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범한 40대 여인이 지난 1일 <일요신문>과 만나, 자신의 나이 어린 딸이 재혼한 남편으로부터 성폭행당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 여인은 한국계 일본인인 김아무개씨(43).
김씨의 남편 노아무개씨(49)는 서울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뒤 미국 MIT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홍콩의 유명 대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의 한 컨설팅회사 사장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경력을 소유한 엘리트다.
그런 그가 의붓딸을 7년 동안 성폭행한 혐의로 철창신세를 지게 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달 31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노씨를 구속했다. 노씨는 지난 93년 김씨와 결혼한 뒤 김씨가 데려온 딸을 지난해 4월까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일요신문>과 인터뷰하는 김씨. 그는 재혼한 남 편한테 성폭행당한 자신의 친딸 얘기를 하며 울 분을 터뜨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리고 김씨는 일본에 있는 한 사찰의 주지스님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악연’은 공교롭게도 김씨의 막내 여동생이 경영하고 있던 카페에서 시작됐다. 하루는 김씨가 카페에 들렀는데 노씨가 “나는 큰 꿈을 갖고 있지만, 집안이 가난하다. 박사학위를 따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다가왔다는 것.
이에 김씨는 노씨의 유학비뿐만 아니라 한국에 살고 있던 노씨 어머니와 동생의 빚과 생활비까지 마련해줬다고 한다. 김씨는 “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노씨를 도왔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6개월 동안의 만남 끝에 살림을 차리게 됐다. 김씨는 딸 하나를 두고 있었고, 노씨는 이혼한 독신이었다. 김씨의 도움으로 노씨는 다음해(94년) 2월 마침내 MIT박사 학위를 받게 됐고, 그해 6월에는 홍콩에 있는 한 대학의 조교수로 초빙됐다. 3년 계약이었다.
이에 노씨는 짐을 꾸리면서 김씨나 딸아이 중 한 명만 홍콩에 데려가겠다고 했단다. 김씨는 뭔가 미심쩍긴 했지만, 딸아이의 교육을 위해 자신이 일본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노씨와 딸은 지난 94년 8월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씨는 홍콩에 사는 노씨와 딸아이의 생활비로 한 달에 1천1백만원씩 꼬박꼬박 부쳤다고 한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김씨가 상상도 못했던 흉측한 일이 벌어졌다. 노씨는 지난 95년 5월부터 상습적으로 의붓딸을 성폭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의붓딸의 나이, 그때 겨우 여섯 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성행위가 뭔지도 전혀 모를 나이였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노씨는 대학교 관사 안에서 의붓딸에게 수면제를 감기약이라고 속여 먹인 뒤 잠든 아이를 성폭행했다. 이때부터 의붓딸에 대한 상습적인 성폭행은 7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악마’로 돌변한 노씨는 의붓딸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지난 7월, 딸(14세)이 엄마인 김씨에게 처음 털어놓음으로써 밝혀졌다.
딸은 “아버지가 내 몸을 만지거나 무리하게 섹스를 강요했어요. 아버지가 목을 조르거나 턱을 꾹꾹 찌르기도 했습니다. 맞기도 했고요. 나무로 만든 옷걸이로 때리려고도 했습니다. 심할 때는 몽둥이로도 맞았습니다. 저에게 약을 먹인 기억도 있어요”라며 “지금까지는 아빠가 무서워서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고 울먹였다.
노씨는 딸에게 잔뜩 겁을 주기도 했다. 딸이 엄마에게 털어놓은 ‘악몽’을 좀더 들어보자.
“아빠는 자주 저에게 아빠만 믿으라고 했어요. 믿으면 뭐든지 성공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해준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모두 거짓말로 끝났습니다. 아빠는 만약 누군가에게 말하면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죽을 각오를 하라는 말도 했습니다.”
노씨와 딸은 지난 97년 8월, 홍콩에서 일본으로 3년 만에 돌아왔다. 노씨의 교수계약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으로 돌아와서도 노씨의 변태적인 행각은 계속 됐다. 영장에 따르면, 2002년 7월까지 노씨는 일본 집에서 딸에게 비타민제라고 속인 다음 수면제를 먹여놓고 성폭행을 가했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어머니 김씨는 아무런 낌새도 못 차렸던 것일까. 김씨는 “(97년 8월) 홍콩에서 귀국할 때 보니까, 애가 제대로 걷질 못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아이한테 물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또 지난 98년엔 아이의 침대 위에서 남편의 속옷과 체모가 나오기도 했지만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98년에) 딸아이가 ‘아빠 하지마, 아빠 하지마’라고 잠꼬대하면서 3일 동안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서 (성기를) 보았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잔뜩 들어있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딸을 데리고 병원엘 갔고, 진단서에는 ‘처녀막 손상’이라는 병명이 기록됐다. 딸은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김씨는 ‘심증’을 있지만 ‘물증’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후 김씨는 딸을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런데 노씨는 딸이 방학이 돼서 귀국했을 때도 ‘몹쓸 짓’을 계속 자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7월, 김씨는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딸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를 들어야 했다. 김씨의 딸은 7년 동안 당했던 의붓아버지의 성폭행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던 것이다.
영장에 따르면 김씨의 딸이 기억하는 성폭행 횟수는 약 10~15회 정도. 그런데 약을 먹인 다음 성폭행한 것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딸은 “의붓아버지가 때릴 것 같아 겁이 나서 그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의자 노씨는 경찰에서 “성폭행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는 “아내(김씨)가 나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고 친딸을 이용해 허위사실을 조작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지난 7월29일 국립경찰병원에서 발급한 김씨의 딸에 대한 진단서에도 처녀막이 심하게 손상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지난 7월 딸로부터 처음으로 남편의 변태 행각 전모를 듣고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쥐약과 수면제를 먹었다가 기적같이 3일 만에 깨어났다는 것.
김씨는 “한때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아이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며 “아이를 원위치로 돌려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딸은 현재 서울 시내 한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