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장해제’한 남성과의 관계 도중 치명적인 흉기 로 살인을 저지른 여자 주인공을 다룬 영화 <원초 적 본능>과 이번 사건은 그런 점에서 닮았다. | ||
이 남성과 함께 투숙했던 30대의 여성은 이런 와중에도 그대로 여관에 남은 채, 출동한 경찰에 순순히 연행됐다. 이 여성은 경찰에서 “상대 남성은 전날 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으며, 그가 ‘가학적인 성행위’를 요구해 칼로 찔렀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은 하루 동안의 경찰 조사를 통해 다음날 일종의 해프닝성 살인 사건으로 각 일간지 사회면 한 귀퉁이를 다음과 같이 가볍게 장식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13일 가학적인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자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김아무개씨(33·여)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12일 오전 3시께 서울 용산구 남영동 모 여관에서 서아무개씨(43·회사원)와 성관계를 갖던 중 서씨가 무리한 성행위를 요구하면서 폭행하자 평소 호신용으로 휴대하던 흉기를 가방에서 꺼내 서씨를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특별한 직업 없이 찜질방 등을 전전하면서 생활해오다가 이날 새벽 서울 중구 을지로6가 지하철역에서 서씨를 우연히 만나 식사를 같이한 뒤 여관에 간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얼핏 황당한 사건으로 넘겨버릴 만도 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뭔가 석연치 않다. 특히 가해 여성인 김씨의 신분은 미스터리다. 그는 일정한 직업도 거주지도 없는 여성이었다. 또한 살인 동기가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이 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던 용산경찰서 형사계 관계자의 설명을 토대로 당시 사건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자.
일정한 거주지 없이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밤에는 찜질방을 전전하며 지내던 김씨는 11일 밤에도 서울 시내의 한 사우나에 있다가 잠이 오질 않아 밖으로 나섰다. 거리를 배회하던 그녀는 자정을 넘은 시각에 을지로6가 인근의 한 전철역에서 귀가하던 서씨를 우연히 만났다. 서씨는 어느정도 취기가 올라 있던 상태.
혼자 밤거리를 배회하던 30대 여성과 취기가 오른 40대 남성. 두 사람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쳤으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서씨가 취중에 혼자 있는 김씨에게 먼저 추파를 던졌는지, 아니면 무료했던 김씨가 서씨를 유혹했는지는 두 사람만 알 일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와 함께 약간의 술이 더 오갔을 법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여관으로 함께 들어갔다. 여기까지의 상황은 한번쯤 있을 법도 한 스쳐지나가는 불륜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상황은 여관에 들어가서 벌어진다.
가해자인 김씨의 진술에 따르면, 방에 들어간 서씨가 김씨에게 대뜸 구강성교를 요구했다고 한다. 옷을 벗은 채 김씨에게 자신의 그곳을 입으로 애무해줄 것을 강요했다는 것. 그러나 평소 구강성교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김씨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와 같은 성행위를 요구하는 서씨의 강요에 격분, 자신의 손가방 안에 있던 과도를 꺼내들어 서씨의 그 부분을 칼로 찔렀다.
무방비 상태에서 몸을 맡겼다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칼로 찔린 서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흥분한 김씨에게 양 가슴을 두세 차례 더 찔리는 등 공격을 당했다. 놀란 서씨는 피를 흘리면서도 김씨를 밀쳐내고 방을 뛰쳐나가 여관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쓰러졌다.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은 김씨의 신분에 대한 궁금증이다. 경찰 조사 결과 그녀는 딱히 가족도 없고 결혼도 안한 여성이었다. 주민등록상의 주소지는 있으나, 사실상 거주지가 없는 상태였다. 낮엔 옷매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엔 그냥 찜질방이나 24시간 사우나 등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가끔 이런 식으로 밤거리를 배회하다 우연히 만난 남성과 여관 등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 적도 몇번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매춘은 아니었다. 식사비나 여관비를 상대 남자가 낼망정 하룻밤 관계에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녀는 외모도 성격도 평범했고 전과도 없었다. 경찰은 그녀에 대해 그냥 “일정한 거주지나 직업이 없는 여성”으로 간단히 정리하는 데 그쳤다.
두 번째 의문은 경찰이 살해 동기로 발표한 가학적 성행위에 대한 정도이다. 흔히 ‘사디즘’이라고도 불리는 이 가학적 성행위는 폭력이나 어떤 기구 등을 사용해 상대방에게 고통을 가하며 성관계를 즐기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김씨가 막상 경찰에서 진술한 상대 남성의 가학적(?) 요구는 오럴섹스였다고 한다.
처음 만난 낯선 남자와 여관에 함께 투숙했다는 것은 성행위에 대한 암묵적 동의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왜 오럴섹스 요구에 이처럼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을까. 혹시 다른 폭력이나 변태적 행위의 강요는 없었을까.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오럴 등의 성행위가 개개인의 취향마다 다 다르게 다가오듯이 아마도 가해자에게는 다른 그 무엇보다 이것이 모욕적이고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김씨는 일관되게 ‘더럽게 오럴을 요구해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김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에 대해 경찰은 “호신용으로 갖고 다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김씨가 사용한 흉기는 과도 형태의 칼이었다. 혼자 있는 여성이 왜 손가방 안에 이런 칼을 지니고 다녔을까. 이에 대해 김씨는 “평소 호신용으로 갖고 다니던 것이다.
여자 혼자 다니다 보니까 아무래도 밤에 추근덕대는 건달들도 많이 만나게 되고, 또 실제 몇 번은 강간을 당할 뻔도 했다”고 밝힌 것으로 경찰은 전하고 있다. 만약을 대비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칼을 갖고 다녔다는 김씨는 결국 그 호신용 칼로 어이없는 살인을 저지른 셈이다.
김씨가 서씨를 칼로 수차례 찌를 때, 유독 남성의 성기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점도 눈길을 끈다. 결국 서씨의 사망원인은 성기 부분의 과다 출혈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흔히 상대방에 대한 격분된 감정으로 칼로 찌를 때 배나 가슴 등을 먼저 찌르는 경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김씨는 유독 상대 남성의 성기 부분을 수차례 찔렀던 것은 왜일까.
또한 서씨가 칼에 찔린 채 비틀거리고 뛰쳐나가고 난 뒤에도 김씨는 딱히 도망을 치려했던 흔적도 없었다. 서씨가 병원에 실려가고 뒤이어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까지도 김씨는 방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바로 김씨를 검거한 것이다.
가해자인 김씨의 정신과 감정의 필요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의 진술이 시종 일관된 데다가, 행동거지로 봐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김씨는 용산경찰서 유치장에 있으며, 특별한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김씨가 일관되게 사실을 자백한 만큼, 검찰로 송치된 후에도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김씨의 일관된 진술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너무나도 많다.
이남훈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