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남 김해경찰서는 자신의 아내를 두 차례에 걸쳐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 등)로 지난 12일 남편 한정만씨(가명·48)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지난 5월13일 오전 8시40분 아내 김은정씨(가명·45)의 승용차 브레이크 장치를 고장내 운행중 사고로 숨지게 하려고 한 혐의.
한씨는 또 지난 10일에는 운행중인 김씨의 승용차를 가로막고 가스총을 발사해 정신을 잃게 한 뒤 흉기로 마구 폭행해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한씨는 올초부터 자신의 경제적 무능력과 폭행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아내를 살해하려 했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던 것. 놀란 여인은 급히 핸드브레이크를 올린 뒤 속력을 줄여 가까스로 갓길에 차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 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브레이크 고장 사실을 알았기에 망정이지 본격적으로 주행을 시작했더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정비소에서 검사한 결과 원인은 ‘브레이크 유압호스 절단’. 그녀의 목숨을 노린 누군가가 고의로 끊어놓은 것이 확실했다. 가슴을 쓸어내린 여인의 뇌리에 곧바로 한 남자가 떠올랐다. 바로 자신의 남편 한정만씨.
올초였다. 당시 지난 10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월급이라고는 집에 갖고 온 적 없는 남편 한씨에게 김은정씨는 이혼을 통보했다. 그녀 자신은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지만 남편은 무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최소한 씀씀이라도 알뜰해야 할 터인데, 남편은 ‘사업추진비’ ‘품위유지비’ 등으로 한 달 2백만∼3백만원씩을 물쓰듯 써댔다. 정작 밖에서 돈을 버는 자신은 경차를 몇 년째 타고 다니면서 절약하고 있지만 본인은 ‘사업을 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며 고급 중형승용차에 기사까지 고용하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김해시에 H건설이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사무실까지 얻어놓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대표이사 명함을 제작해 사람들에게 뿌리기도 했다. 따라서 한씨가 전혀 직업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최근 몇 년 동안 실적이 전무해 수입이 없었을 뿐.
하나뿐인 딸아이 주연(가명·12)이의 장래를 생각하면 아내 김씨는 암담하기만 했다. 결국 김씨는 올초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남편의 허세와 씀씀이를 견디지 못한 것.
물론 남편 한씨가 아내의 요구를 곧이곧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아니, 한씨는 오히려 “당신 설마 바람난 것 아니냐”며 공연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무자비한 구타와 폭언. 이를 견디다 못한 최씨는 지난 3월 주연이와 함께 집을 나와 여동생의 집에 신세를 져야 했다.
아내가 집을 뛰쳐나가자 한씨의 행동은 더욱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처제인 김씨 여동생의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것은 예사였다.
지난 3월에는 “이혼문제에 대해 얘기할 것이 있으니 집으로 잠시 오라”며 김씨를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서 한씨는 짐짓 체념한 모습을 보이며 “이혼을 하려면 절차가 복잡한데 변호사를 선임해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씨는 “이미 변호사를 선임해두었다”며 싸늘하게 반응했다.
이러자 한씨는 갑자기 화를 내며 “아니, 그래 정말 이혼을 하겠다는 거냐”며 아내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TV와 전화기 등이 방안에서 날아다녔다. 결국 김씨는 병원 진단 결과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한씨의 ‘테러’는 그치지 않았다. 지난 4월 중순에는 부인이 아예 연락을 끊자 딸 주연이가 등교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잠복했다. 이윽고 주연이 나타나자 “니 엄마가 어디 있느냐”며 자신의 딸을 윽박지르기도 했다. 심지어 주연이의 선생님까지 찾아가 연락처를 밝히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아내를 살해하려 두 차례 시도한 것 이외에도 5∼6회 가량 폭행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씨의 행각은 날이 갈수록 대담해졌다. 지난 5월 최씨의 승용차 브레이크를 고장낸 것도 그 가운데 하나. ‘테러’의 수위를 높이면 높일수록 자신의 의도와 달리 점점 아내가 멀어지는 것에 초조했던 것이었을까. 지난 10일 한씨는 더욱 위험한 방법으로 살해를 기도했다.
이날 오전 김씨는 딸 주연이를 등교시켜 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승용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올 무렵 갑자기 낯익은 승용차 한 대가 앞을 가로막았다. 승용차에서 내린 남자는 다름아닌 남편 한씨.
예기치 못하게 김씨 앞에 나타난 한씨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가스총을 발사했다. 그리곤 정신을 잃은 아내를 승용차에 실은 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녀가 깨어나기 전 가위로 그녀의 머리를 삭발해 버린 한씨는 이어 흉기로 그녀를 마구 폭행하기 시작했다. 휘발유로 불을 지르겠다며 위협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 납치 장면을 마침 평소 이들 부부와 김씨의 여동생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 목격했다는 것. 김씨의 여동생은 목격자들의 연락을 받자마자 납치 현장으로 쫓아갔다. 물론 차량은 운전자가 없는 상태.
김씨 여동생은 다급한 마음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은 신속한 대응으로 납치 2시간40분 만에 폭행 현장에서 한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