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과 국무회의에 참석한 청와대 참모진(왼쪽). 참여정부 들어 새로운 인맥이 부상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초스피드로 진행된 김대중 정부 실세그룹의 몰락은 ‘정치세력 교체’를 실감케 한다. 국민의 정부 제2인자로 불렸던 권노갑 전 고문과 박지원 전 비서실장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현대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노무현 후보를 통해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친노무현 인사들이 대거 민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을 창당함으로써 그 위세가 크게 추락했다. 지난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에도 턱없이 부족한 9석의 의원을 당선시켜 원내 제4당으로 추락했다.
반면 몰락한 동교동계와 민주당을 딛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급부상했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 그룹들의 대거 국회 등원이 눈에 띈다.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등 17대 국회에 진출한 386 측근들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김원기 국회의장으로 대표되는 ‘통추’ 출신 인사들이 참여정부 들어 국회에 다수 진출하는 등 새로운 주류세력으로 성장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요직에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여러 인연으로 엮인 인사들이 대거 발탁됐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행자부 장관에 오른 허성관 장관, 국방보좌관을 거쳐 국방부 장관에 오른 윤광웅 장관. 또 민정수석을 거쳐 사회문화수석에 임명된 문재인 수석 등 노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자 출신지인 ‘PK’ 출신 인사들이 권력 핵심에 다수 포진했고, 노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386세대 가운데에는 특히 ‘연세대’ 출신 인사들의 부상이 눈에 띈다. 여기에 노 대통령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최근 들어 정관계에 폭넓게 포진해 있는 ‘용산고’ 출신 인사들의 약진도 주목된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93년 설립했던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출신 인사들도 적잖이 발탁됐다. 노 정권 출범 이후 ‘인재의 요람’으로 작용하고 있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 인사들의 대거 등용도 노무현 정부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또 해양수산부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와 정부 요직에 기용되고 있는 것도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노무현 대통령의 ‘경험’에 입각한 독특한 인사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무현 정권 1년6개월. 정치세력 교체를 통해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한 노무현 대통령의 8대 인맥을 해부해 본다.
국회 진출 - 386참모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자신을 오랫동안 보좌해왔던 386 출신 참모 10여 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386 참모들을 향해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대통령에는 당선됐지만, 여전히 소수다. 청와대에서 나를 도와 일을 같이해야 할 사람도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지역에 내려가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새로운 정치세력의 태동은 17대 총선을 통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당부 때문이었을까. 17대 총선을 통해 등원한 초선 의원 가운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386 출신 참모들이 적지 않다.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등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던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원내에 진출했다. 이들뿐 아니라 2002년 대선 과정에 결합했던 상당수 인사들도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대통령후보시절 청년특보단 상임부회장을 맡았던 최재성 의원, 조직보좌역을 맡았던 선병렬 의원, 정책보좌역을 맡았던 조경태 의원, 특보를 지낸 박기춘 의원, 아산 선대위원장을 지낸 복기왕 의원, 인수위 정무분과 자문위원을 지낸 우원식 의원과 국민의 힘 초대 대표를 지낸 정청래 의원 등이 그들이다. 또 대통령후보시절 부산 선대위원장을 지낸 조성래 의원도 비례대표를 통해 무난히 국회에 진출했다.
17대 총선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원내에 적지 않은 우군을 확보한 셈이다. 오랜 참모는 아니지만 참여정부 초기 정부와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던 인사들도 상당수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의원과 인사비서관을 지낸 권선택 의원, 정무1, 2비서관을 각각 역임한 문학진, 김현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통추 - 출신 대약진
노무현 대통령, 김원기 국회의장,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등 정부와 국회, 여당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들 세 사람은 모두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멤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처럼 통추 출신 인사들이 참여정부 들어 요직에 진출했다. 유일한 원내 6선으로 국회의장에 당선된 김원기 의장을 필두로, 이부영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김부겸 의원, 참여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지내고 17대 국회에 입성한 유인태 의원과 이호웅 의원, 김원웅 윤리특별위원장도 모두 통추 출신이다. 14대 의원을 지낸 이후 부천시장을 역임했고 17대 국회에 재입성한 원혜영 의원 역시 통추 출신이다.
한국도로공사 이상익 감사는 통추 경남대표를 지냈다.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에 맞서 근소한 표차로 낙선한 이철 전 의원과 서울 종로에 출마 낙선한 김홍신 전 의원 역시 통추 출신이다. 한편, 박계동 의원은 통추 출신이면서도 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 노무현 대통령과는 엇갈린 길을 걷고 있다.
PK - 권력핵심 기용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출신지인 PK 출신 인사들도 권력 핵심에 기용됐다. 민정수석을 거쳐 사회문화수석으로 컴백한 청와대 문재인 수석을 필두로, 정부에는 허성관 행자부 장관, 윤광웅 국방부 장관 등이 눈에 띈다. 허 장관은 인수위 전문위원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쳤고, 윤광웅 장관은 국방보좌관을 역임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386세대 측근 3인방으로 일컬어지는 정윤재 송인배씨 등은 국무총리 민정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으로 각각 자리를 잡았다.
