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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발바리’하면 대개 인기 만화 주인공이나 애완견을 떠올리게 되지만, 대전에서만큼은 공포의 대상이다. 이 사건은 대전지역 원룸 여성들을 상대로 벌어진 2백여 건에 달하는 연쇄 강도·강간사건. 지난 99년 첫 신고된 이후 경찰이 4년째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발바리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문제는 이 사건의 모방범죄가 줄을 잇고 있다는 점. ‘발바리의 후예’들이 전국 곳곳에서 활개를 치면서 유사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살인의 추억’에 이어 이 사건마저 ‘발바리의 추억’으로 남을 것인가.
지난해 9월 경북 경산의 원룸 여성 상습 강도 사건, 10월 경남 창원의 10여 차례 독신 여성 상대 강도 강간 사건, 올해 3월 광주의 원룸 독신 여성 성폭행 사건, 6월 충북 청주시내 원룸 여성 대상으로 총 40여 차례의 상습적 성폭행 사건, 7월 서울 강동구 천호동 원룸 성폭행 미수 사건, 7월 대전 서구 갈마동 원룸촌의 성폭행 강도 사건, 8월 대구 달서구 원룸 전문 강도 강간범 검거 사건.
한결같이 원룸에 혼자 사는 독신 여성들만을 노린 강도 강간 사건이다. 전국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발생한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추려 뽑은 것이 이 정도. 이들의 범행 수법은 대전 발바리의 그것을 답습하고 있다.
특히 7월 대전 서구 갈마동 원룸촌 성폭행 사건은 대표적인 예. 범인 김아무개씨는 오전 6시경 원룸에 거주하던 자매를 성폭행하고 현금 30여만원을 빼앗으며 “내가 바로 그 유명한 대전의 발바리”라고 떠벌렸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자신을 발바리라고 하면 피해자가 겁을 먹고 신고를 못할 것 같아 흉내를 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는 것. 대전 발바리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까지 등장한 셈이다.
신출귀몰의 새로운 대명사로 등장하기 시작한 대전 발바리는 한때 두 명이 서로 경쟁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악명을 떨치며 대전 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러던 중 ‘후배 발바리’가 먼저 지난 2001년 잡혔다. 하지만 ‘원조 발바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발바리에 대한 논란은 별칭의 유래에서부터 비롯된다. ‘날랜 동작으로 이리 발발, 저리 발발대며 경찰의 추적을 교묘히 따돌리는 범인의 신출귀몰함을 빗댄 표현’이라는 설도 있고, ‘예쁜 여자들만 밝히며 집적거리는 만화주인공 이름을 빗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충남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90년대 중반 대전 신도시 지역인 둔산지역이 개발되던 당시 이 지역에서 부쩍 늘어난 성폭력 사건 용의자들이 당시 강아지처럼 기어서 범행하는 수법을 빗대어서 여기서는 이들 성폭력범을 일명 발바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아무튼 이 원조 발바리로 인해 대전 지역의 경찰은 그야말로 자존심이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96년 이래 대전에서 발생한 2백여 건의 성폭행 사건이 범행 수법이나 피해자의 진술, 유전자 감식 등으로 볼 때 발바리의 범행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 한 명의 범인이 2백여 차례나 대전 한 지역의 원룸을 자기 집 드나들 듯하며 여성들을 농락했음에도 경찰은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한 경찰은 “강간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신고를 않는 경우가 많음을 미뤄볼 때 신고된 건수 외에 실제 피해 여성의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4월1일자로 부임한 이기묵 신임 충남경찰청장은 취임 일성으로 “미제 사건인 발바리 사건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결의를 다질 정도였다.
그러나 수사 전망은 신통찮다. 충남경찰청 기동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대전 지역 원룸 일대에 잠복 근무만 수십 차례 했지만, 최근 들어 발바리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 2월 마지막 범행을 끝으로 더이상 발바리가 출몰하지 않자, 점점 수사 열기도 식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 수사 관계자는 “최근까지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되자 발바리가 대전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발바리의 범죄수법은 주도면밀하다. 경찰의 유전자 감식을 피하기 위해 최근의 범죄 행각에서는 성폭행 뒤 강제로 피해 여성들을 샤워까지 시킨 것으로 드러나기도 해 경찰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발바리의 범행 대상은 철저하게 원룸촌에 거주하는 독신 여성들. 그 중에서도 특히 유흥업에 종사하는 일명 ‘나가요걸’들이 주 표적이었다. 이들은 대개가 전날 업소에서 번 현금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간밤에 술에 취한 채 곯아 떨어지기 때문에 문단속도 그만큼 허술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또한 성폭행을 당하더라도 신고를 꺼린다는 점까지 간파한 아주 지능적인 범죄 유형이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그는 흰 목장갑에 모자를 쓴 운동복 차림으로 새벽 4시에서 오전 9시경을 주 범행 시간으로 활동한다. 강도보다는 강간이 우선인 듯한 범죄 행각도 한 특징이다.
경찰에 따르면 일부 피해 여성들이 “반항하는 순간에도 온갖 변태적인 행위를 요구했다” “자신의 욕구 충족보다는 나를 이리 저리 부리는 것을 즐겼다”는 말을 한 것으로 미뤄봐서 단순한 성욕 해소 차원보다는 다른 심리적 질환자로 추정되기도 한다는 것.
또한 무작정 침범을 하기보다는 미리 상대 여성을 확인한 뒤에 침입하는 주도면밀함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발바리의 또 다른 특징은 무조건 단독 범행이며, 어린이나 남자가 있는 경우에는 절대 범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성들만 거주하는 것을 확인하면 어김없이 마각을 드러냈다.
충남경찰서 기동수사대의 담당 형사는 “30대 중후반의 연령에 키는 160~165cm로 눈매가 아주 매서웠고, 마른 체형에 행동이 아주 민첩했다. 우리 눈앞에서 한 손으로 가볍게 담벼락을 짚고 훌쩍 훌쩍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그는 “상대 여성들의 수치심을 유발시킬 목적으로 여성들을 맘껏 농락했으나, 흔히 신고를 막기 위해 나체를 사진이나 캠코더로 찍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자신의 물품이 현장에 남는 단서를 주지 않기 위한 주도면밀함을 갖췄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