팅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은미 씨 역시 여행을 명목으로 6차례에 걸쳐 북한을 다녀왔다. 경찰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전문가는 “본국에서의 접선 가능성은 확답은 할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북한이 여행지로서 6차례에 걸쳐 다녀갈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최근 북한의 재미동포 포섭 전략이 점점 적극적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과도 맞물린다. 이제 미국은 북한의 재외동포 전략에 있어서 단순한 우회 경로는 아닌 듯하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