총선 직후 국무총리에 내정됐다. 야당의 반발로 물러난 김혁규 의원은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밖에 ‘부산상고’ 출신 몇몇 인사들이 대기업 주요 임원에 임명되는 등 참여정부 출범 이후 PK 출신 인사들의 정계, 관계, 재계에서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연세대 - 청와대 포진
참여정부 들어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연세대’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 핵심 요직에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제1부속실장, 의전비서관 등 대통령과 거의 매일 접하는 참모들이 모두 연세대 출신 인사로 채워져 있다. 김우식 비서실장(화학공학과)을 필두로, 윤태영 제1부속실장(경제학과), 천호선 의전비서관(사회학과)이 모두 연세대 출신이다.
또 인사보좌관실 김용석 인사비서관과 강태영 업무혁신비서관, 전기정 혁신기획비서관과 김만수 상근부대변인도 모두 연세대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밖에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과 이용철 법무비서관, 윤석중 해외언론비서관, 산업정책비서실 노영규 행정관 등도 모두 연세대 출신이다.
용산고 - 약진 주목
노무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당정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용산고 출신 인사들도 주목받고 있다.
정부와 여당을 책임지고 있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모두 용산고 출신이다. 여기에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과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 이택순 치안비서관 등도 모두 용산고 출신이다. 당정의 최고 책임자는 물론, 국가안보의 요직을 용산고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이밖에 차관급 인사로는 김용덕 관세청장 등이 있다.
용산고 출신들이 당정 핵심 요직에 대거 포진한 것과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전문성을 고려한 인사를 하다보니 우연의 일치로 용산고 출신이 많아졌을 뿐”이라며 “이부영 의장의 경우 당에서 이뤄진 일이니 별개 문제고, 이종석 처장이나 권진호 보좌관은 모두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아 따로따로 임명된 인사였지 않느냐”고 해명했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선거캠프’를 ‘지방자치연구원’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유지했다. 노 대통령이 90년대 초 민주당 부총재 시절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실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자’며 참모들과 함께 출범시켰던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이름을 대선에 출마하면서도 그대로 이어받았던 것이다. 당시 한 참모는 ‘대통령에 출마하는 마음가짐이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열던 때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은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이 때문인지 참여정부 들어 요직에 진출한 인사들 가운데에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출신들이 적지 않다. 참여정부 초대 행자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 전 장관이 대표적이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황이수 행사기획비서관과 천호선 의전비서관은 연구원을 지냈다.
국무총리실 정윤재 민정비서관과 김희갑 메시지기획비서관 역시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연구원을 지낸 공통점이 있다. 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로 재직중인 조상훈 감사 역시 연구소 연구원 출신이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와 총리실, 정부산하기관까지 폭넓게 진출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싱크탱크’- 민변
“참여정부에서 새로이 각종 공직에 진출한 인사 가운데 변호사 자격증을 가졌다면 십중팔구는 민변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서초동에서 법률사무소를 낸 한 변호사의 말이다. 그만큼 참여정부에서 민변 출신 인사를 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고영구 국정원장, 강금실 전 법무장관, 문재인 사회문화수석으로 대표되는 민변 출신 인사들의 중용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 6개월 동안 꾸준히 계속돼 왔다. 그동안 참여정부를 거쳐간 민변 출신 인사들만도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 등 5~6명에 달한다. 특히, 17대 국회를 통해 등원한 민변 출신 변호사는 임종인, 최재천 등 13명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이다.
이 때문에 과거 동교동과 상도동이 담당했던 ‘싱크탱크’ 역할을 참여정부 들어 ‘민변’이 담당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해수부 - 발탁인사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자신의 인사 원칙에 맞지 않으면 절대 쓰지 않고, 한번 신뢰한 사람은 뚜렷한 문제가 없는 한 계속해서 신임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본 한 참모는 노 대통령의 독특한 인사스타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실제 노 대통령은 각종 인선에 앞서 직접 대면 면접을 행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민정수석실 등에서 서류심사 등을 통과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면접을 통해 업무에 대한 이해 정도와 비전 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사스타일을 고수하는 노 대통령에게도 예외는 있다. 본인이 직접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특히 업무능력과 신뢰도에서 신임을 하는 인사에 대해서는 전격적으로 발탁인사를 단행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장관으로 재직했던 ‘해양수산부’ 출신 인사들을 적잖이 기용하고 있다.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후임으로 임명된 박남춘 국정상황실장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박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시에 감사담당관과 총무부장을 역임했다. 직무감찰과 각종 인사 등의 실무를 담당하는 자리에서 노 대통령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것.
또다른 해수부 출신 인사는 민정수석실 문해남 행정관이다. 문 행정관은 해양수산부 출신임에도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문 행정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비서관으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정책조정실 행정관으로 재직중인 김영석 행정관 역시 해양수산부 출신이다.
강민지 언론인